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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지회지부 소식/원주민미협

-원주민족미술인협회 창립선언문-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19.

치악의 치맛자락 붙들고.... 원미협창립선언문  

번호 : 46   글쓴이 : 김봉준
조회 : 11   스크랩 : 0   날짜 : 2006.06.03 10:44

치악의 치마 붙들고 원주문화여 다시 피어나라
-원주민족미술인협회 창립선언문-

자꾸 치악산이 그립습니다. 객지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저 멀리 동구 밖에서 푸른 치마를 두르시고 우두커니 서 계시는 치악, 나를 내려다보시는 어머니, 저 치악산이 있어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푸르른 치악이 있는 것이 행복한지 모르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잊고 사는 것은 치악산뿐이 아닙니다. 물질적 풍요가 오면 만사가 다 행복할 것처럼 선전하지만 물질만능세상에는 오히려 소중한 것을 잊고 지냅니다. 잃어버린 가치가 못내 안타깝습니다. 보이는 물질세계에 정신이 빼앗겨 보이지 않는 세계의 소중함을 애써 무시하고 삽니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풀들도 한해에 한번은 꽃피우며 살건만 우리는 요즘 멋도 모르고 사는 인생이 되 버렸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잊혀져가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무엇인지 늘 다시 묻고 답하려는 미술인입니다. 강원도 원주를 평생을 벗하며 살고 있는 원주시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구보다 원주가 아름다운 도시로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이러 바램이 모여서 뜻을 구하리라 믿으며 오늘 이렇게 만났습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시민, 원주의 미술인들이 오늘 원주민족미술인협회(이하 원미회)를 창립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원주 시민과 자치단체가 같이 지혜를 모으는 제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원주를 기업도시다 혁신도시다 하면서 미래상을 다시 그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언제가 변화가 올 것이라 예상은 했으나 변화하려는 원주시를 우리 미술인은 우려에 찬 눈으로 바라봅니다. 자본과 행정권력에 의해서 도시를 혁신하고 나면 과연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 할 것인가? 거기서 살아가야 할 사람은 주민인 데 주민에게는 개발이 끝나면 정말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는지 솔직히 걱정입니다. 그렇다고 딴나라 일 보듯 할 수도 없어 우리는 제안합니다. 적어도 도시디자인위원회를 시장 직속으로 두어 도시미관 전체를 계획성 있게 기획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우리 미술인은 원주에 대한 소박한 바램이 있습니다. 도시 난개발로 자연풍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수려한 산세와 청정지대를 개발이익만 바라고 무분별하게 개발하지는 않을까 우려합니다. 주민의 생존권과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밀어붙이기 식 개발도 경계합니다. 도시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시민의 풍광권, 생태계의 보존과 생명가치의 공생권, 시민의 생존권 보호가 시민적 권리로 인정되기를 주장하며 환경평가에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3. 지역문화행사가 시민은 관심 없는 가운데 문화단체들의 중복된 프로그램과 질 낮은 프로그램으로 귀중한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이제는 각문화단체가 모여서 지역문화위원회를 조직하여 기획안을 협의 조정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속히 지역문화진흥법이 입법화 되고 법의 합리적인 운영이 되기를 바라며 원주문화예술위원회 설립을 제안합니다.

4. 도시의 재래시장은 지역문화의 한 뿌리입니다. 따라서 재래시장은 시장상인, 지역문화예술인, 시행정가들이 연대해서 시장문화를 활성화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문화의 활성화는 상인들 책임만이 아닙니다. 그 지역문화의 자생력 상실은 그 지역시장문화를 외면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의 문화예산지원에만 의존하는 문화는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시민과 문화예술계와 경영인과 상인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시장문화진흥시민위원회를 제안합니다.

5. 원주의 미술인은 원주 도시를 아름답게 디자인하는데 누구보다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원주를 잘아는 미술인의 도시디자인 참여를 통해 정체성 있는 아름다운 원주시를 꾸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주를 더 이상 회색도시, 모방도시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유치한 디자인이 사유재산이라는 명목으로 버젓이 시민 앞에 서있습니다. 도시미관과 시민의 심리를 해치는 꼴을 더 이상 앉아서 보고만은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시민환경미술운동을 제안합니다.

