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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제주원정투쟁단 2일차 소식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1.

시원한 파도소리와 함께 제주도 원정투쟁 2일차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제 무슨 일이도 있었냐는 듯 맑은 하늘과 높은 파도는 전날의 피로도 잊게 만들어 주었다.
아침일찍 일어난 원정투쟁단은 새롭게 투쟁의 각오를 다지고 버스를 타고 집회장소인 중문으로 향했다.
계엄의 상황을 방불케 하듯이 어김없이 전경들이 우리의 앞을 막고 있었다.

농사와 일을 모두 접고 민중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농민, 노동자, 아이들을 떼어놓고 달려온 여성들, 중간고사도 포기하고 달려온 학생동지들..
누구 할 것 없이 전국에서 달려온 3천여명의 투쟁단은 중문입구에서 전경들의 봉쇄에 맞서 농축산인 결의대회를 시작하였다.
각계각층의 투쟁단의 연설과 결의문으로 투쟁의지를 높인 투쟁단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길을 비켜달라고 경찰들에게 요구하였지만, 버티고 서 있던 전경들은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투쟁대오를 향해 곤봉과 방패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다.  
농민, 여성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폭행에 많은 동지들이 부상을 입었지만, 그 틈을 타서 전농 전북도연맹, 충북도연맹 소속 농민 120여명이 협상장 진격투쟁을 벌였다
몇개의 귤밭을 넘어 갖은 고생끝에 협상장소인 신라호텔 앞까지 기습시위를 벌인 농민투쟁단은
'한미FTA저지 하라''우리 농민 다 죽는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협상단들의 코앞에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훌륭한 투쟁을 진행하였다.

한편, 1만여명의 제주도민으로 구성된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한미FTA 상여를 메고 국제컨벤션센터 까지 장례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이제 제주도민 투쟁단과 원정투쟁단이 합쳐진 약 1만3천여명의 한미FTA저지 투쟁단은 국제컨벤션센터 앞에서 범국민대회를 가진 뒤, 협상장인 신라호텔 진격투쟁을 전개하였다.
(인구 55만의 제주도에서 1만이상의 집회대오가 집결한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컨테이너와 방파제용 돌로, 협상장가는 골목골목마다 원천봉쇄를 시킨 경찰은 너무도 비겁한 모습으로 투쟁단의 앞길을 막았다.
일부의 동지들은 컨테이너 박스에 대항하는 투쟁을, 일부는 방파제를 돌아 해상투쟁을 전개하였다.
육지길이 막히면 바닷길을 이어서라도 건너가서 협상을 저지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고, 자랑스럽게 전개되었다.
많은 동지들이 가만히 있어도 손이 시리는 날씨에 차가운 바닷속에 뛰어들고 맨손으로 절벽을 올랐다.
한동지 한동지가 줄을 잡고 건너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동지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많은 남성동지들 속에서 제주도당 여성위원장님을 비롯한 3명의 여성이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었다.
울산시당에서도 동구의 황성순동지와, 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진욱 동지가 용감히 바닷물을 헤엄쳐 투쟁의 띠를 이었다.
항쟁의 섬 제주도에서의 동지들의 해상투쟁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진한 감동 그 자체였다.
방파제에 남은 투쟁단의 눈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폭력경찰의 만행은 거친 파도보다도 오히려 더 세게 몰아쳤다.
어렵게 건너간 바다 저편에는 투쟁단의 가열찬 모습에 당황한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바다를 건너간 동지들이 흠뻑 젖은 몸을 채 말리기도 전에 경찰의 곤봉에 폭행을 당하고 돌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차마 건너가지 못한 대오는 폭력경찰의 만행에 함성을 외치며 대항하였다.
바다를 건너간 일부 대오는 신라호텔 바로 앞 모래사장에 올라 한미FTA저지를 외치며 열렬히 투쟁하였다.

이렇게 야수적인 경찰의 방해공작에 맞서, 우리의 한미FTA저지 원정단은 끝까지 열렬히 투쟁을 지켜내었다.
이 투쟁은 단순히 몇몇의 투쟁이 아니다.
미제에의해 유린되어 온 7천만 겨레의 주권과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찾는 투쟁이오, 전 민중이 하나되어 단결하는 투쟁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투쟁이 있을 수 있었고, 승리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계속 될 것이다.
온 민중의 가슴속에 승리의 신심을 심은 오늘을, 그리고 항쟁의 섬 제주를 끝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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