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계몽과 신화 사이에 걸려 있는 민족예술 -송두율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10. 01:12

계몽과 신화 사이에 걸려 있는 민족예술


송두율



시간과 공간의 응축으로 표현될 수 있는 '지구화'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민족'이나 '역사'와 같은 개념들을 더 이상 설 자리조차 없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시대사적 진단을 자주 낳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어떤 민족의 정서를 특이하게 표출해온 문화나 예술도 더 이상 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른바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로 일컬어지는 지구적 범위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획일화 현상은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지닐 수 있는 문화적 특수성이나 정체성이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구화가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으로서의 거대도시는 그것이 뉴욕이건 런던이건 프랑크푸르트건간에 이른바 '지구적 도시'(global city)가 갖추어야 할 정치·경제·문화적 조건 때문에 날이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이러한 도시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성장한 토오쿄오나 서울 또는 뻬이징도 그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고궁, 절 또는 고서화나 골동품을 파는 고적한 거리가 있지만 이것들이 지구화시대의 '민족'이나 '역사'를 변호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구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이에 저항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자주 이야기되지만, 우리는 그러한 운명 속에서도 민족문화나 민족예술의 영향력이 완전히 소진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당위성 섞인 질문을 우선 던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질문은 지구화를 '식민주의의 최고단계'라고까지 보고 있는 슬로베니야 출신의 철학자 지젝(S. I ek)의 지적을 상기할 때 절실하게 느껴진다.



계몽과 신화



지구화를 몰고 다니는 '초고속자본주의'(turbo-capitalism)의 속도까지는 예견하지 못한 막스 베버(Max Weber)는 손익계산을 기록하는 부기(簿記)야말로 '자본주의 정신'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보았다. 사실 라틴어 ratio는 '계산'과 '합리성'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근대 유럽 합리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데까르뜨는 수학의 명증성과 정확성을 모범으로 한 세계파악만이 감성적 경험이 배태한 불합리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이딸리아 출신의 비꼬(G. Vico)는 그의 『새로운 학문』(Scienza nuova)에서 합리성으로부터 추방된 신화와 종교의 세계가 바로 인간적인 본질을 더 명확히 드러내준다고 반박했다.

오늘날의 인류학이나 민속학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비꼬의 합리주의(의 계몽성)의 일면적 해석에 대한 이러한 경고는 18세기 중엽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질풍노도'(Sturm und Drang)속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는 이성으로부터 감성을 분리해내고 의무로부터 관심을 추방하려는 칸트철학에 대한 반항이자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합리주의에 대한 최초의 집단적·지적 저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쉴러(F. Schiller)처럼 미학과 윤리학을 통합하려 했고 하만(J.G. Hamann)이나 헤르더(G. Herder)처럼 이성이 감성적인 실존을 획득할 수 있는 언어에 관심을 쏟았으며,

사고나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무한한 것에 대한 경건한 종속감정으로서 종교를 해석한 쉴라이어마허(F.D.E. Schleiermacher)는 앎으로부터 믿음을 깨끗이 분리해내려고까지 기도했다.



합리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문제는 민족과 역사와 정신을 담아낸 '민족사학'(Volkspoesie)에 대한 헤르더의 접근이다.

그는 모든 민족은 역사 속에서 각기 나름의 목적을 구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체험을 언어 속에 담은 문학예술이야말로 민족성원간의 연대성의 직접적 표출이라고 보았다.

당연히 이러한 그의 사상은 당시 동유럽의 민족정서를 크게 자극하기도 했는데, '영구평화'라는 칸트의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하여 민족과 언어 그리고 종교와 신화를 매개로 한 낭만주의와 역사주의를 변호한 것이었다.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전개되어 개성을 말살하는 합리주의와 꽉 짜인 규범 속에 다양성을 가둬두려는 계몽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민족의 얼이라고 볼 수 있는 언어에 대한 이들의 특별한 관심은,

역사적인 언어분석을 기초로 한 '언어순수주의적'인 '통시적'발상이 개개 단어나 어휘를 역사적으로 소급시키는 불필요하고도 잘못된 언어연구라고 비판하는 쏘쒸르(F. de Saussure)의 구조주의적 '공시적'인 언어이론이나 촘스키(N. Chomsky)의 보편주의적 언어이론에 비추어 볼 때 물론 제한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의 윤리적인 삶과 심미적인 체험을 드러내는 모국어의 생명력은 강인한 것이다.

