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너희들에게 책을 팔아 주었다는 것은 너희 어머니의 젖과 같이 너희들을 키웠느니라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13. 01:14

*너희들에게 책을 팔아 주었다는 것은 너희 어머니의 젖과 같이 너희들을 키웠느니라

◆◆ 개똥도 약에 쓸려고 하니, 미술학도는 워데갔일까?◆◆

지금쯤 '미술학도'병이 나올 시간인 것 같은데

>책팔러다니던분이 이젠 글도쓰나봅니다.
책많이팔면 글이 나오나보죠 <

미술대학 다닌다고 다 예술가라면 고등학생은 전부 서울대학아니면 하버드대학 합격했지라
미술책은 아무나 보나 뭐
미술은 아무나 하나 뭐
차라리 만화책 보러 갔나
지가 먹는 밥을 꼭 자신이 세수하는 대야에다 비벼먹는 꼴이니
뭐가 되겠어.
생각만해도 속이 느글거린다.
세수대야에 밥 말어먹는 미술
우욱
어데가서 미술학도라고 입 밖에도 벙긋말거라



■■ <정효료수의 글을 비판하며>를 읽고 ■■ -대구에서 미술대를 다닌 아주 천한 인간의 글을 다시 보며
*너희들에게 책을 팔아 주었다는 것은 너희 어머니의 젖과 같이 너희들을 키웠느니라


>책팔러다니던분이 이젠 글도쓰나봅니다.
책많이팔면 글이 나오나보죠
글도 글같지않는 글을 읽고 답답해서 몇자 적어봅니다.
예날에 우리가 이분을 이용닮았다고 했죠 학생들 그림그리는데와서 책은 팔지않고 주제넘게 그림가르켜줄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해보였습니다. 아직도 그짓거리를 하나 보죠 애아버지가 되었을텐데<

정효로수의 글을 비판하며(정효로수→ 정효료수)
책팔러다니던분이 이젠 글도쓰나봅니다.(책 팔러 다니던 분이 이젠 글도 쓰나봅니다.)
책많이팔면 글이 나오나보죠 (책 많이 팔면)
글도 글같지않는 글을 읽고 답답해서 몇자 적어봅니다. (글도 글 같지 않는 글을 읽고 답답해서 몇 자 적어봅니다.)
예날에 우리가 이분을 이용닮았다고 했죠 (예날→옛날 에 우리가 이분을 이용 닮았다고 했죠 )
학생들 그림그리는데와서 책은 팔지않고 주제넘게 그림가르켜줄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해보였습니다. (학생들 그림 그리는 데 와서 책은 팔지 않고 주제넘게 그림 가르켜 줄려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해보였습니다.)
아직도 그짓거리를 하나 보죠 애아버지가 되었을텐데(아직도 그 짓거리를 하나 보죠 애아버지가 되었을 텐데)

미술학도란 학생이 쓴 “정효로수 글을 비판하며”를 읽고 느낀 점을 요약해봅니다.
도대체 이 미술학도들은 개 돼지 키우듯 대학에서 길러졌는지 글쓰기 수준이 초등학교 2학년 같습니다. 미술대학 참 비참합니다
타인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면 그 이름이나 제대로 아는 게 상식이 아닐까요. 그리고 띄어쓰기는 하나도 안돼 있을 뿐만 아니라 옛날을 쓸 줄 몰라 예날 이라 하였군요.
이건 오타가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라는 것처럼 옛을 예로 아는군요.
아마도 정효료수 만큼은 나이가 먹은 미술학도였지 싶습니다. 정효료수님을 욕하는 대구에 이런 쓰레기가 있어서 대구가 발전 못하는 걸까요.
미술학도란 말은 일제 때나 박정희 독재 연장선상에서 쓰던 단어였으니까요.
정효료수 님은 온라인의 황제요 전설로 통하는데
이 미술학도는 미술불구자로 세상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아니 독사새아끼같이 살아온 것이 뻔 합니다
“예날에 우리가 이분을 이용닮았다고 했죠” mbc 가수 왕이 되었고 ‘잊혀진 계절’의 노래로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가수 이용을 닮았다고 하였으니 그때가 80년대였지요. 하긴 정효료수는 자가용이 너무 귀한 84년부터 자가용을 굴리고 심지어 운전기사까지 얼마동안 두었으니 존경의 대상도 되었지요.
22살에 創作과 批評社를 간도 크게 들락거리면서 독재살인정권에 맞선 지식의 메카에서 발행한 창비계간원전과 저 금빛 나는 금서(禁書)를 명문대학마다 운동권에 살포하다 쫓기어 대구에 정착을 하였던가요.
코 묻은 대구시골의 미술 판에서 오늘의 대구미술 뿌리를 내리도록 하였던 정효료수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되지요.
대학 강의실 혹은 실기실에서 수업시간 10분 20분 빌려서 교수도 학생도 구경도 못해본 최고급 수입서적을 상세히 설명하여 주면서 미술에 눈 뜨게 한 분에게 그러면 정말 나쁘지요.
정효료수 님이 미술화집을 대학에 공급할 때만 하여도 책은 너무 귀하였고, 어쩌다 유학이나 외국 갔다 온 교수들은 책 한권 사서 들어와 수십 장을 복사하여 한 장씩 미술학생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어 그림을 그리게 하였던 그 시기에
그 귀하고 귀한 책을 공급하여준 분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책팔러다니던분이 이젠 글도쓰나봅니다.”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미술학도의 글이 대구문화예술회관 홈피에 올린 것을 보면 대구사람임이 분명하며 대구에서 미술대학을 다닌 것 같습니다. 전국의 미술대학(서울대 홍익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중앙대 경희대 전북대 전남대 조선대 원광대충남대 충북대 부산대 부산여대 동아대 ....)이란 대학은 다 다녀본 그분에게 한번 만나 뵙고 미술 이야기를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바닥에 머리를 조아려야 할 거름냄새 풀풀한 시골 미술학도가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미안합니다. 잘못되었습니다 한마디만 하면 미술학도는 아름다워집니다.
종교가 있다면

※ 禁書(금서): 박정희 유신정권과 신군부세력인 전두환 노태우가 약탈한 조국을 찾는 지침서라고나 할까.
소지 배포 복사 책내용 소개 자체가 좌익으로 몰려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매장당할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금서
공개적으로 돌린 사람은 정효료수가 전무후무했다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