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효료수의 중화사상(中華思想), 아울러 미술인회의의 발전을 축하드린다
정 효료수의 중화사상(中華思想)
2005년 2월 26일 이화여자대학 모퉁이의 이화-삼성교육관에서 ‘미술인회의’총회에 정 효료수의 나들이가 있었다.
그 전날 미술인회의 게시판에
“미술인회의는 정 효료수의 나들이에 생화 한 송이와 3분의 소개할 시간을 부탁하노라”는 글이 올랐었다.
소문에 회원이 600여명 정도라지만 미술집집마다 대문이 폐가(廢家) 비슷하게 흉물스런 마당에 을씨년스런 자기네의 자게판 역시 그들이 보지 않았음은 당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3년에도 행차를 할 수도 있다는 기별만 오고 나타나질 않았었지 않은가
그날 총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회원은 정 효료수가 참석한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멀리서 정 효료수님이 이 자리에서 간단한 인사를 하시겠다고 사회자가 밝히자
경탄의 소리가 순식간에 퍼졌다.
그 소리는 그 많은 회원들의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의 소리로 기억된다.
정녕 그 놀라와하는 소리소리는 미풍에 확 퍼져오는 라일락 향기였다.
정 효료수가 어느 날 미술관문에 떡 하니 버티고 술상을 준비하여 자기기분을 다 내는지라
미술하는 자들은 누구를 망론하고 온갖 무기와 지혜를 동원하여 돌격 아닌 돌격을 하였었다.
천군만마의 공략에도 눈썹하나 흔들리지 않던 전설의 정 효료수
한국의 인터넷은 정 효료수의 잔기침에도 휘청거린다는 말처럼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음도 또한 사실이다.
잠을 자다가도 정 효료수라는 소리만 나면 벌떡 잠이 달아나고 식은땀이 난다던 이천삼~사년
이제 한 해는 마무리 되었다.
정 효료수의 중화사상(中華思想)속에는 중화(中和)가 또한 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미술인회의에 대한 효료수의 행차는 미술인들에 대한 또 한번의 신선한 걸음이다.
2005년은 가까운 주위를 먼저 점검하여 기초공사를 튼튼히 한다는 의미로 대구미술( 교수. 미술인. 화랑. 미술이론인 등등)에 대한 검열과 평가를 분명 하고 넘어간다는 효료수의 중화사상(中華思想)은
또 한번의 전기(轉機)가 될 것이다.
미술인회의 여러분의 호의와 만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신새벽까지도 샛별처럼 빛나기만 하던 여러 분을 떠 올리며 글을 통해서 알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효료수를 보게 되어 기쁘다는 많은 분들께 새삼 고마움을 전합니다.
'민미협 아카이빙 > 2000년~2009년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녘에 물감 보내기' 미술인 전 개막 (0) | 2020.11.07 |
---|---|
국회의장실에 민중미술 ‘자리’ (0) | 2020.11.07 |
민족미술20년사 여기에 자료를 올려주세요 (0) | 2020.11.01 |
총회를마치고-목포 민미협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0) | 2020.11.01 |
미술대전은 어디로??? (0) | 2020.1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