최근에는 정보화시대의 보편어인 영어를 아예 공용어로 하자는 소리마저 들린다.

정보가 생산력이 되는 시대에 네트워크의 열린 체제에 빨리 연동되게끔 아예 영어를 사용하자는 발상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손익계산을 금과옥조로 하는 자본주의 정신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도 기계적인 또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나의 독일인 동료 가운데는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줄 달린 낡은 회중시계를 가끔 꺼내 보면서 시간을 확인하는 친구가 있다.

자주 태엽을 감아주어야 돌아가는, 게다가 정확하지도 않은 낡은 회중시계는 정확하고 디자인도 멋진 디지털 시계가 전달할 수 없는 집안의 소중한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아직도 그 회중시계를 소중히 여긴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의 경험공간이 '지구화'를 통해 급속히 팽창되는 데서 생기는 정서적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종종 고향을 다시 찾게 하는 일종의 '부드러운 우수'를 낳고 있다.



독일의 보도 슈트라우쓰(Bodo Strau )―1993년 「높아지는 산양(山羊)의 노래」라는 산문 때문에 독일의 극우민족주의를 옹호했다는 구설수에 오르긴 했지만 현대 독일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는 최근 『디 짜이트』(Die Zeit)에 발표한 「당신들은 완벽한 공학(工學)을 원하는가?」라는 산문에서 "지구적인 것은 우리에게 이제 집안 일처럼 친숙해졌다.

불기 없는 공간 속에서 이제 친숙한 관계를 그리는 향수가 자라고 있다.

그러나 지구적인 것이 하나의 촌(村)이라면 거기에 교회는 있게 해야 될 것이 아닌가.

진보는 자기의 영역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정신과학이나 문화과학이 그만큼 필요해진다는 '보상(補償)이론'도 따지고 보면 계몽 자체가 신화가 되고 있는 데 대하여 이제는 신화가 계몽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변증법적인 필연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분히 보수주의적인 이러한 입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유교자본주의'논쟁과 함께 재현되고 있는 동도서기(東道西器)적인 발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과 기술 중심의 근대화가 남긴 숱한 문제를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의 힘을 빌려 치유해야 한다는 이러한 발상은 무엇보다도 과학과 기술에는 발전을, 문화에는 이로부터 파생된 문제를 보상하거나 치유하는 영역을 인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결국에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앞에 무제한적인 면죄부를 주고 있다.

그러나 '기술문화'라는 말처럼 기술과 문화는 이제는 더 이상 대립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 자체도 문화가 되었다.



문화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이의 긴장



문화가 "한 민족의 모든 삶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예술적 양식의 총체성"이라는 니체의 정의는

분명 문화가 지니는 통일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문화 자체의 기능도 분화했고, 역사적인 정황에 따라 또 여러 문화간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해 다원화되고 있다.

영미권에서 주로 통용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문화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이에 놓여 있는 긴장이 최초로 하나의 종합을 이룬 상태는 이른바

'고대문명'―이집트, 그리스, 중국 등―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러한 종합도 산업화와 더불어 새로운 긴장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여러 민족성원이 이주해서 함께 살고 있는 미국, 오랫동안 식민지를 지배한 경험 때문에 타민족과의 공존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이나 프랑스, 이들에 비해 타민족과의 공존을 경험한 시간이 아주 짧거나 또는 굴절된 독일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만 보아도 문화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안고 있는 긴장에서 파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은 분명하며, 이에 따라 '문명충돌'까지 야기되는 상황이다.

최근까지도 독일에서는 '주도문화'(主導文化, Leitkultur)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야기되었다.

