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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한미FTA 반대를 위해 '작가'와 '화가'들이 작심하고 모였다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3.

예술인들,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을 차다
<한미FTA 반대를 위해 '작가'와 '화가'들이 작심하고 모였다

                       

                  ▲ 작가와 화가들이 만드는 한미 FTA 반대 축구 퍼포먼스.                  ⓒ  강기희         

지난 주 토요일(28일) 서울로 갔다. 하루 전날 송경동 시인으로부터 '꼭' 와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기에 급한 농사일까지 뒤로 미루고 약속 장소인 추계예술대학교로 갔다. 송경동 시인이 시골에서 농사일로 혹은 동강살리기운동본부를 꾸려야 하는 일로 바쁜 기자까지 서울로 불러 들인 이유는 예술인들이 모여 한미 FTA 반대 행사를 한다는 거였다.



다른 일 같았으면 농사일을 핑계 삼아 서울행을 마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미 FTA 반대' 행사를 한다는 말에 차마 가당치도 않는 핑계를 달며 불참을 통보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체결 반대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이라 송 시인이 추진하고 있는 행사가 반갑기도 했다.



한미 FTA 반대 축구 퍼포먼스 열려



강원도 정선에서 서울의 초입까지 3시간 정도 걸리니 서울이라는 도시를 제 집 드나들 듯 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아침 9시를 조금 넘겨 서울로 향했다. 넉넉하게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학교에 도착하니 오후 2시를 넘기고 있었다. 밀리기만 하는 서울의 도로는 한갓진 삶을 사는 시골 사람에겐 '대책없음'이었다.



운동장에선 이미 축구시합이 진행되고 있었다. 몸을 풀기 위한 연습경기란다. 날씨는 여름이라 해도 믿을 만큼 더웠다. 날아드는 먼지를 피하며 그늘로 숨어들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그날 모인 이들은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민작) 소속 작가들과 민족미술인협회(이하 민미협) 화가들이었다.



암울한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민족문화예술인들이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에 모인 것은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축구 퍼포먼스 행사를 열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펼쳐놓은 펼침막엔 '한미 FTA  반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축구공. 이날 만큼은 역사의 죄인이었다.
ⓒ  강기희

                                                    

▲ 단단히 조여매고 두 나라 대통령의 얼굴을...
ⓒ  강기희

                                                    

▲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  강기희



민작과 민미협 소속 회원들이 축구대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부정기적으로 두 단체는 친선축구대회를 개최해왔다. 같은 '민족'을 단체의 정체성으로 표방하고 있는 두 단체의 회원들이 모여 얼굴도 익히고 민족의 앞날도 고민하자는 취지였다.



예술가들이 세상 일 외면하면 예술가 자격없어



이번엔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축구 퍼포먼스를 곁들였다. 지금까지의 전적은 민미협이 7전6승1패로 앞서고 있다. 민작으로서는 그동안 단 1승밖에 챙겨놓지 못한 선배들의 조촐한 성적을 거울 삼아 절치부심 승수를 올려야 하는 책임감도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김용태 민예총 이사장이 격려사를 했다.



"예술인들이 자주 모여야 합니다. 예전만 해도 예술인들이 자주 모여 세상 일에 대해 밤을 낮 삼아 토론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어쩐지 요즘은 그런 일이 개인사로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일에 예술인들이 나서지 않으면 그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자고로 예술인들은 세상과 영합하기 보다는 불화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예술가가 추구하는 건강한 정신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김용태 민예총 이사장의 시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는 20분씩 3게임으로 진행했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민작이 낮았지만 실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했다. 민미협 소속의 류연복 화가는 몇 차례나 넘어지는 투혼을 보였다. 그래도 젊은 피가 더 뜨거운 법. 골 결정력만큼은 민작이 앞섰다.



두번 째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민작이 5:1까지 앞서갔다. 미안함에 응원을 하던 민작 회원들이 이운재 선수를 방불케하는 서수찬 시인을 문지기에서 끌어내렸다. 대신 주전자 후보인 이재웅 소설가를 문지기로 세웠다.



이재웅이 선 민작의 골대는 공을 막으면 오히려 핀잔을 듣게 되는 자리였다. 이재웅은 그런 뜻을 알기라도 하는 듯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재웅은 5분도 되지 않아 두 골을 떡 먹듯 넙죽넙죽 먹고는 관중들로부터 큰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물러났다.



                                                    

▲ 시합을 앞둔 선수들. 선제골을 넣은 이는 '반' 자가 쓰여진 옷을 입은 체게바라.
ⓒ  강기희



                                                    

▲ 공을 몰고가는 한미 FTA 반대 선수.
ⓒ  강기희



                                                    

▲ 한미 FTA 막아야 합니다.
ⓒ  강기희



경기 결과는 6:4로 민작이 승리했다. 8전2승6패의 승률을 만든 민작 회원들은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큰 일을 해냈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축구경기를 통해 한미 FTA 반대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었다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했다.



예술가들의 발에 차인 두 나라 대통령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축구 퍼포먼스는 경기 도중에 진행되었다. 선수들은 '한미 FTA 반대'가 적힌 옷을 입고 흰고무신을 신었다. 새끼줄로 고무신을 단단히 묶은 선수들은 노무현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공을 발로 차며 '한미 FTA 반대'를 외쳤다.



선수들의 발에 채인 공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운동장을 굴러다녔다. 먼지 투성이가 된 한미 FTA 협상 체결의 두 주역은 이날만큼은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의 죄인이었다. 민중의 아픔을 뒷전에 던져놓은 두 죄인들은 민족을 고민하는 예술인들의 발 끝에서도 웃는 얼굴을 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운동장 한켠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조촐한 뒤풀이가 있었다. 이미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투쟁을 통해 안면들은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이들도 많았다. 행사를 기획한 류연복 화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의미있는 일 하나를 해냈습니다. 기필코 막아내야 하는 한미 FTA  협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뜨거운 가슴과 발로 한미 FTA 반대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통일 조국에 반하는 한미 FTA 협상을 끝까지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예술 활동을 하던 작가와 화가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큰 의미를 지닌다. 민족이란 거대한 명제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이들의 민족 껴안기는 끝이 없어 보였다.



해거름이 되자 여름날씨는 다시 봄날로 돌아갔다.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던 이들은 벗어 놓았던 겉옷을 챙겨입었다. 헤어짐이 아쉬운 시간 이들은 근처의 주점으로 자리를 옮겨 밤 늦도록 민족과 민족예술이 가야할 길에 대해 격의 없는 토론을 이어갔다.



                                                    

▲ 부상자도 속출. 한미 FTA 막는 일이 이렇게 힘겹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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