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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현장-4.3 60주년 ①] 2일(수), 4.3 문화제 전야제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7. 15.

▲ 평화와 희망을 소망하는 간절한 바람이 꽃비로 쏟아져 전야제 행사장을 적셨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사방이 물이라, 섬이라 그 안에 갇히고 나갈 수 없었던 영혼들이 제주도를 맴도는 듯 했다. 4월 2일(수) 제주시청 앞 주차장에는 단이 쌓이고 오색 조명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4.3문화제가 ‘60년의 기억, 60년의 희망 진실의 노를 저어 평화의 바다로’를 슬로건으로 망자와 산자를 위한 살풀이 한 마당이 시작됐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진행 된 이번 전야제는 문충성 시인의 숭고하고 절도 있는 시낭송으로 막이 올랐다. 시인은 불과 60년전 제주도에서 정부가 자국민이자 양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과오에 안녕을 고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반세기를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상생하자는 간곡한 시로 객석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낭송에 이어 국악인 김영임의 카리스마 있는 무대는 관객들의 호흡과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풍부한 움직임과 웃음이 만연한 표정은 바람에 얼어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곡소리 같은 아리랑 타령 속에서 고즈넉하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제주시청을 가득 메웠다. 법구경 같은 <정선 아리랑>타령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친지와 이웃들의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지막으로 부른 <뱃노래>는 전곡들과는 달리 흥이 돋는 노래로 김영임은 ‘어야디야 어기어차’하며 관중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관객들을 노래판으로 끌어 당겼다.

4.3 문화제의 전야제의 하이라이트는 유족들로 구성된 60명의 ‘평화 지킴이’들이 시민들 앞에서 평화선언문을 낭독하는데 있었다. 대표로 선언문을 읽은 김두언 유족회장은 격전의 세월을 보내온 모든 사람을 대신해 피가 끊는 목소리로 선언문을 읽어내렸다. 그는 “오랜세월 동안 침묵하고 깊은 상처는 감춰야 했지만 이제 4.3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이라 인정 받으며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았다”며 “앞으로 상생과 치유의 길을 다하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선서가 끝나자 마자 종이축포가 쏘아져 무대와 객석 사이로 종이가 꽃비처럼 쏟아졌다.

평화선언문 낭독 이후 이어진 2부 문화공연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4.3 60주년을 축하해 주었다. 2부는 충청북도지정 전문예술단체 풍물굿패인 ‘씨알누리’의 구성진 태평소 소리로 시작됐다. 차가운 대기 속을 가르는 처연한 태평소 소리를 배경으로 향이 가득 꽂힌 단지를 무대 위에 놓는 퍼포먼스는 단박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씨알누리’의 공연은 몰아치는 바람만큼이나 거세고 깊게 관객 속으로 다가갔다. 꽹과리와 장구가 치고 빠지기를 수십번 관객들의 표정에선 4.3의 묵은 한들이 꽹과리 소리를 타고 실타래 풀리듯 풀어졌다.

‘씨알누리’의 공연으로 뜨거워진 무대를 이어 받은 사람은 제주출신 부모를 둔 재일교포 2세 가수 이정미 씨였다. 지난 2003년부터 매년 4.3 행사를 찾고 있는 이정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라에서 노래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그는 “오늘을 위해 오사카와 교토에서 100여명의 재일교포가 함께 자리를 해주었다”며 “4.3 60주년의 의미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되새겨 보자”고 이야기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상처 받은 영혼들을 다독이는 목소리로 불려지는 <아침이슬>은 더 없이 아름다웠다

이정미도 <뱃노래>를 준비해왔다. 앞서 불린 김영임의 뱃노래가 함께 노를 저어가는 노래였다면 이정미의 노래는 어머니의 손길 같이 따뜻한 노래였다. 이정미가 <아침이슬>을 불렀을 때 객석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개중에는 북받쳐 오는 감정에 눈시울을 닦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정미는 <아침이슬>을 각각 한국어(1절)과 일본어(2절)로 나누어 불렸으며 함께 자리했던 재일교포, 제주시민들, 일본인들은 서로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장관을 보여주었다.

한편 4.3 60주년을 기념해서 일본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의 우미세드 유타카와 나라이 치도리가 함께 무대에서 한국말 ‘아이고’를 노래 가사로 넣어 부르며 유족들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에 깊은 애도를 보내 객석으로부터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전야제는 윤도현 밴드의 공연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반세기를 넘어서 4.3은 다시 첫돌을 맞았다. 정부가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4.3특별법이 마련되었지만 아직도 역사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 산사람 곁을 맴돌고 있다. 올해 60주년 이후 제2의 시작을 준비하는 4.3이 그 바람대로 평화의 바다로 흘러 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컬쳐뉴스 - 박수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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