이는 독일에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들―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도 독일의 주류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리아 출신의 정치학자 티비(B. Tibi)의 주장에 보수적인 기민당(CDU)이 적극 호응해서 이를 당의 외국인 정책의 근간으로 삼으려는 데서 파생한 논쟁이었다.

문화의 다양성을 내세우는 '다문화주의'에 대하여 문화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입장은 영미의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민족 이해에 있어 특히 혈연적·문화적 동질성을 강조해왔고 한 민족의 가치는 그들의 유일무이한 특성에 있다고 보는 역사주의적·낭만주의적 전통이 강한 독일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당연시되고 있다.

단일민족임을 항상 강조해온 우리의 문화 이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문화가 지니는 다양한 속성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남아 출신 노동자, 심지어는 같은 민족성원이라는 조선족에 대한 비인간적인 태도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타자'에 대한 이러한 무지와 경멸이 '우리 안의 파시즘'의 한 모습을 드러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타자'라고 하더라도 가령 미국, 서구 또는 일본은 대부분의 경우 분명히 달리 대접받고 있다.

이들은 멸시해야 할 '타자'가 아니라 무조건 따라 배워야 할 선망의 대상인 '타자'인 것이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무지와 자기중심적인 문화가 낳는 '우리 안의 파시즘'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비하와 자기상실을 끝없이 재생산해온 '우리 안의 사대주의'도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자신으로부터의 도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루쏘(J. J. Rousseau)는 언어의 기원과 관련하여 "인간을 연구하려면 우리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인간 자체를 연구하려면 시야를 먼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며,

자신과의 '분리'(d tachment)가 인류학의 진정한 출발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분리'속에서 등장하는 '타자'는 구별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내 속에 완전히 용해된 것도 아니고,

구별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나와 완전히 격리된 것도 아닌 상호 연계된 긴장의 구조 속에 있다고 메를로-뽕띠(Merleau-Ponty)는 보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는 '같음[同]'은 '다름[異]'이 있어야 드러나고 다름은 같음이 있을 때 드러난다는 원효(元曉)의 『금강삼매경론』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민족문화의 통일성과 다원성 사이에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같음 속에 다름이 있고 다름 속에 같음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 없이는 우리가 종종 보편적이라고 느끼는 문화나 예술―대개는 뉴욕이나 빠리 또는 토오꾜오에서 시작된―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다고 믿거나, 이와는 정반대로 그러한 문화나 예술은 애당초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애써 폄하하려는 태도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러한 긴장을 예술이라는 범주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전달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먼저 작곡가 윤이상(尹伊桑)과 화가 이응노(李應魯)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민족예술의 전형: 윤이상과 이응노



2000년 11월 4일에 베를린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린 윤이상 5주기 기념음악제는 '윤이상과 드뷔시'라는 주제 아래 열렸다.

실제로 1986년 7월에 윤이상은 '드뷔시와 나'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면서, 자신과 깊이 결부되었다고 느끼는 서양 작곡가 한 사람을 꼭 택하라고 한다면 드뷔시를 택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드뷔시의 음악이 구속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또 밖으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내면적으로 빛을 발하는 것과 감성적이면서도 거리를 취하는 차가움은 자신의 음악미학의 기본인 '움직임 속에 있는 고요함'[靜中動]과 유사하다고 그는 지적했었다.



드뷔시도 비유럽적인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끌어들였다.

특히 구속력 없이 떠도는, 그리고 장식적이면서 계속 증식하는 '아라베스끄'(arabesque)요소를 도입했지만, 윤이상은 자신의 작곡기법에서 장식적 요소는 그 자체 속에서 유동하며 그러면서도 쉼없는 음향적 흐름 속에 살아있기 때문에 드뷔시의 '아라베스끄'보다 더 목적지향을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였다.

드뷔시와 윤이상 음악 사이에 있는 이러한 차이의 밑바탕에는 동아시아(한국)적 음악미학이 담고 있는 철학적 원리가 놓여 있다.

