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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소년 한국일보, [교과서 속 미술 이야기] 그림속 '자연의 소리'를 듣다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3.

강요배의 '마파람'ㆍ'한라산'
거친 바람 등 제주의 자연을 빠른 붓질로 표현

이승미(국립현대미술관교육팀장)



①'마파람': 강요배, 72.7×116.8 cm, 캔버스에 아크릴릭, 1993년. ②'한라산': 강요배, 72.7×116.8 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2년. ③'적송': 86×130 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1년.

처서가 지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주도 출신인 강요배 화가를 따라 섬을 여행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익히 알듯 제주도엔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 거문오름 등 좋은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그 때문에 이중섭을 비롯해 많은 화가들이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줄곧 그림 속에 담아 오고 있지요.

하지만 제주도의 바다와 거친 바람이 키운 강요배만큼 제주의 참모습을 보여 준 화가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림에서 소리를 들어 본 경험이 있나요? 가만히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 소리가 난다니 믿을 수 없지요. 하지만 가끔 소리가 나는 그림을 만날 때가 있는데, 강요배가 그린 그림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해질녘 하늘을 등지고 있는 옥수수들을 그린 작품 '마파람'을 보세요. 옥수수를 그린 걸까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그린 걸까요?

마파람이란 제목처럼 '바람'을 그린 작품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하늘의 구름과 바람에 저항하는 옥수수를 함께 그렸답니다.

이제 그림에서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바람을 핑계로 옥수수들은 금방이라도 누워 버릴 것 같지요?

사실 마파람은 차갑고 매서운 바람은 아닙니다. '마파람에 곡식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남풍)이지요. 그러나 작품은 곡식이 잘 자라라고 부는 마파람일지라도 제주를 지날 땐 이렇게 거칠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라산'을 보세요. 제주도는 용암이 분출해서 생긴 거대한 화산으로, 크게 보면 '한라산' 하나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고구마처럼 생긴 제주도는 사방 어디서에서도 한라산을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산 정상에서는 섬 전체를 구석구석 볼 수 있답니다. 작품 한라산의 계절은 언제일까요? 잎이 돋지 않은 나뭇가지에 꽃부터 핀 걸 보니 아주 이른 봄일 거예요.

마치 눈꽃인듯 산목련과 매화에 흰꽃이 한창입니다. 이에 비해 정상은 구름이나 하늘이 어슴프레 살짝살짝 보였다 말았다 할 뿐입니다. 전체적인 작품의 푸른 색조에선 제주도의 청명하고 고운 공기가 금방이라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렇듯 스쳐지나가는 빠른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되도록 선을 쓰지 않고 빠른 붓질을 했습니다.

그 결과 나무, 산, 구름이 미리 정해진 형태가 없는 듯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 보입니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금세 생긴 작가의 특징이 아니라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하고 다양한 실험을 거친 결과입니다.

화가는 초기엔 제주도 사람들에 대한 역사를 그렸지요. 그러다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파꽃, 수선화와 같은 눈에 띄지 않는 미미한 것을 그렸습니다. 그 사이 그리는 대상도 점점 넓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적송'을 봅시다. 보기만 해도 금방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적송은 붉은 소나무라는 뜻입니다. 한라산 중턱엔 이처럼 붉고 곧은 소나무가 모여 있는 소나무 자생지가 있습니다.

화가는 겨울이면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에 올라 머리와 몸에 눈을 잔뜩 이고 있는 붉은 소나무를 만난 감동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30 cm 높이인 '적송' 앞에 서면 소나무 가지에서 '후드득' 눈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이처럼 화가 강요배의 그림에서는 소리가 납니다. 계절마다 다른 제주의 바람 소리, 남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바다의 파도 소리, 소박한 꽃이 자라는 소리,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소리, 둥근 달 아래 섬이 속삭이는 소리…….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물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일 것입니다.

◇ 강요배(1952년~ )
바람과 돌이 많은 화산섬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20 세가 되어서야 고향을 떠나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제주를 떠난 지 20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주도의 자연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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