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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그때 그 사람들' 성명서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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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사법부야말로, ‘그때 그사람들’!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다큐멘터리 장면 세 곳을 삭제하라는 법원의 결정에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분노를 넘어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법원은 영화 도입부의 부마항쟁 시위장면과 영화 마지막의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사 장면, 박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을 삭제하라고 결정하였다. 법원은 이에 대해 “관객들이 영화 속의 인물을 실제 인물로 오해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부분은 삭제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문제의 장면들이 작품의 완성도나 흐름상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덧붙이고 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관객들이 오해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는지, 또 어떤 이유로 흐름상 필수불가결하지 않다고 결정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인물과 영화 속 인물 사이의 관계에 대한 판단과 해당 장면이 작품의 완성도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창작자와 관객의 몫이다. 창작자와 관객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삭제 개봉을 결정한 법원의 판결은 명백한 사전검열행위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얕은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어리석음’으로 치부하기엔 이번 판결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굳이 헌법정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사법부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 사전검열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무참히 무너뜨리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일 뿐 아니라, 역사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에 다름아니다. 진정 사법부는 창작자와 관객 위에 군림하면서 표현해도 될 것과 표현하면 안되는 것을 판단하고, 봐도 될 것과 보면 안되는 것을 구분하려 드는 과거의 ‘그때 그사람들’이 되고 싶은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리고 나서야 오늘의 표현의 자유가 쟁취되었다. 이것을 일거에 뒤집으려는 사법부의 오만을 강력히 규탄한다. 그리고 스스로 검열기관으로 전락하려하는 사법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이번 판결을 작게는 한국영화 발전, 나아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끝까지 싸워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2005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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