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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10년~2019년대 자료

부산문화 판의 “뒷패” 故 최 정완을 보내며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5.

부산문화 판의 “뒷패” 故 최 정완을 보내며

삶의 소통 죽음의 힘을 계속 빌릴 것인가?

배 인석(글쓰고,일하고,놀고,술쳐묵고,씨부리기도하는화가)

 

 

부산문화재단에서는 올 한해 한시적으로 미술 분야의 전업 작가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물론, 지원 방법과 절차에 대한 모색도 중요 하지만 과연 전업 작가란 무엇인가? 그 기준과 개념의 현실적인 규정이 문제가 될 게 분명하다. 전업을 붙인 단체 회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아주 단순한 적용이 아닌 전업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카테고리와 수급 규모에 따른 형평성을 위해서는 부산에 맞는 현실적인 개념규정이 난제요 풀어야 할 숙제라 여겨진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난제이므로, 앞으로 문제 야기를 감수하더라도 부산의 전업 작가라는 규정을 도리 없이 제시하여야 할 처지에 문화재단은 놓여 있는 것이다. 단지 이 문제 제기의 파문을 줄이는 길 또는 절차는 이에 대한 수급의 당사자들(또는 잠정적인 당사자) 간의 충분한 논의와 소통과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가운 일이면서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예술인복지가 점점 수면에 떠올라오고 있는 형국이다. 무려 10년 만에 한국문화단체의 양대 산맥인 예총과 민예총이 목소리를 같이 내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두 단체가 현재 시행을 주장하는 예술인을 위한 복지법안은 올해 1월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故 최 고은)의 불운한 죽음의 충격과 여론에 밀려 여, 야가 법안 상정을 합의한 인상이 짙다. 이 법안은 현재 문광부 장관을 하는 한나라당의 정 병국 의원과 2009년 10월 당시 민주당의 서 갑원 의원이 따로따로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기초로 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서로 다른 당에서 제출한 법안은 거의 유사한 내용을 하고 있으며, 이 법안의 제목 또한 띄어쓰기 빈칸 하나의 차이라는 것이다. 즉, '예술인 복지법안'과 '예술인복지법안'의 차이 정도이다. 여, 야간 소통을 위한 모양새나 노력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소통 부재의 사이 어려운 창작의 조건에 빠진 예술가는 죽어 간다는 사실은 정치가들의 미필적 고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예술계의 변변한 대응이 없을 뿐 더러 이런 사실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단체는 정치계는 도대체 그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난 3월 22일 부산일보에 “문화, 서로 통해서 오해가 없어야”를 기고한 최 정완씨가 등산 중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의 죽음은 비록 가난한 지역의 문화 판이지만 십시일반 하여 문화예술인 장으로 엄수됐다. 하지만 이 문화예술인 장도 약간의 반쪽 일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에서도 지역의 예술단체 간 소통의 부재는 여전한 것이다. 고인의 기고 글에는 현 정부의 일방적인 국책사업과 문화단체의 일방적인 지원중단, 그리고 부산예술인회관 건립과 입주, 친일 문학인 시비문제를 거론하고 부산 문화재단이 지원정책에 문화예술인 전체가 참여하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새롭게 출발하는 재단의 힘이 되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51살 젊은 나이에 부산 문화판의 뒷패 일을 중단한 채 우리의 곁을 갑작스럽게 떠나갔다. 우리는 그를 생의 마지막에 “영원한 광대, 문화 운동가”라 칭하였지만, 과연 그를 예술가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산의 온전한 문화 운동가로 만들고 서로 기리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부산이란 도시의 예술과 문화 활동의 뒷받침은 치열한 집중과 실천이 필요한 예술가의 의욕을 상실시키기에 충분한 실정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뒷패 故 최 정완은 부산 문화판의 이 열악한 환경을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고맙고도, 미안하고, 때론 그를 통해 여의치 않은 것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가 죽음에 이를 삶을 이미 젊은 나이에 한 판 “굿”으로 명명할 줄 아는 선배였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자 이제 창작 환경의 열악함과 소통의 부재를 아직도 그대로 남겨둔 채 그는 떠났으니 남은 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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