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보아도 가짜"
최석태 _ 미술평론가
▲ 이중섭, <물고기와 아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의 작품
최근 공중파 방송과 신문에서는 이중섭 위작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결국 이중섭 씨의 아들 이태성 씨(56.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가 25일(월)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를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면서 사안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미술품 진위논란이 법정에서 가려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컬처뉴스>는 이중섭 위작 논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이번에 고소를 당한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최석태 감정위원의 기고 전문을 싣고자 한다. 이로써 이번 논란의 전모를 살펴보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컬처뉴스>는 이와 관련한 반론이 있을 경우 이도 게재할 계획이다. / 편집자
요사이 일간신문은 물론 텔레비전 방송 뉴스에도 오르내리는 사건 하나가 이중섭에 관한 것이다. 이 사건의 이름은 ‘대량의 가짜 이중섭 그림 판매 시도 사건’. 유족인 아들이 가짜라고 한 쪽을 고소하여 귀추가 심히 주목되고, 필자 자신이 고소를 당한 사람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가나 심지어 많은 일반인들도 신문에 올려진 도판 사진만 보고도 가짜라고 단정한다. 필자가 단순히 정리했지만 실제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 무려 두 달 꼬박 다른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든 원흉이다. 터무니없는 이 일을 둘러싸고 소동이 벌어진 것인데, 가까운 시기 10여 년 동안 이중섭에 관한 저술, 전시에 관련되었던 경험으로 보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기초 자질 부족인가, 눈치 본 것인가?>
가짜가 잦게 나도는 현상에 대해 도덕적인 잣대만을 들이대서 비판하지 말자. 인간의 활동에 대한 폭넓은 아량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기가 높은 미술가의 이름 주위에 가짜가 꾀는 것은 심지어 당연한 것이며, 딴은 영광이기도 하다. 훌륭한 점을 배우기 위해 베끼기도 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기량을 익히는데 왕도로 여겨졌다.
특수하게 우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도 나라 바깥의 전문미술교육기관의 커리큘럼에는 베끼기가 설정되어 있다. 더 나아가 현상대로, 느낌을, 자기류로 등 다단계로 베끼면서 높은 기량을 익히려 힘쓴다. 유수의 박물관, 미술관 안에서 임모에 열중하는 병아리 화가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드물지 않게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짜 미술품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비틀어졌으나마 문화 습득의 과정이자 해당 미술가에 대한 숭배의 한 표현으로 보아야 할 정도다.
문제는 제대로 걸러내면 없어진다. 아무리 진짜 행세를 하려는 시도가 많다고 해도 이를 잘 막기만 하면 된다. 걸러내는데 반드시 감정이라는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꽤 까다롭게 여겨질 감정이라는 말이 없어도 얼마든지 걸러낼 수 있다. 솔직히 가짜 이중섭의 작품이라는 것이 아직은 너무 수준이 낮은 까닭이다. 이번 사건도 폭발 전, 문제의 서울경매(대표 이호재. 국내 최대 규모의 화상이 지배주주로 있는 최대의 경매회사)는 물론 언론이 조금만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애초에 없었을 사건인지도 모른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처럼 ‘위험사회’의 전형적인 행태가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먼저 서울경매가 실시한다는 자체 감정의 과정(외부인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전학예실장이자 현 덕수궁 분관장 정준모와 중견 화상 신옥진)이 무능했던 점을 지적하고 싶다. 또 이들을 거치기 전에 반드시 보았을 내부 직원들(최열, 김미라를 비롯한 미술이론을 전공한 이른바 전문가 직원들)도 정말 가려내지 못했다면 기초 자질을 물어야 한다. 진위를 가려내는 일은 미술사나 미술이론을 공부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므로.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이들은 진위를 가리려 하지 않고, 경매사 대표의 눈치를 보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사안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임금님의 옷’에 문제가 있다는 어린이 심정이 아니었던가 보다.
해당 물건들이 설사 진짜였어도 문제는 남는다. 그 상태로 보아 국내 최고라 내남이 모두 인정하는 이 업체의 위상을 보아서라도 문제의 그림들이 경매를 거치는 일은 회피되었어야 했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너무 기대가 큰가?
