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 리뷰&칼럼
8,90년대 부산미술의 열정과 감성
[전시리뷰]《도큐멘타 부산3-일상의 역사》
[배인석 _ 화가, 민미협 지역네트워크위원장]
싱거운 이야기부터 해보자. 어느 날 어린 조카 놈이 낡은 사진첩을 뒤지다가
빛바랜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연신 질문을 한다. “이건 누구야?”
“저건 누구야?” “어! 그런데 나는 왜 없는 거야?” 이젠 약간 울상이 된
표정으로 의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 결혼식 가족사진을 들고 섭섭함을감추지
못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이렇듯 자신의 공백에 대한
인식을 추가 하여야 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 이 끊임없는 질문을
신화는 태초의 탄생에 대한 근원을 거세하는 신비성을 발휘하지만, 이 아이는
커가면서 서구식의 정리된 과학과 역사를 통하여 자신의 현 시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살아갈 인생을 설계하게 될 것이다.
때론 역사적으로, 때론 개인으로서의 삶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둘은
역시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어 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동전의 측면도 있으나, 이 양면을 평생 무시하긴 어렵기 그지없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면서 시작된 탄생의 존재에서부터 과거를 되묻는 것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도 이 어린이의 의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 길이와 정확성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아직도 인간은
생명이며, 지구며, 우주의 탄생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중에 있지 않은가?
삶의 미술-부산의 형상미술
우리는 지속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묻지 않을 수 없고 또는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관심과 호기심을 더욱 종적이고 횡적으로
발휘한다. 우주의 역사와 더불어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종과 민족과
국가에 대하여, 또는 가족과 문화와 지역의 역사를 묻게 되는 것이다.
어린 조카 놈이 찾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처럼, 지역에 사는 예술가로서 지역의 과거 예술사에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는 지역 자체에
머무르고자 함만은 꼭 아닐 것이다. 조카 놈이 가족의 테두리에서 마냥
머무를 수만은 없듯이 말이다.
지역에서 미술가로 산다는 것
어떤 이는 아직도 중앙집권적인 한국의 사회구조 속에서 서울을 떠난
타지역에서 미술활동을 한다는 자체가 “미술운동”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여기서 미술운동이란 지역 미술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약간 옆길로 새어보자. 안동대학교 임재해 선생은 올 6월에 발표한
「지역문화발전과 대학의 역할」이란 논문에서 교육부나 한국학술진흥원에서
한결같이 쓰는 지방대학이란 용어를 질타하고 있다. 그는 대학을
국가 행정단위도 행정기구도 아닌 독자적인 고등교육기관을 마치 중앙정부와
지방행정부 사이의 상하관계처럼 지리적 공간을 근거로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를 쓴다는 것이다. 덧붙여 오히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이 명문으로
주목받는 것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이나 M.I.T 대학 등이 자기 나라 수도 런던이나 워싱턴에 있지 않을 뿐더러
이들 명문대학을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런던 대학이나 워싱턴 대학 등
수도권 대학과 분리시켜, 영국과 미국의 지방대학으로 묶어서 부를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국내의 이러한 즉슨,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명문 자를 붙이는 것은 불과 30년 사이의 일이라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행빙”그룹의 이석금 작
하물며 문화는 어떠하여야 되는가? 여기서 지역의 미술사 정립에 대하여
관심을 두는 것은 중앙의 비정상적인 종속에 대한 자기 밥그릇 찾기를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한국의 미술사 속에서
우리 지역의 미술사가 이 정도 공헌을 하였네 하는 자리 메우기도 더더욱
아닌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한국미술이 가지는 구조적인 맹점을 개선하는
좀 더, 커다란 식견으로 바라보고 실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역의
미술사를 바라보는 재미를 보고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유행이 한 물간
또는 시도에 그친 현실지향성이 없는 과거 역사의 발자취을 나열하는
전략으로는 흥미로울 수 없다. 이제 뭔가 근본적인 자기 역사 쓰기 또는
정리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부산시립미술관이 2008년을 기점으로 개관 10주년이 되어가고 있다.
부산지역의 미술관으로 다소 뒤늦게 출발한 감이 없지 않지만,
부산시립미술관은 2005년부터 10주년이 되는 해까지 4년 연속, 중장기
기획으로 지역미술사 정립을 위한 《도큐멘타 부산》 시리즈를 진행하여 왔다.
올해 벌써 그 세 번째 전시를 개최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5년 《자료로 보는 부산미술1(1928-1945)》,
2006년 《자료로 보는 부산미술2(1945-1980)》에 이어
《도큐멘타 부산3-일상의 역사 편》(5.25-7.17/부산시립미술관)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어났던 부산의 자생적인 미술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다.
