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전 민예총이사장) 선생께서 오늘 새벽 소천하셨습니다.
장례식장은 신촌 세브란스 병윈 16호입니다.
내일(5월 5일)부터는 특2호(5월8일까지)로 장례식장 호실이 변경됩니다.
장례는 5일장이며 영결식(발인)은 5월 8일 오전 7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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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차비 있나" 묻던 '용태 형' 故 김용태 前이사장
기사입력 2014-05-04 13:52 | 최종수정 2014-05-04 13:56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니 차비 있나?"
80년대 어려웠던 시절, 늦은 밤 인사동 골목에서 술에 취한 지인의 차비를 일일이 챙긴 것은 '용태 형'이었다.
열띤 토론으로 분위기가 싸해지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혁대를 배꼽까지 올려 입은" 작은 키로 두 주먹을 쥐고 목청껏 "산포도 익어가는 고향 산길에 산포도 따다 주던 산포도 처녀∼♬"를 열창하던 '용태 형'.
문화예술계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그냥 '용태 형'으로 통하던 김용태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이사장이 4일 오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문화계 마당발이자 '민중 미술계의 일꾼'이었다.
생전 그와 친했던 작가 임옥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아니 권력의 중심에서도 그는 늘 무관에다 빈 주머니였다"며 "물론 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을 쓴 적도 있으나, 모든 직이 다 심부름 즉 따까리, 설거지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79년 민중미술 공동체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으로 미술을 통한 사회 참여 발언을 시작했다.
'민중미술계의 일꾼' 김용태 전 민예총 이사장 별세. (연합뉴스 DB)
이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운영위원(1984년),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사무국장(1985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백기완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1987년), 민예총 초대 사무처장(1988년), '코리아통일미술전' 남측 단장(199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2002년), 6·15 공동선언 남측위원회 공동대표(2005년) 등을 역임한 그의 이력은 엄혹한 시기에도 문화예술운동의 한복판에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주둥이로만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은 용태 형 앞에서 맥을 못 췄고 먹물 냄새가 나면 막걸리 주전자가 날아갔다"며 "그래도 될 정도로 인간적인 신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문화예술가이드북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미술과 생활', '가나아트' 등의 출판편집인으로도 활동했다. 대표작으로는 동두천 기지촌 여성과 미군 병사 등 기지촌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 콜라주한 작품 'DMZ'가 있다.
그런 김 전 이사장이 2011년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데 이어 작년 여름 병원에서 "1년을 못 넘기겠다"며 간암 판정을 받자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김용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용사모)을 만든 것도 그의 이런 활약상과 더불어 인간됨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용사모는 지난 3월 고인과 40여 년 연을 맺어 온 문화예술인 46명이 쓴 글을 엮은 책 '산포도 사랑, 용태 형'(현실문화)을 내고, 강요배 등 작가 43명의 작품 100여 점을 모은 '함께 가는 길' 전시회를 열었다.
"김용태 선생은 마땅히 들풀임을 살아왔다. 그의 삶, 그의 투쟁, 그의 역사가 곧 거대한 예술이 아니던가"(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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