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형순 기자]40년대 일제 암흑기의 윤동주처럼, 70년대 유신 암흑기에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민주화의 별로 빛났던 김지하 시인이 인사동 학고재(02-739-4937, 8)에서 오는 13일까지 '지는 꽃 피는
마음' 달마전을 열고 있다.
25년 넘게 그려 온 달마도 중 근작 60여점과 매화와 난 그림도 일부 보인다. 관객은 남녀노소구분이 없고 성황을
이루었다. 김지하 시인은 관객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도록이나 책에 직접 사인을 해 주거나 책을 구입한 사람의
이름도 적어 준다.
그는 최근에 '창비'에서 매임 없는 시 형식에 담백한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시집 <유목과 은둔>을 내고,
'문지'에서 사상서 <생명과 평화의 길>을 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달마가 그려진 도자기가 또한 눈길을 끌고
마침 이 전시와 함께 인사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리는 '북녘 화가와 어린이에게 물감 보내기 범미술인'전
에서도, 김지하의 달마가 그려진 도자기가 전시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달마가 새겨진 도자기를 보니 평면적이
아니고 입체적이라 조형에서나 품격에서나 더욱 돋보인다.
연암 김명국의 <달마도>는 화공으로서 고도로 응축된 내면 세계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강한 인상을 주었다면, 김지하의
<달마도>는 그런 고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모순과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생존 다툼의 한복판에서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현존의 달마를 그리고 있다.
달마가 도무지 달마 같지 않다. 툭 튀어나온 이마와 금방이라도 튕겨 나올 것 같은 강력한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하늘로
치솟은 눈썹은 익살맞으면서도 관능적이기까지 하고, 그 눈빛은 신기(神氣)로 번뜩이며 범상치 않는 괴력으로 넘친다.
한마디로 에너지 덩어리다.
김지하의 달마는 잠시도 안주하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고요한 물결이 아니라 격랑의 폭풍우 같다. 삶의 전형과 굴레를
깨고 날마다 되살아나는 자의 모습이다,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그로테스크한 모습 속에 쉼 없이 꿈틀대고 출렁인다.
누구도 그려낼 수 없는 김지하만의 고유성
김지하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 누구도 감히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달마도이다. 한국적 미에 대한 깊은 안목과 파란만장한
시인의 역정이 맞물려 아우라(초월성)를 만들어낸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단칼에 베듯 단번에 붓을 힘차게 휘갈긴다. 그 붓질
에는 내면에서 솟구치는 한, 슬픔, 해학, 풍자, 익살 등이 담긴 것 같다.
김지하는 달마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 모습이 수행자 같으나 그런 틀을 벗어나고 있다. 구도자이되
종교적인 것인 것보다는 사회 변혁의 기운이 꿈틀댄다. 현실의 모순과 갈등과 대립을 타파하는 자의 모습이다. 찬바람 하얀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처럼 한 시대를 앞서가는 예언자의 모습을 닮았다.
'샛바람 불면 매화춤 추리'에서 달마는 춤은 춘다. 예상치 못한 파격이요, 달마의 정형을 깨는 신선한 충격이다. 꽃 중에는
매화가 사람 중에는 달마가 만났으니 이보다 더 멋진 사랑 노래가 또 어디 있는가?
김지하는 '꽃처럼'에 붙인 해설에서 이렇게 써 놓고 있다.
"절망은 삶의 기술이다. 출구 없는 곳, 비록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절망을 미학으로 익숙하게 대면하자! 그리고 스스로 꽃처럼
덧없이 떨어져 사라진 것 또한 깊이 새겨 두자!"
절망적 감옥 체험에서 터득한 생존 전략인지 모른다.
역설적 진리를 상징하는 '지는 꽃 피는 마음'. 여기서 떨어지는 꽃은 사라지는 것, 마지막 돌아갈 곳을 말한다. 서정적인 분위기는
잃지 않지만 이를 무심하게 외면하는 달마에서 삶의 무상함도 깨닫는다.
'살어리 살어리럇다 청산에 살어리럇다'에서는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이 보인다. 절망보다 더한 희망이 있음을 증명한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살아라!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생의 찬가를 부르고 있어 기분이 장쾌해진다.
'오, 고구려! 오호, 오녀산성!'에서 시인은 지금 비록 영토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고구려 그 역사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그는 이런 심경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영토에 관심은 없다. 우리의 관심은 역사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무효이다."
'달빛, 외로운 내 도반'에서 달마는 홀로 가야 하는 수행의 길에 그 쓸쓸하고 외로운 길에서 처연한 달빛을 만나
용합(identity-fusion)을 시도한다.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천년만에 한 번 피는 신령한 꽃을 상징한다. 인간 구제를 뜻하는가? '허공에 우담바라'에서 허공을
응시하는 달마의 눈은 수행자의 마음이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다.
/김형순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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