도큐멘타의 힘
이번의 전시를 더욱 세분하면 (1) 자생적 비엔날레의 모델 : 부산청년비엔날레
((1)-1 부산의 문화적 브랜드를 찾아라 : 바다미술제)
(2) 새로운 미술문화를 만들다 : 사인화랑 (3) 삶의 이야기들 : 형상미술
(4)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 그룹 ‘해빙’과 개별작가들
(5)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미술로 이루어졌다. 특히나
이 6가지 섹션을 이루는 시기는 부산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던
첫 세대들이 사회로 진출하던 시기였으며, 이들이 보여준 새로운 감성과
표현 방식은 기성세대들에게 던졌던 문제의식이 응축된 문화현상이라는
측면이 색다른 점이라는 설명이다.
부산미술운동연구소-부산사람들 일.싸움.놀이.展 포스터 외
그런 점에서 부산 지역 대안공간의 효시랄 수 있는 사인화랑의 활동과
청년비엔날레 그리고 바다미술제의 탄생과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같이
했던 부산지역 민중미술에 대한 부분은 제법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더불어
당시 자료의 나열과 복원 그리고 당시 활동했던 미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은 아카이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작품들이 등장하지만,
이 또한 자료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다. 전시된 자료들은 시대 상황과
전시 기획의 의도를 일정 부분 충족하여 당시, 변해가는 새로운 세대들의
감성과 열정이 묻어난다. 작품과 또 다른 자료가 가지는
새로운 형식의 힘인 것이다.
문제는 이 새로운 형식 이면의 것에 대한 준비의 부족함에 있다.
이 전시에 나열된 자료는 자료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공간을 점유하며 새로운 아우라를 형성한다. 이건 새로이 생산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생산 관계가 무릇 역사적인 증거물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더욱 신중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된 자료들은 원본 자체의
의미만을 가지는 텍스트text로서의 의미를 떠나 자료와 자료 사이 또는
전시공간 안에서의 계획된 전개 양상은 필연적으로 숨겨진 문맥의 뜻을
함축하는 컨텍스트context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 논의의 장으로
이끌려는 기획적인 의도는 갖지 않더라도 자연히 발생되기 마련이므로
(특히나 증언자들이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컨텍스트에
대한 심혈을 기우려야 함이 마땅하다. 쉽게 말하면 어느 작가가 작품을
최종적으로 전시장에 진열을 완료 하였다면, 준비 과정의 구차한 변명이
별반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인데, 이번 전시가 의도하는 역사 정립의
의무를 피할 수없다면 여기에 선보인 자료들은 더욱더 숙성과정을 거쳐
다듬고 가공하여 내 보냈어야 되지 않았었나하는 아쉬움이다.
부산의 문화적 브랜드를 찾아라-바다미술제
지역 미술 무관심한 채 화려한 국제행사 치루는 지자체
이 아쉬움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이번 도큐멘타리 전은 좋은 의도와
기획과 실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점을 특히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멀게는 지역미술관으로서의 목적과 그 정체성을 시립미술관
설립 때부터 분명하게 하지 않은 까닭이며, 전시 전 단계에서 많은 시간동안
이루어져야 할 지역미술사에 대한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분류 후 연이어지는
증언과 취재(밭에서 일하는 자세로) 또는 정체성 있는 사관 정립에 대한
준비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며, 부족한 인력과 부산시 당국의 지역 미술사
정립 및 자료에 대한 무관심과 태부족인 지원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소견을 지울 수가 없다.
부산시는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멀리 외국에 나가 보기
어려운 세계의 미술품들을 부산이란 도시에 끌어드려 구경꾼을 모으는데
중점을 두면서도 정작 이 국제적인 행사를 통하여 부산의 미술적 뿌리와
창작의 원동력을 드러내 보이는 데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한 개인이 평생 모아온 부산지역미술사의 귀중한 자료들조차 수장할
공간이 없어 그동안 기증 받기를 미루다가, 올해야 비로서, 그나마 예산이
삭감된 시립미술관으로 접수를 시켜 부족한 인력으로 분류를 하고 있는
지경이니 말이다.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이루어진 지역미술사의 정립도
지역미술의 긍지도 없는 지역시민이 세계의 어느 미술문화를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도큐멘타리 부산 전은 지역에서 이런 고민을 촉발하는 다이나믹한
논의와 고민의 계기로 활용해야 될 성싶다.
자생적 비엔날레의 모델-부산청년비엔날레 -정진윤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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