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경의 글로 기억된다. 하숙생이 나 말고 몇 명이 더 있었다. 맘씨도 좋고 입맛이 조금 까다로운 나의 식성을 잘 맞추어 주었던 집이었다. 참으로 어두운 시대에
새싹처럼 맑고 봄날처럼 포근한 내 마음의 등불인 누이(누나)를 생각하며 글을 썼었다. 필자에겐 친척 누이들이 참 많지만 여기의 누이는 아주 먼 일가의 누이다. 항렬로는 필자가 할아버지뻘이나 학교의 선배님이요 나이가 한 살 더 많다보니,
그런 것 보다 필자가 무척이나 따르고 존경하였고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누이이기에 스스럼없이 '누나'라고 불렀고, 누나는 내게 할배'라고 했었다.
지금에 글을 보니 약간 겸연쩍기도 하다. 치 떨리는 전두환 쿠데타정권에 지성의 대학생(당시 운동권의 대학생은 적어도 지성적이었음)과 지식인들이 온통 개 끌리듯 유치장과 감옥에 끌려가고 고문당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암울한 시대를 충만한 용기와 정의로 나 자신을 비겁하고 싶지 않았던 그때,
누이는 참으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깊은 나락을 헤매는 내게 누이의 존재는 서광이 아닐 수 없었다.
어쭙잖은 글이라 이대로 독자들에게 보이기 망설여짐도 사실이었다.
봄을 기다리는 누이에게
냉이 무침을 먹었던가 봐
쑥국을 먹었던가 봐
쑥국이 어찌 맛이 없네요. 그래도 자시고 더 자시세요.
아직은 애티 도는 하숙집 아줌마가 배시시 웃으며 봄을 아침상에 놓는다.
어디서 봄이 오나? 간질간질 들린다.
어디서 잎이 돋나? 아삭아삭 들린다.
어디서 풀벌레 날아오르는 희망이 들이고, 나비가 잠에서 깰 것도 같다.
봄이 어딘가에 와서 나를 기다릴 꺼다. 내가 단잠에 취한 것을 깨울 수가 없어서 망설이나보다 싸긋한 쑥국에도 봄내가 돋는다.
연한 냉이 무침에도 가슴 속 이파리가 돋는다.
삼월 춘풍 살얼음 살살 에이는 데도 외투를 던지고
거지처럼, 아주 슬픈 시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어
늘 쫓기며 살아온 세월.
무거운 침묵의 강이 흘러도
봄이 오면 만날 사람이 생각난다.
누이의 얼굴처럼 곱고 고운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어딘가로 걷고 싶다
봄옷이 없어도 봄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다는 꿈이 절도 돋는다.
미친 처녀마냥 갑자기 비가 지질지질 흩뿌리고 자욱한 물안개의 강이 내린다.
그 다음날은 다시 눈이 내리고 함박눈이 내리고 흐린 하늘은 변치 않는다?
“지미 씨-파ㄹ! 삼월의 눈밭이 이리 맵냐. 사람들은 살아온 요맘때의 기억을 살려낸다.
해가 몹시도 뜨스할 것 같다. 성급하게 서두른 미끈한 미니스커트에는 이상스레 겨울바람이 본전을 뽑으려는 듯이 악착같아도, 이제 겨울바람은 음지나 구름으로 숨어들며 빌빌 쓰러진다.
겨울바람은 너무 신기하게도 맥없이 녹아 늙고 병든 자신을 바라본다.
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처녀들 치마 밑을 간질간질 스며들어 녹여 줄 텐데? 그렇지만 겨울동안 활처럼 팽팽하던 바람은 자신의 늙은 초상화를 거두어 어느 동굴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내일은 태양이 올 꺼다.
좀 더 건강한 태양이 성급하게 옷을 입은 아가씨만 돌다물 따라 유난히도 따스한 양지가 봄을 기다린 마음속에 등불을 밝히겠네.
누이야
날아갈 듯 블라우스를 입은 누이의 손을 잡고프다.
동굴로 동굴 속으로 뽕나무 뿌리처럼 발을 내린 겨울의 잠은 하얀 덧니를 보이며 보조개를 짓는다. 물 묻은 바위에 묻어나는 석삼, 따개비, 가면을 쓴 개오동, 해변 파도를 먹는 검정 조개
봄은 무슨 빛깔로 칠할까
누이야, 진달래처럼 화사한 꿈을 주는 누이야
누이의 손을 잡은 나는, 벼랑 끝에 피어난 꽃을 꺾어 달래는 왕비의 철없음으로 누이에게 봄의 응석을 피울 테다.
시간의 가지에 지어놓은 새집이 없어졌다. 누이는 어느 날 새집을 다시 짓는 방법을 배우고 수많은 새들이 집을 떠난 헌 둥우리 가득, 푸른빛 도는 느티나무로 남는 나는 꿈속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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