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노동미술굿>에 대한 몇 가지 생각
<2006년 노동미술굿>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작성자 : 신용철(부산민미협 회원/부산대 미학 박사과정)
작성일 : 2006. 05. 11.
2006년 노동미술굿을 생각하며 기존의 노동미술굿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근본적 검토를 해봐야 할 듯 하다. 이것은 이미 만들어진 얼개를 주춧돌부터 허물고 다시 얼개를 가늠해보는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연역과 귀납을 아우르는 이러한 방식을 실용주의 기호학에서는 ‘가추법’이라는 방식으로 사용해온 바 있으나, 우리의 굿과 굿의 현장이야말로 이러한 가추법을 뛰어넘은 새로운 방식의 앎과 삶이 만나고 싸우고 달래고 한 판 노는 마당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노동미술굿’의 양식과 내용을 통해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노동의 문제를 미술에서 다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는 하겠지만, 어찌됐든 노동이라는 화두가 미술적 오브제로 대상화되고 대상화된 프레임 안에서만 노동의 문제가 한정되었다는 것이다. 결과물로서 제출된 전시작품 안에서만 노동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종로에서 시청까지 가는데 전철을 타고 가면서 ‘종로-시청’이라는 선분 사이를 단지 좌표이동할 것인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대상화된 풍경을 무심히 보면서 이동할 것이지, 걸어가면서 하늘도 보다가 행여 동전이 떨어져 있지 않은지 땅바닥을 보든지, 뒤에서 누가 불러서 다시 뒤돌아가던지 라는 방식의 차이는 크나큰 세계관의 차이를 품고 있다. 우리는 고 구본주 소송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시위 속에서 미술이 사회적 노동임을 부각하려 했다. 고 구본주 소송 문제는 일단락 되었지만 이를 통해 촉발된 예술과 노동의 문제에 대한 토론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동하는 하나의 흐름 또는 파장으로서 예술가의 작품을 파악하고 작가가 이러한 작품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노동 문제를 담아내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미술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80년대에 민족예술진영에서 유행시키던 이른바 미술굿, 영화굿 하는 등의 ‘예술장르이름+굿’이라는 조어법이 타당한 것이었는지, 그러한 개념에 맞는 연행마당의 형식적 전범을 구축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예술적 질료가 굿이라는 틀거리와 만날 것인가. 단지 미술전시장에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한다든가, 풍물굿패를 불러서 판굿을 벌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굿의 날 것을 그대로 미술전시에 갖고 온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듯 하지만, 이러한 날 것들의 잔치는 알만한 사람들 주변에서도 흔히 벌어지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 미술, 형식에 있어서는 굿이라는 이분법을 깨뜨리고 미술의 형식과 내용, 굿의 형식과 내용으로 세분화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좀더 세밀한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먼저 굿에서 쓰는 여러 가지 말을 미술과 노동 문제와 견주어가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말이다.
○ 두레, 두레굿, 호미모듬
○ 마을굿, 마당밟이, 바느질뜨기
○ 판굿
* 이러한 논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꼭지와 발표자(예정)를 모시고자 한다.
토론자와의 조합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표 ① : 굿, 굿판, 굿운동
발 표 자 : 박흥주(굿연구소 소장)
토 론 자 :
발 표 ② : 미술과 굿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발 표 자 : 김봉준(화가)
토 론 자 :
발 표 ③ : 우리는 어떻게 노동의 문제를 만나고 받아들일 것인가?
발 표 자 :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토 론 자 :
발 표 ④ : ‘노동미술’의 개념 규정 및 내용·형식 검토
발 표 자 :
토 론 자 :
발 표 ⑤ : ‘노동미술굿’의 지평과 전망 (2007년 노동미술 굿-가상기획)
발 표 자 :
토 론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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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노동미술굿의 내용과 형식 검토를 위한 심포지움 개최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