■ 전설 정효료수 소설, <님의 바다> 가 탄생되기까지
■ 소설 <님의 바다>가 탄생되기까지
◆2004년 5월 7일
닷새 전 너무도 그리운 한수미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절대로 전화를 하지 말라고 그래서 바뀐 전화번호도 알려주질 않았었는데 너무도 그리워서 전화를 않으면 미칠 것 같아 하였다고 그랬다.
“선생님! <님의 바다> 원고는 어떻게 있어요?
님의 바다? 아하 그랬었지. 한수미하면 님의 바다였다. 미국에서 음악을 하는 한수미(본명:한ㅁㅁ)를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무명으로 사는 게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다 무명으로 살아가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주 당연하게 느껴요.
<님의 바다>를 지필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한수미 때문이었다. S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한수미는 어느 날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선생님! 오페라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당시 나는 한국미술의 유명한 곳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영업실장의 막강한 파워를 시장개척에 쏟아 부었다. 사장님과 이사님의 내게 거는 기대는 상당하였다. 나는 인사동에서도 중심인 수도약국 맞은편에 정원이 딸린 고택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몇몇 화랑에 자주 가는 편이었는데 수요일인 그날도 화랑의 작품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머! 선생님”
목소리의 주인공을 울려다 보았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미인이라 나보고 그런 소린 아니겠지 하고 뒤를 돌아볼 지경이었다.
창비선생님! 저를 잊었어요.
그 소리에 나는 번쩍 눈이 띄었다.
한수미! 어디서 낮이 무척 익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미모가 담박 연결되었다. 어찌 꿈엔들 잊으리. "아니 어떻게 여긴?" 나는 뜻밖에 회후여서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나와 친한 그 화랑주인이 자신의 삼촌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문학에 관심이 지대하였던 한수미. 나는 82년 당시 창작과 비평사에 들락거렸다. 그리고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외국어대 이화여대 등등 몇 몇의 대학에 금서(禁書)를 위시한 창비원전을 조금 돌리고 있었다. 83년 한수미가 1학년 때 나는 그니를 처음 알았다.
그래서 필자는 2004년 5월에 <님의 바다>의 원고를 꺼내놓고 한참이나 눈시울을 적시었었다.
참으로 그리운 세월
그래 <님의 바다>의 원고를 소설화 시키자
처음 지필할 때는 시나리오 원고였지만 글을 조금 고쳐보자.
먼저 인터넷에 올리고, 다음에 오프라인으로 나아가자. 그래서
<님의 바다>는 세상에 빛을 보기에 이르는 것 같다.
언제 봐도 황홀하게 아름다운 한수미,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한수미가 아니었다면
<님의 바다>란 작품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