《이중섭과 친구들》전에 얽힌 위작 시비
예술품 경매회사로서의 정체성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 신뢰다. 그러 면에서 이런 행태는 머지않아 결정적인 타격을 부른다. 이 회사의 조직은 아래나 위나 모두 엉망이었던 것이다.
사태는 이미 예고되었다. 2003년 3월 초, 가나아트센터 대표 직함의 이호재가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전시관(현재는 이중섭미술관)에 이중섭 그림 8점을 포함, 모두 50여 점을 기증했다. 이를 기려 《이중섭과 친구들》이라는 전시가 열렸던 것. 기증이라 흐뭇해서(필자는 국립박물관이 발행하는 월간신문에 일종의 기증자 열전을 연재하기도 했다) 현장을 방문했던 필자는 그러나 화들짝 놀랐다.
기증의 꽃봉오리에 해당하는 8점의 이중섭 그림 중 각기 1점 씩의 유화 소품과 엽서 그림, 그리고 알미늄박지에 그린 이른바 은박지그림 3점은 진품이지만 나머지 3점과 더불어 친구로 등장한 박수근의 작품 1점은 아무리 눈이 짓물러져라 보아도 가짜였다! 이럴 수가! (이런 단정에 대하여 필자가 위험하며, 방정맞고, 편향적이라고 여기는 독자라도 참을성 있게 더 읽어 보시기 바란다.)
필자는 즉각 기증자 쪽과 기증을 받는 서귀포 시 관계자 다수에게 귀뜸 했다. 반응이 감 잡기 힘들었지만, 이중섭과 관련하여 불미한 일이 없어야 좋겠다는 생각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서 고쳐야 할 것이었므로 더 이상의 반응은 자제했다.(뒤에 알고 보니 문제점을 지적한 인사는 필자를 빼고도 제법 여럿이었다.)
얼마 후 과연 박수근의 자녀들은 얼마 후 기증자에게 직접 항의하여 철거하도록 하였다.(더하여 지난해 말, 자신의 개인전 현장에 나타나 가짜 그림을 기증하겠다고 하자 단호히 물리친 따님의 사례를 여기서 밝힌다.) 그러나 이중섭의 경우 거듭된 지적에도 무시로 일관했다. 이중섭의 아드님이 문제의 그림들을 진짜로 여기는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다만 참고로 이 가짜들 중 일부는 서울경매측의 내부 감정위원이기도 한 화상 신옥진이 그 얼마 전 자신이 별도로 개최한 전시에 등장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신옥진은 지난해의 한 강의에서 기증자가 가짜로 인정한 문제의 박수근 것과 더불어 아직 기증자가 인정하지 않은 이중섭 기증작도 가짜라며 소개했다. 이런,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을 수가!
필자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을 직능면에서만 떠올려보자. 화상. 공직에 있는 학예원이라는 점에서 서울경매의 감정위원으로도 일하는 정준모의 행위가 적절한 지 심히 의문스럽다. 흔히 미술관이나 교수직에 몸담아 있는 미술평론가라 불리는 미술이론가(여기에 합당할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될지 모르겠으나). 전직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중섭에 관한 많지 않은 저술가들. 사설 미술관 관계자. 전문직 훈련을 거쳤을 경매사 직원.
그리고 나는 평전을 썼고 이중섭 관련 전시에 관여했던 경력으로 이번 감정에 참가하여 절대로 진작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 사람이다. 수복전문가로서 감정에 참가한 인사; 그는 나보다 더 어려운 입장의 사람이다. 그는 이호재의 먼 친척이며, 서울경매가 단골이기도 하다. 학연이나 지연 따위에도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 보통인 한국사회에서 그는 분명 희한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단하시다!
필자는 해당 경매사가 하도 안타까워(나는 경매라는 제도를 작품공모제도와 더불어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별도로 경매를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호재의 측근 다수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렸다.
<시장은 신뢰에서 유지된다>
이쯤에서 필자의 경험을 밝히고자 한다. 문제의 가짜 원소유자가 수 년 전 필자를 오라, 오라 해서 그 집으로 가 보았다. 생명이 위태할지 모름에도 판단을 즉석에서 내려주었다(그것도 무료로! 그는 그때 이중섭과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여성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지금 하는 말과 다른 말을 했다). 지난해 후반기에 모 정부 부처가 전시협조를 요청해왔는데, 진위에 대한 판단이 나에게 맡겨졌다(그 사람이 나에게 왔겠나? 결국 회피하여 만나지는 못했다).
