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하여
자유실천위원회 성명서
지난 세기 우리는 강대국이 주도하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이 우울한 그림자는 완전히 걷히지 않아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 또 이라크 등지에서는 여전히 분쟁과 강대국의 횡포, 잔인한 살육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위협도 여전합니다. 일본은 평화헌법까지 수정하며 군세를 확장하려하고 있고, 중국은 최근 군비지출을 무서운 속도로 확충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움직임 속에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반도에서의 군 운용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추리의 슬픔은 이 일환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각종 명분과 국제역학관계가 작용하여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해질 지경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시시비비의 와중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군비강화는 지속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 세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군비 감축과 국제사회간의 신뢰구축 등을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적어도 한반도의 실질적인 국제역학에서는 공염불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 한반도가 평화의 땅으로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루 빨리 북한과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신뢰의 길을 구축하는 것이며, 열강들을 중재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국제사회의 군비감축과 상호존중에 동참하도록 호소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반대로, 우리가 열강들과 군비 경쟁을 벌이거나 자극하고, 중국이나 미국 어느 한 편에 서서 다른 편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거나 하는 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렵게 몰아내고 있는 지난 세기의 폭력과 광기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진정 두려운 것은 ‘우리가 자주국방을 갖추지 못했다’가 아니라 자주국방을 갖췄다 해도 열강들의 명분에 그 자주국방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이 한반도가 화약 냄새와 죽음의 연기로 뒤덮이는 것,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길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습니다. 크고 작은 잡음과 분열 속에서도 우리가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이라크 파병 반대에서도 한 목소리를 냈던 것도 이러한 까닭입니다. 물론, 그 동안 우리는 또 한편으로는 분단된 조국과 국제사회의 현실을 인정하여 국방부의 군무기 현대화와 크고 작은 군 사업, 그에 따른 예산확보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의 의지와 그 노래를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대내외적인 타당성과 동조의 감정이 검증된 환경 속에서 신중하고도 타협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자주국방이라는 미명아래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강경론자들과 군부의 입지 세우기 작업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방부의 전력강화 방침에 의해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추진하고 있는 해군은 군부의 행정명분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안보국책사업이며, 최종적으로는 자주국방을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김태환 제주지사는 자신이 정치적 책임을 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에 동조하며, 기지건설 수용에 따른 투자비용과 해당지역 주민 보상으로 인한 제주 경제 발전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 1500여명이 참여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며, 과연 이번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이 진정 제주도민과 한국의 안보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첫째, 해군은 해상안보론, 제주기지 적합론, 경제효과론, 동북아균형자를 위한 필수전력론 등을 내세우며, 마치 제주도와 한국의 순수한 안보와 그 전략의 확보를 위해 이번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타당하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측면에서 이런 주장이 허구이거나 과잉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해군의 입장이 한국사회의 불안심리를 자극하여 자신의 입지를 무리하게 확보하려는 냉전체제의 군사주의적 발상이나 군사편의주의적 발상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이러한 무리수가 결과적으로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자극하여 오히려 안보를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제주의 안보를 위한다는 애초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미국의 MD체계에 편입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둘째, 제주도는 2005년‘세계평화의 섬’으로 이미 지정되었으며, 그와 관련한 법이 제정되었고, 또 그에 기반해 활발한 홍보와 관광개발사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6.15 공동선언 이후 한반도에 있어 또 하나의 상징이자, 열강 사이에서의 우리 입장의 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해군기지 건설과 그 향후 여파로 인해 그 이미지와 상징성이 훼손당하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안보와 평화의 공존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고 실제로는‘세계평화의 섬’자체를 무위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셋째, 국방부와 김태환 제주지사는 해군기지건설에 투자되는 건설비용과 기타 보상비용, 해군기지 설치 이후에 유입되는 인구 증가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파급 효과를 통한 지역 경제발전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이뤄지는 경제발전이 제주의 천연관광자원과‘세계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통한 제주의 자생적 관광활동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또한, 물질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제주의 민심과 문화, 자연환경, 그 상징성 등을 군 당국의 주관적이고 과잉된 안보의식과 허울뿐인 명분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넷째, 김태환 제주지사는 이번 결정이 1500명이 참여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500명 중 기지 후보지역의 주민은 겨우 10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후보지로 결정 발표된 서귀포시 강정동의 경우에도 지역주민의 여론을 수렴했다는 마을총회의 적법성 논란 속에서, 최근 강정마을의 주민 여론은 찬성보다 반대의사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조사기관에서조차도 인원선정과 통계의 데이터화, 또 그 과정에서의 절차들에 대해 잘못을 시인할 정도로 이번 여론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더 나아가, 이 여론조사 당시 제주도민의 70%는 제주도에 해군 기지가 건설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김태환 제주지사의 주장대로 과연 이번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역주민 여론 수렴 절차와 과정이 민주적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불어, 이미 해군과 결탁해 결정을 내려놓고, 여론을 그것에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번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의 모든 사안에 걸쳐 애초 해군과 김태환 도지사의 말대로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해군과 도지사의 입지보다는 제주도와 한국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주도는 과거 4.3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곳입니다. 따라서 2005년 이 섬이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정된 것은 그 자체가 제주도민과 한반도 전체의 염원이 담긴 상징이자, 세계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 어떤 허울 좋은 명분도 이 고결한 상징과 약속을 꺾을 수는 없으며, 또 꺾어서도 안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젠가는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의 논리만을 쫓아 모든 것을 쉽게 결정하기보다는 미래의 가치와 조화를 위해 보다 진지한 성찰과 반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이제 맨몸으로 이를 촉구하는 제주도민과 뜻을 함께 합니다. 우리는 제주도민의 동참 없는 그 어떤 일방적인 행정 집행도 당장에 중지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철회되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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