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많았지만 미술실천 보여줘
<컬처뉴스>는 연말특집 두 번째 기획으로 [2005년 장르별 결산]을 마련했다. [컬처뉴스가 뽑은 2005년 10대 문화뉴스]가 사건을 중심으로 했다면, 이번 기획은 각 장르별로 벌어진 창작활동들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계를 되돌아보고 전망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 편집자 주 |
2005년 미술계는 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만큼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법정에 선 “예술”, ‘구본주 소송사건’과 ‘김인규 교사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와 예술의 가치, 또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졌다. 삼성은 한 젊은 조각가의 죽음을 다루면서 예술가를 도시일용 노동자로 규정지으며 예술가의 지위와 예술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 사건은 한 예술인이 처한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4개월 간의 일인 시위, 다큐멘터리 제작 등과 같은 다양한 대책위 활동이 있었고 다행히 조정을 통한 항소심 취하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런 점에서 구본주 소송사건은 우리 사회와 문화예술계에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 인식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반면 ‘김인규 교사 사건’은 대법원이 미술교사인 김인규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의 일부가 음란물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우리나라 법정이 예술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더욱이 카우치 성기노출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터지면서 전혀 다른 발단의 두 사건은 같은 주제의 문제로 묶여버렸지만, 덕분에 여론과 방송매체들이 이 사건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김인규 교사를 지지하는 작가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전시를 통해서 이 사건의 부당성과 함께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확대와 창작권 보호를 주장하였다.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예술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다음으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문화예술과 정치의 함수관계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문화예술을 정치에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잘 보여줬다. 이 사업의 원래 취지는 청계천의 생태 문화 역사를 살리겠다는 것이었지만, 충분한 검토와 계획이 없이 공정일기를 단축시키는 무리한 작업과정으로 청계천은 인공하천 조경 사업으로 끝나 버렸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의 문제점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휩싸여 이명박 시장을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급부상시켰다.
서울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청계광장의 공공미술 조형물을 어떤 공청회나 공모전도 없이 미국 유명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올덴버그로 선정했다. 그런데 그 예산이 무려 34억원으로 국내 공공미술 조형비로는 최고가이다. 서울시의 청계천 조형물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관료들의 문화정책을 입안하는데 얼마나 즉흥적이고 비민주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서울시의 문화정책은 시민을 위한 것도, 서울의 문화예술과 서울시 문화기구를 위한 것도 아닌 한 정치인의 대선을 위한 정치적 도구일 뿐이다.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 위작 사건도 올 한해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그림 값이 비싼 두 작가의 대형 위작 유통사건을 통해 한국 미술시장의 문제점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국내 굴지의 옥션을 통하여 위작이 유통되기도 했으면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위작이 기증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위작 유통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은 좀더 정확하고 공정한 감정기관의 필요성과 우리나라 미술유통시장의 문제점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한 2005년 미술의 바깥 스케치였다면, 이제 전시와 작가들의 활동을 통해 미술 내부를 들여다보자. 먼저 김인순의 <느린 걸음>, 이종구 개인전, 이인철의 <안녕한 일상>, 박경훈의 <10년간> 등 민미협 중견작가들의 개인전을 주목하고 싶다. 오랜만에 개인전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반갑지만, 특히 이 작가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실변화를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민중미술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올해는 민족미술협의회가 창립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한가운데서 예술의 사회적 사명과 역할을 했던 민미협이 시간이 흐르면서 느슨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민중미술을 새롭게 재해석한 이들의 전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된 민중미술이란 무엇인지 대안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민중미술의 재도약을 기대하게 했다.
다음은 대중과 소통하고자 한 미술계의 노력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미술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둘러싼 예술적 실천과 담론 생성활동이 무척 활발했다. 바깥미술 프로젝트의 삼백만원 프로젝트, 대안공간 팀 프리뷰의 총신대 도서관에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일주아트하우스와 아트 컨설팅 서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스톤 앤 워터의 석수시장 프로젝트, 안양천 프로젝트, 미술인회의의 세운상가 프로젝트 등 미술은 공공성과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고 일상과 예술의 거리를 좁혀갔다. 또한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활동은 예술과 예술가의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년, 스쾃(squat)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5년간 방치된 목동 예술인 회관을 불법점거하면서 시작한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계속하여 예총 예술인 회관의 문제점을 이슈화하고 이를 예술 실천활동으로 끌고 갔다. 결국 이 사건은 올해 국회 국정감사를 받았고 미술정책으로까지 연결시켰다. 열악한 예술 환경 속에서도 지역 공동체와 사회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엮어낸 여러 미술단체와 대안공간의 예술적 실천에서 우리 미술의 건강함과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한편 미디어 미술에 대한 관심은 더욱 확산됐다. 올해 열린 개인전을 살펴보더라도 전통매체의 전시보다는 미디어, 특히 젊은 작가들은 대체로 미디어 미술을 선호했으며 올해의 작가상도 미디어 작가에게 돌아갔다. 또한 대전 시립미술관의 <디지털 파라다이스>, 주안 미디어 문화축제 등 굵직한 미디어 전시와 축제가 있었으며 청주 공예비엔날레의 올해 주제 역시 공예와 미디어의 접목이었다. 이렇게 미디어라는 매체에 작가와 미술관이 주목하는 것은 미디어라는 매체가 지닌 장점, 즉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인터렉티브적 특성상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예산으로 전시를 치룰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그런 장점 때문에 너무 쉽게 대형전시가 급조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아울러 2005년 미술계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아마도 ‘아시아’일 것이다. (구) 전남도청에 건립될 아시아 문화전당 예정지에서‘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조성사업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그 첫걸음을 뗐으며 아라리오 화랑이 베이징에 분점을 개관했다. 또한 시립미술관의 <시티 넷 아시아>, 포천 아시아미술제, 중국 현대미술전시, 올해 여성 미술제의 주제 역시 <판타스틱 아시아>로 동북아시아, 특히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한해였다. 이런 와중에서 인사미술공간과 대안공간 풀의 <시제일치: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의 메시지>, 쌈지의 <한국과 이스라엘 동시교류>는 서남아시아와 우리의 문제를 시사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마지막으로 미술정책의 문제를 살펴보자. 올해 정부가 추진한 미술정책은 미술은행제도, 공공미술제도, 사립미술관 지원, 기업의 미술품 구입시 세금감면 등이었다. 특히 3월부터 시행된 미술은행제도는 정부예산으로 작품을 구입하여 신진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이 작품들은 정부기관과 지자체, 기업에 대여함으로써 미술대중화를 꾀하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구입대상 작품 선정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고 애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신진작가가 아닌 기성작가, 장르와 지역,·학교별 안배 등을 고려한 소액 다건주의로 흘러 버려 미술계의 기대에서 한참 벗어났다. 이는 미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탓이다. 아쉽지만 지속적인 미술작품 구입 창구가 마련됐다는 점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며 이 제도가 충분히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할 것이다.
이처럼 2005년의 미술계는 예술과 사회, 예술과 정치, 예술과 경제의 접점에서 예술 본연의 문제를 위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부딪힌 한 해였다. 그만큼 상처도 많았고 힘들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80년대 민중미술의 현실참여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 시대 미술이 가야할 방향과 미술실천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