지겨운 인연이여! 올해 초 모 방송사가 진위 식별을 의뢰해 와 나는 다시 그 가짜들을 보게 되었고, 그 즈음 문제의 그림들을 감정하게도 되었다. 여기서 앞서 말한 것들이 이호재를 비롯 신옥진과 연관되기도 하였으면서 계속 말썽을 일으킬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이런 과정은 회수가 다를지언정 다른 미술 관련자들에게도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일부 전문가라는 족속들과 아울러 우리의 미술관련 보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새소식을 빨리 알리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요소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틀린 소식은 빨리 전하면 전할수록? 답; 문제가 엄청 커지게 됩니다! 요사이 인터넷을 통하면 최근 수년 동안 이중섭과 관련하여 어떠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언론을 통해 증폭되어 왔는지 또렷하게 알 수 있다.
‘미공개’, ‘초공개’ 라는 화려한 접두어가 달릴 때는 더욱 이를 알리는 역할을 맡은 기자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감정가들이 왜 적게는 수명 이상 모여서 장시간 토론과 전거자료를 검토하는지 알아야 한다. 알고 보면 결코 어렵지 않은 이 과정을 무시하는 기자들이 의외로 많다. 이중섭 전시관에 대규모로 기증했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만 진지하게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요소가 적지 않았던 것이 그 때 기증의 내용이었다.
이중섭과 전혀 관계가 없는 화가의 그림이나 심지어 이중섭 일가에게 커다란 불행을 선사한 화가도 끼어 있는 것이 실정이었다.(기증품 도록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약력이나 참고글이 매우 부실한 것도 첨언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쓴 이는 서울경매의 내부 전문가 최열 같은 사람이겠지. 그래서 특히 미술관이 제대로 되었는가를 알려면 전시와 더불어 도록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컵축구대회가 열린 해에 거행된 국립현대미술관의 관련전시에 적힌 정준모의 글들을 보시기 바란다.)
심지어 ‘전문기자’라는 직함을 단 보도기자나, 보도를 판매하므로 더욱 중요한 매체의 기자들의 경우,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언론인지 당혹스럽게 하였다. 언론에 대해 자세히 따지는 일은 별도의 자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중섭을 비롯한 미술가 연구가 일천해서 이런 문제가 빚어졌다고 한 일부 전문가의 견해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당장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을 접속해보기 바란다. 소장품 중 이중섭의 것 중에서 알미늄 박지에 그린 그림 한 점을 보자. 제목과 더불어 보이는 상태가 적절한 것인지 따지면서 보시기 바란다. 세워지는 것이 적절한지, 뉘어지는 것이 적절한지. 지금 보이는 상태라면 구입을 결의하고, 심의를 거치는 과정에 관련된 여러 인사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구입을 결심했는지 의심하게 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1970년대 후반에 공개되었으며, 당시 발행된 도록에는 제대로 실려 있다(필자는 이런 문제를 여러 차례 <한겨레 21>을 통해 지적한 바 있었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 서울경매에도 문제는 많다. 지금까지 취급한 적지 않은 같은 범주의 그림을 대조해보면, 동일한 그림이 상하는 물론, 좌우가 바뀌어 거듭 등장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단순하다. 최소한의 진지함과 분별력도 없이 전문가 행세를 하고, 관록 있는 화상인 듯 하는 인사들이 설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을 비롯한 사회적 걸름장치가 이들을 걸러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이런 왜곡된 카르텔이 깨어지지 않고 온존하는 한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얼마든지 재발한다.
학예직과 화상, 감정기구를 비롯, 제대로 된 이들이 우리 미술판의 주류가 되도록 이끌지 않고, 얼치기들이 주류가 되어있는 지금의 상태로는 이런 일은 더욱 빈발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대단히 교훈적이다. 이것을 잘 해결하면 분명 우리의 미술문화는 몇 단계 진전할 것이다. 시장은 신뢰에서 유지되며 커지는 것이지, 불신과 의심 속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단순한 진리가 어렵다면? 그만 둬!
최석태
『이중섭 평전』지은이, 한국미술사연구가.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미술전문지 기자 등을 역임. 이 때 언론노련 출판국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민족미술인협회 회원.
'민미협 아카이빙 > 2000년~2009년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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