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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예술의 사회적 지위(울산경상일보 데스크칼럼)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12.

예술의 사회적 지위
조각가 죽음 둘러싼 송사
'조각가 고(故) 구본주 소송 해결을 위한 1인 시위'가 울산시청 맞은편 삼성화재 앞에서 지난 1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점화되고 있는 삼성화재 규탄 1인 시위는 참여 지역과 인원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구본주씨의 작품은 때마침 울산민족미술인협회 창립10주년 기념으로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는 민중의 역사와 삶을 그리는 열정이 넘치는 작가였고, 작품에서 보여주듯 에너지 넘치는 대작이 많았다. 이번 시위는 지난 2003년 9월 교통사고로 숨진 구본주(당시 37세)씨에 대한 보상액 산정기준인 정년 범위와 직종 성격을 놓고, 유족과 삼성화재 간에 빚어진 시각차에서 비롯됐다. 올해 2월 법원이 노동부 임금구조 통계를 근거로 구씨의 신체가동 연한(정년)을 65살로 인정하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리자, 삼성화재 쪽은 정년을 60살로 줄여야 한다며 즉각 항소한 것이다.
한 예술가의 죽음을 둘러싼 송사를 두고 보험회사와 예술가들 사이에 싸움. 삼성화재는 조각가의 가동연한(정년퇴직)을 60세로, 전문가로서의 경력도 3굠4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항소 이유로 꼽고 있다. 구씨가 청동을 주로 다루는 육체노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벽돌을 쌓는 일용 조적공과 같은 정년을 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환금성이 증명되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자본 논리가 게임의 법칙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예술인들은 예술가라는 직업이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굳이 외면하려는 의도된 소산으로 규정, 예술가의 사회적·법적 지위에 대한 공동 대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소송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예술가의 정년은 몇 살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기업답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일테지만, 그냥 넘겨 버리기엔 씁쓸한 내용들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삼성화재 앞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중인 울산민미협 측은 이번 소송에 대해 "예술가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기계부속처럼 취급하는데 깊은 비애를 느낀다"며 허탈해 했다. 단지 돈 몇 푼을 더 주고 덜 주는 문제가 아니라 예술가나 예술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수많은 전시와 수상경력 등 촉망받던 작가의 이력은 철저히 외면돼 있다.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버티는 모습에서 뭔지 모를 찜찜함도 느끼게 된다. 삼성화재는 문화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외쳐온 삼성가의 구성원이 아닌가.

예술가들이 이렇듯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데 대해 예술계 내부의 자성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소송의 먼 배경에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그럴만한 일들을 해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예술계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명성을 날린 예술가들 중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적어도 근대 이후 줄곧 권력의 시녀 또는 나팔수 역할을 떠맡으며 자신의 영달 만을 챙긴 사례를 돌이켜 보는 것이다. 또 예술과 예술인이 천대받는 것이 주류가 아니었더라도 과연 몇몇 예술가들 만의 문제였을까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신의 말과 주장, 권리를 남에게 맡겨놓은 채 너무 오랜 세월을 허비해 왔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도 나온다. 예술가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 예술가가 사회적인 신분보장을 받는 세상은 바로 예술가들 스스로 일궈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어쨌든 예술의 사회적 노동가치와 예술인들의 사회적 지위, 사회보장제도 등에 관한 문제로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 부분을 외부에 기대기만 해온 듯한 안일함을 되짚어볼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정당한 노동을 한 예술가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고,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예술가는 정년이 없다는 특수성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과제도 던져주고 있다.  bigbell@ksilbo.co.kr  문화부 박철종기자
[2005.08.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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