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맹랑한 글을 보았다.
전시초대 글이었다.
“...우리 화단의 자랑스런 거목 손○○, 이○○, 김○○....,”
이 한 줄의 글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대구은행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지방의 순수한 미술인 몇몇을 가지고 “거대한 뿌리”라는 요상한 글이 실려서
사외편집 주간에게 땀이 삐직삐직 흐르게 호통을 친 적이 기억난다..
‘
갈등이 생겼다.
서로 얼굴 안다는 건 이때 참 곤란하다. 정으로 살아가는 사회이고 보면 입장이 조금 난처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패거리를 이루지 않은 주위에게는
대부분 인간들은 웃으며 미꾸라지처럼 피해가는 거니까? 안부인사 전화 올 정도 아니면 공과 사에 구분을 넣어 상벌(賞罰)이 되게 한들 그리 가슴 아플 일은 아니다.
‘거목’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런 문구를 함부로 쓴다는 게 얼마나 상식이하?인가를
전혀 모르고 쓴 거라 좋게 생각하고 말았다. 왜냐? 이성의 칼은 상대의 감정을 다스림이
첫째 덕목이기 때문이다.
거목이란 인격의 완성을 의미한다.
지방화단에서 미술공부 좀 하는 걸로는 함부로 지어낼 명함은 아니다. 한 예로
유화가 손○○ 씨는 일제강제점령기를 요령껏 산 사람이다.
운보 김기창이나 박생광의 매국적인 더러운 친일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어떤 얼빠진 자가 함부로 ‘우리 화단의 자랑스런 거목’이라 하겠는가?
물론 손○○의 작품은 중후한 느낌이 드는 무게 있는 작품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목이 되는 그림수준은 아니다. 우리 화단에 이름 있는 사람, 특히 생존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함부로 경거망동할 일은 아니다.
한국의 미술사를 통째로 정리할 수준이 못되는
미술의 유식한? 매매상들은 물건이 될 작품에 대해서는 말로야 무엇을 못 하겠나마는도
문필(文筆)로는 함부로 깔딱거릴 일이 아니다.
▣ 정보에 너무 어두운 대구화단은 사람이 살지 않은 고택에 들렸을 때처럼 그리 시원하지도 그리 복잡하지도 않다.
시원한 반가움도, 시원한 예술토론도, 시원한 예술잡담도 거미줄이 쳐 있다.
미술비평이란 당대의 물줄기가 경상도(대구 부산)지역에만 유독 연못처럼 흐르지 못하고 갇혀 버린지 모른다.
대구와 부산은 왜 미술비평이란 빛나는 글들이 없을까?
새 물줄기라면 외국유학에서 귀퉁이 예술에 마당쇠처럼 바쁘다 돌아와 세계 미술을 담론하지만 봉사 코끼리 만진다는 해프닝일 뿐이다.
16기가비트(Gb) 플레시 메모리가 현실화 된 작금에
반짝반짝하는 숫한 벽돌과 고급스런 대리석 판들이 즐비한 르네상스시대의 고풍을 걸으며 ‘정체성’찾기에 정신이 없는 많은 미술인들의 희어가는 머리를 바라본다.
“초월이 없는 예술은 모방일 뿐이다(정효료수)”. 그래도 나는 사랑하는
오늘도 미술을
,
rnrwn1001 미술인회의펌님 의견 /
우일민 (2005-09-10 16:17:07)
박원시기 님이 학창시절에 카프카를 좋아했다고 했나요? 그럼 <카프카스럽다>는 말 알겠네요? 이제부터 저는 그 말을 본따서 <효료수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님더러 효료수님을 반면교사 삼으라고 했을 때 사실 많이 망설였어요. 표현이 좀 심하지 않은가 하구요. 하지만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할 말은 솔직하게 하구 넘어 가야지.
그 말은, 행여나 남들한테 <효료수스럽다>는 소릴 안 듣게 하라는 거였다구요.
[ 2005-09-13 16:36:24 ]
rnrwn1001 세 명의 이름은 예의상 밝히질 않았다.
별 의미는 없다
[ 2005-09-13 16:3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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