6. 한 도시문화 수준은 그 도시인의 문화 창조력과 시민의 문화향유역량에 비례합니다. 창조적 문화도시를 만들지 않고는 혁신도시니 기업도시니 하는 물질 위주의 도시로는 얼마 안가서 한계가 들어날 것입니다. 오래 못가서 창의력의 고갈로 나타나고 콘텐츠 없는 도시는 생명력을 잃어 슬럼화 할 것입니다. 기업인, 예술가, 대학 연구소, 노조, 시의회, 시행정 당국이 문화경제도시활성화를 위한 시민협력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7. 원주는 도시와 농촌과 산천이 어울려야하는 지역입니다. 도농호환형 산업발전이 필수적이며 수려한 자연이 오랜 미래의 자산입니다. 미술을 비롯한 문화역시 자연친화적인 문화로 가꾸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술관 등 공공 문화시설은 오랜 미래의 자연친화형 미학과 내용을 가지지 못한 채 건물만 우선 짓고 보자는 식의 예산 낭비는 반문화적 행정입니다. 예술가는 예산이나 타먹는 수동적 수혜자가 아닙니다. 생태적 도시문화기획에 주체로 나설 것입니다. 원주의 정체성을 살리고 질적인 문화의 내용과 미학을 갖춘 문화시설의 장기 발전계획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8. 치악산과 원주 일대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지명설화가 지천에 깔린 민간문화의 고장입니다. 기록에 남은 역사만이 역사가 아닙니다. 불문의 역사를 보아야 보이지 않는 진실의 ㅁㄴ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보이지 않는 지역신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특단의 노력을 보일 것을 원주문화예술계 모두에 제안합니다. 설화자가 더는 사라지기 전에 원주지역문화조사·연구·기획사업을 공동으로 펼친 것을 제안합니다. 원주 인문지도그리기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우리는 원주시민에게 호소합니다. 정책과 시장과 문화계에 적극 참여하여 원주의 난개발을 막고 기품 있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시민적 주권을 행사 하기를 바랍니다. 개인마다 인품이 있듯이 도시에도 시격이 살아야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고 자랑스런 문화의 도시가 됩니다. 내 영혼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하고 타인의 아름다움을 애써서 찾아 인정해 줍시다. 시민이 스스로 자기행복의 권리를 주장할 때입니다. 지방자치시대에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시민들 모두가 시민정치인이고 시민경제인이고 시민문화예술인입니다. 지금은 시민자치시대입니다.

원미회는 원주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미술회입니다. 회원들이 자발적인 회비와 뜻으로 모여서 만든 아름다운 시민만들기 시민미술단체입니다. 우리는 비록 시작은 미약하여도 꿈은 창대합니다.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원주를 물려주기 위해서 선조들은 무엇을 했는가 물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원주를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갔노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원미회는 각 위원회별로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모임이 되겠습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시민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시민여러분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미술교육위원회, 축체행사위원회, 문화복지위원회, 도시디자인위원회, 문화정책위원회, 시서화위원회, 생활·공예위원회, 전통문화연구위원회, 시민미술위원회, 인문출판위원회, 미술유통위원회 등 각분과위원회마다 대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우리는 보편성에서 구체적인 것을 규정하려하지 않고 구체적인 일을 통해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려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함은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 온전한 소우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지역이고 위원회 하나하나가 정부입니다.

저 깊은 치악의 산천 개울물에 나를 비추어봅니다. 시름에 지친 몸을 활짝 피고 맑은 영혼의 숨소리를 들어봅니다. 우리는 치악의 품에서 잠시 나왔다가 다시 그 품에 돌아가서 숨을 멈춰야 하는 자연의 자식입니다. 숨을 그치고 사라진다는 것은 생명의 숙명입니다. 묵은 것은 사라져주어야 다시 새로 나오는 것들이 활개짓을 합니다.

