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벽화를 그리며, 송경동
마지막 벽화를 그리며
- 3류 화가 배인석을 위한 詩
송경동
그러니 이런 것이었다
비정규직 철폐 전국순회미술전을 마치고
한미FTA저지,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예술포스터전을 마치고
나는 그에게 이번엔 대추리로 가자 했다
그는 황새울 벌판에서
붓 대신 각목을 들고 게기다
바보같이 연행되었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그게 미안해 나 역시 한번은 목이 졸려 실려가고
한번은 대가리가 터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우리 모두가 쫓겨 나와야 했을 때
그가 대추리의 기억을 남기자 했다
나는 사실 귀찮기도 했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수백 편의 벽화를 옮길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기찻길 옆 공부방 아이들이 그린 벽화만이라도 남기자고
나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래 그러자. 할께. 너를 위해서 하마.”
기찻길 옆 공부방 아이들의 벽화를
기계톱으로 통째로 잘라 옮긴
대추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그가 처음으로 울었다
바보 같은 새끼!
울기는 왜 울어!
또 가야 할 제국의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털려야 할 자본의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울지도 못하는 나는
그날 새벽, 캠프 험프리 철조망을 넘어 가겠다는 그를
그때 그냥 놔두었어야 했다
행님, 나 인석이요
행님, 나 인석이요
한잔 하는데 형 생각이 나서 전화했수
이 7류 시인아
새벽, 횡설수설할 때마다
그 새벽, 그 날
화폭을 넘어 미 제국의 철조망을 넘다
총 맞아 죽었다는 화가가
이 한반도에도 한 명 있었다는 이야기를
역사 속에 새기고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
삶이 누군가의 시가 되지 못하고
삶이 누군가의 노래가 되지 못하고
삶이 누군가의 벽화가 되지 못하는
우리들의 서글픈 시대를 위하여
더 더 여윈 갈대가 되어
무엇도 남기지 않은 텅텅 빈 속으로
더 더 울어라, 인석아.
더 더 춤춰라, 인석아.
[출처] 3류 화가 배인석을 위한 詩 |작성자 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