이를 윤이상은 "선(線)적 연속성을 지각하는 일이라든지, 음악적 해석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색조를 변화시키면서도 이 다양한 색조가 통일을 빚어낸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이 점에서 우리는 음과 양이라는 동아시아적 사상이 통일성 속의 다원성과 함께 다원성 속의 통일성을 이야기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동아시아(한국)적인 음악미학의 뿌리 때문에 윤이상 음악은 결코 드뷔시 음악의 복제가 될 수 없었고 오로지 윤이상의 음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응노의 그림세계도 마찬가지다.

파울 클레(P. Klee)의 「문자(Inschrift)」(1921)나 「제도모음집(Zeichensammlung)」(1924)에서 우리는 상형문자―예를 들면 한자―가 단순한 의미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미적 체험을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림과 그림 아닌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미적 체험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 '암호문자'(Kryptogramm)가 새로운 미적 체험의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클레의 발상은 후에 미쇼(Michaux), 미로(Miro), 바우마이스터(Baumeister), 토우비(Tobey)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이응노가 빠리에 정착하면서 남긴 숱한 작품 속에서 우리는 한자나 우리 글이 미적 체험을 새롭게 형성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이응노가 한자나 우리 글을 수단으로 형상화한 그림과 클레 이후 시도된 '암호문자' 사이에 놓여 있는 미적 체험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출발의 뿌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클레가 '암호문자'를 미적 체험의 열쇠로서 발견하기까지 선을 강조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보여주었던―1차 세계대전 직전에 유행한―'유겐트슈틸'(Jugendstil)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데 반하여,

이응노의 그림세계는 전통적인 동양의 서예와 묵화의 세계 속에 내린 깊은 뿌리로부터 출발했다.



물론 비슷한 창작기법을 거의 같은 시기에 빠리에서 사용한 남관(南寬)은 이응노의 기법이 위에 지적한 클레 이후 계속된 문자추상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폄하했지만,

이응노 문자추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문인화와 붓글씨는 그의 문자추상을 결코 클레의 문자추상의 복제가 아니라 오로지 이응노의 문자추상으로 남게 했다.

그가 "나는 동양화에서 선(線), 한자나 한글에서의 선, 삶과 움직임에서 출발하여 공간구성과의 조화로 나의 화풍을 발전시켰습니다.

한국의 민족성은 특이합니다. 즉 소박·깨끗·고상하면서 세련된 율동과 기백―이같은 나의 민족관에서 특히 유럽을 제압하는 기백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그림입니다"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는데, 놀랍게도 윤이상의 음악세계와 통하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전통이 키워온 통일적인 자기정체성 없이는 복제를 통해서 무한히 가능한 거짓 '다원성의 세계'―이는 특히 오늘날 '지구화'된 자본에 의해서 통제되는 '문화산업'이 만들어내고 있다―라는 일종의 사기극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전지구적 범위에서 무서운 속도로 번창하는 '문화산업'의 격류 속에서, 또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마지막' 이데올로기로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 상황 속에서 통일적인 자기정체성이라는 문제는 이제 아예 잊어야만 하는가?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aerung)에서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h. W. Adorno)는 계몽이나 탈신화(脫神話)는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데,

이는 신화가 살아있지 않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계몽과 신화에 대한 동시적 비판으로서 '계몽의 변증법'은 바로 계몽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거나 또는 만들 수 있다는 신화를 고발하고, 동시에 신화가 운명이나 원죄처럼 '항상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도록 만드는 강압도 고발하고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윤이상의 음악이 드뷔시의 음악이 아니고 이응노의 그림이 클레의 그림이 아닌 것은 바로 '계몽'―이는 우리에게 '서양예술'로서 나타나고 있다―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보편성이라는 세계의 모순을 꿰뚫어보면서도 동시에 '신화'―이는 우리의 심미적 체험을 길러낸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가 지니는 보수성과 억압성도 함께 넘어설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계몽'과 '신화'사이의 이러한 긴장을 직시하는 예술만이 '지구화'시대에 복제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심미적 체험을 세계에 전달해줄 수 있는 참다운 '민족예술'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