세상은 원래 잠시 머물고 비우기를 거듭합니다. 잠깐 피고 지는 삶이기에 삶이란 서글프게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삶은 그 자체가 역설의 진실입니다.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무상한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미술인은 지금 채우려고만 욕심 내는 도시 앞에서 진정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뒤돌아 생각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마음 두는 마음(無心, 太虛), 어두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마음(冥心), 형광빛 눈부심에 가려진 것들을 살피는 마음, 너와 나 자연과 인간 사이(天人際)를 소중히 하는, 보이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미술인은 중시합니다. 우리는 존재론에 머무는 정태주의 미학을 넘어 관계론을 중시하는 물과 물 사이, 존재하는 것과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것을 두루 포함하는 터, 살고자 노력하는 개체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같은 살림, 사이와 터와 살림에서 아름다움의 빛을 보고 싶습니다.

물질만능이 세상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속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습니다. 세상사람은 속아주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세파에 끌려갑니다. 지속가능한 발전도 개발주의자들의 구호로 변하고 있습니다. 기약할 수도 없는 속도주의 생산력주의에 진정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놓쳐버린 시대 같습니다. 이제는 느림의 삶, 더불어 행복한 삶, 밥살림과 멋살림이 한살림으로 만나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고대합니다.

문 닫아 걸었던 화실 공간에서 나와 시내로 나왔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휘청거립니다. 빈깡통 소리 요란한 오늘의 풍요속 빈곤 앞에서 치악의 치맛자락 드리운 원주의 밤을 내려다 봅니다. 이제 허위의 잔치는 끝났습니다. 장및빛 미래는 오지 않습니다. 다만, 끝까지 믿어 의심치 않는 민간문화의 숨은 저력으로, 원주시민의 맑은 영혼들이 이슬처럼 모여 시냇물이 되고 원주천이 되듯 아래아래로 연대하는 것 뿐입니다.

원주는 옛부터 권력의 훈습을 피해 작은 정부 큰세상의 대안을 꿈꾸었던 대안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고려 멸망이후 절개를 지키려고 치악산에 숨어든 운곡 원천석, 단종을 섬기다 죽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초야에 묻힌 원호, 민중의 원을 푸는 만신이 되버린 임경업장군, 지행합일을 꿈꾸었던 양명학의 유생들, 서자의 차별을 넘어 위대한 시인으로 거듭난 손곡 이달 선생이 원주 사람들입니다. 동학으로 후천개벽을 여시려고 마지막 포교를 하던 최시형님이 피체된 고장이 여기입니다. 최근까지는 장일순 선생이 이끌던 생명운동의 본산지로 한살림, 밝음신협이 태동한 곳이 원주입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박경리 선생, 민주화운동과 생명사상으로 불세출의 지성이 된 김지하 시인이 살던 고장이 바로 원주입니다, 그 주위를 말없이 사랑으로 실천하던 주민들의 뜨거운 향토애가 살아있는 곳이 바로 원주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강원민족미술인협회에서 조사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원미회에서는 운곡, 이달, 임경업, 해월, 무위당을 조사님으로 모시렵니다. 조령을 치악에 모시고 매일 동트는 새벽 바라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원주의 문화창조정신 이어온 면면들이 원주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미회는 이 자랑스러운 문화인물사를 줄기차게 계승할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맑은 영혼의 위대한 인물들로 빛나는 원주문화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원주영혼의 빛을 받아 다시 힘차게 원주문화를 꽃 피우겠습니다.

치악이 나를 부르네
어머니 치마폭같이 넓은 사랑
아버지 등허리처럼 강인한 지혜
내 지친 몸과 맘이 쉴 곳은
저기,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깊은 그늘
타향살이에 속아주며 끌려갔다가 모진 매 맞고
울며불며 돌아오던 그날들
이제 다시 돌아와
치악의 치마폭 속에서 숨 고르네
그리고 다시 또 다시 저자거리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긴 것은 긴 것이라고 말하려하네
그리하여 서로 다른것이
아름다움으로 만날 때
아, 마침내 하나라는 것을....
여기 치악 산그리메 모여서 숨 고르며
깨우치리, 다시 피어나리
맑은 영혼들이 빛나는 원주에서
치악의 치마 붙들고

치악의 대지여 만세 !
원주문화의 영혼이여 만세 !
원주시민문화예술이여 만세 !

2006년 6월 2일
원주시립박물관에서
원주민족미술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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