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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한겨레, 독재의 그림자 지울 현대미술관 ‘바쁜 붓질’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30.

독재의 그림자 지울 현대미술관 ‘바쁜 붓질’
옛 기무사 터에 들어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임종업 기자 김명진 기자


» 본관 1층 내부(왼쪽) 미술관 변신을 앞둔 옛 기무사 본관 건물. 일제시대 경성의전 외래진료소로 지어져 서울대병원, 육군병원, 기무사 등으로 쓰이며 한국 현대사를 지켜보았다. (오른쪽)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말 ‘한 건’을 했다.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 터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쓰기로 하고 이를 아퀴지어 버린 것.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방침을 옛 기무사 강당에서 밝힌 것은 혹여 있을지 모를 다른 부처의 ‘딴지’를 봉쇄하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미술협회, 민족미술인협회, 화랑협회 등 11개 단체는 합동성명을 내 “수도 서울에 변변한 국립미술관 하나 없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건물 낡고 층고 낮아 전시공간으로 부적절
안전진단 거쳐 리모델링·철거…2012년 개관
시각예술·음악·패션·건축 등 장르융합 포부


■ 기무사 터의 실체는 서울관이 들어설 자리는 옛 기무사 터 2만7402㎡(8303평) 가운데 국군서울지구병원과 옛 기무사 신관 및 내무반을 뺀 5303평. 현재 이곳에는 근대문화재 375호인 본관(4933㎡) 외에 강당, 소격아파트 등 건물 11개 동과 테니스장, 연병장이 들어서 있다.



» 기무사 부속 건물인 소격아파트(오른쪽)와 전산센터. “1972년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특별하신 배려로 지어지다”라는 기념비가 눈에 띈다. 기무사 이전 직전까지 군인 가족 44가구가 살았다.


본관은 애초 경성의학전문학교 외래진찰소로 지은, 지상 3층 지하 1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 지난해 근대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지은 지 77년 된 본관은 안전진단 D급 판정을 받을 정도로 낡아 지하층에 임시 철골지지대로 보강해 둔 상태다. 또 군인 가족들이 살던 소격아파트는 1972년 지어진 건물로 보존 가치가 별로 없어 철거해도 무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강당 외 모든 건물 층높이가 3m 안팎인 점. 미술관 관계자는 “현 상태로는 미디어, 설치 등 현대미술 전시 공간으로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부의 큰 그림은 서울관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21세기 미술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게 문화부의 구상이다. 시각예술 일변도에서 벗어나 현대 무용, 대중음악, 패션, 건축, 음식 등의 장르간 융합을 꾀하고, 이를 뒷받침할 창작 및 전시 공간을 제공하며 국제 기획전시, 심포지엄, 레지던스 등을 통해 세계 미술계의 흐름과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에 따른다면, 서울관은 근대 미술을 연구·전시하는 덕수궁 미술관, 국가대표 미술관으로 미술작품 수집·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과천관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의 3대 축이 될 전망이다.

서울관은 올해 200억원을 시작으로 땅값 1125억원을 완불하고 2012년까지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이달 중 용역을 주어 안전 진단을 포함한 기존 건물 재활용 여부 등의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께 기본·실시 설계에 들어간다. 앞서 국방부와 사용 계약을 맺어 미술 장터, 기획전시, 공연 등의 선언성 행사를 치르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 단계별 계획은 기존 건물을 되도록 재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리모델링 모델로는 초등학교 건물을 레지던스 및 전시장으로 재활용한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별관 ‘PS1’이 꼽히고 있다. 장기적으로 서울관을 북촌 한옥마을 및 그 일대 사립미술관과 연계해 에코뮤지엄의 중심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쪽으로 흐르는 중학천의 복개된 뚜껑을 들어내고 하천 일부를 복원해 역사 공간인 경복궁과 연결하고, 아트선재센터를 사들여 길 건너 정독도서관 공간을 아우름으로써 북촌과 자연스럽게 일체화하겠다는 것이다.

■ 걸림돌은 대통령이 이용하는 국군서울지구병원과 옛 기무사 신관을 남겨둔 채 개관할 경우 미술관과 권위적 군사시설이 양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남은 군사시설이 이웃한 북촌과의 문화적 맥락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좀 더 떨어진 서울대병원을 이용해도 된다는 뜻을 폈지만 국방부는 군인들도 사용한다는 이유로 병원 매각에 부정적이다. 만만한 문화·복지 예산을 늘 덜어내는 국회를 설득해 땅값과 리모델링 예산을 확보하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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