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대한민국에서 죄인이 되어-김인규(펌)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12. 02:02

작성자 - 김인규

대법원의 판결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다가옵니다.
조금은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정말 제가 사건이 이렇게까지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랬거든요)
조금은 후회스럽기조차 합니다.

아무튼 저의 일은 대한민국에서 음란물을 만들어 배포한 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공인한 사실이 되어버렸지요. 저는 이제 그것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 까짓거 그러면 어때”

그러나 제가 현직 교사인 이상,
그렇게 간단히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2001년 사건이후 거의 개인작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하기 힘들었을 뿐 아이라,
저의 교사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는 교사로서 저 자신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가족의 절대적인 생계이기도 하면서
제가 버릴 수 없는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쫓겨난다고 하는 것은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가급적 자극적인 행동을 자제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런 상황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었지요.
그게 4년에 걸친 일이지요.

그러다 보니
정말 나의 교사로서 삶은 더욱 알찬 무엇이 되었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일들이 갈수록 가슴 벅찬 어떤 일이 되곤 했습니다.
때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처럼 학생들과 함께 행동했습니다.
일부 학부모님들과 당국의 사시든 눈초리도 그렇게 차근차근 극복해나갈 수 있었지요. 학교장들도 저의 능력과 헌신성은 인정을 했지요.
게다가 1,2심 무죄를 받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저는 그렇게 죽 열심한 교사로서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입니다.
대법원은 나를 다시 4년전 그때 그날로 다시 데려다가 거기에 가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다시 모호해져버렸습니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버린 느낌입니다.
이제 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세상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요.
네가 벌인 일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정말 그럴지 모르지요.

한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지극히 회의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리고 다시 한때 희망을 가졌었지만,
다시 나는 회의에 빠져야 하는지요.

한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곤혹스러울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잘못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참 억울하긴 합니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고지식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느끼고 믿는 바에 참으로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그게 예술을 선택한 사람이 취해야 할 가장 큰 덕목이었지요.
예술적인 삶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그대로 살았지요.
그리고 그게 지금 나에게는 죄가 되어 되돌아 왔습니다.
그렇게 산 삶이 죄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게 우리 사회가 저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그런 저는 이제 저 자신에게 화를 내야 하겠지요.
조금은 미숙하고
조금은 어리숙했던...
그러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그대로 말수는 없는 겁니다.
그냥 말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