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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일본 순회전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5.

전지구적 연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보다《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일본 순회전            
▲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전 개막식

        
   
민중의 고동-한국미술의 리얼리즘 1945-2005》전(이하 민중의 고동전)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의 5개 미술관 (니가타현립 반다이지마 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안 미술관, 미야코노죠 시립미술관, 니쉬노미야 시의 오오타니 기념미술관 및 후추 시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순회전이다. 이 전시는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1945년 광복 이후부터 2005년까지의 한국미술 가운데 당대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리얼리즘 미술이 소개되었다. 작품선정에서부터 전시기획, 카탈로그 제작 등 모든 과정에서 국립 현대미술관과 일본 미술관 관계자들 사이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100점이 넘는 리얼리즘 미술작품은 대부분이 국립 현대미술관과 '청관재 민중미술 컬렉션'에서 온 것이다.

《민중의 고동》전은 1945년부터 2005년까지의 한국 리얼리즘 미술을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일본의 관객이 한국의 리얼리즘 미술을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첫 번째 시기에는 민족, 민중미술의 준비기간에 해당하는 1945년 광복후의 리얼리즘 미술부터1969년 창립된 '현실동인'이 소개되었으며, 두 번째 시기에는 민중미술의 태동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초반 등장한 현실과 발언, 임술년, 두렁 등 소그룹들의 활동이 소개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민중미술운동의 전성기에 해당하는데, 민중미술 작가들이 미술과 미술작가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현실 정치 참여적인 면 (시민미술학교와 민족미술협의회)을 소개했다. 네 번째 시기는 1990년 이후의 다양한 미디어의 실험을 시도해온 민중미술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해방기 리얼리즘 미술부터 다뤄

1987년 6.10민중항쟁 20주년을 맞이하여, 민중미술은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고 20주기 회고전: 오윤 낮도깨비 신명 마당》이나 가나 아트 센터의 《민중의 힘과 꿈: 청관재 민중미술컬렉션》 등 다수의 전시가 있었다. 비록 이런 전시를 통해 다양한 민중미술이 대중들에게 소개되었지만, 언론과 미술 판에서의 반응은 아직도 차갑고 재평가의 노력은 더뎠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순회 전을 통해 일본에서 우리 민중미술이 처음으로 소개된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본 전시는 지금까지 모노크롬이나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현대 미술 작가들을 중심으로 소개되었던 한국미술작가의 전시들과는 달리, 일본에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미술의 또 다른 면을 알린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회이다.

대부분의 민중미술 전시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기까지 민중미술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반해 이 전시에서는 1945~2005년까지의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민중미술을 한국 리얼리즘 미술 발달의 문맥 안에서 점검하였다. 보통 민중미술을 논의할 때, 민중미술의 뿌리를 1969년에 창립된 현실동인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 17,18,19세기의 조선시대민중의 삶이 녹아 있는 민화 등의 작품에서 찾으려는 시도도 있으나, 이 전시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의 한국 리얼리즘 또는 민중미술을 점검하였다. 따라서 민중미술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한 해방 이후의 일제 식민지 잔재, 친미 정부의 초국가적 반공 이데올로기, 군부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 재벌 기업들의 노동착취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민중미술의 개념 넓히고 있는 이종구의 <실크로드>

 

또한 이번 일본에서의 전시는 한국 민중미술이 단지 과거의 국내 민주화 투쟁이나 민중 미술 운동의 성과를 넘어, 세계의 사회 참여적인 미술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민중미술의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을 촉구한다. 이종구는 그의 회화 <실크로드, 영원의 빛 쉬라즈 배두인족>(1995) 에서,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오던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힘든 삶의 문제를 통해 제 3세계 민중의 공통된 역사적, 동시대적 경험에서 전지구적 연대성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는 1970-80년대에 민족, 민중문화운동에 쓰였던 민중의 개념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삶의 공동체의 문제를 한반도를 넘어선 세계 안에서 보았다. 이번 전시와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민중미술 확장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지만, 이것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창의적으로 펼쳐내는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 전시는 아쉬움도 남겼다. 그것은 첫째, 리얼리즘 미술과 민중미술과의 관계의 불명확함, 둘째, 카탈로그나 전시 설명에서 발견되는 기본적인 사실의 부정확한 기록이다.

본 전시는 리얼리즘 미술과 민중미술과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유보함으로써, 관람하는 내내 이 전시를 리얼리즘 미술 혹은 민중미술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접근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게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리얼리즘 미술 제 1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그 수가 적을 뿐 아니라, '민중 미술을 세우면서' 라는 소주제를 붙임으로써 이 시기를 민중미술 태동의 준비과정으로 보고 있다.

리얼리즘 미술이 구체적 삶의 현실을 다루고,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과 연결되는 보편적 미술창작의 가치와 조형성의 문제라면, 민중미술은 1970-1980년대 한국의 특수한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 운동을 시발점으로 하여 반군부 민주화투쟁을 통해 민중미술 작가들은 미술의 정치, 사회적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어 군부정권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결연히 민주화운동의 한 연대로 참여하여 민중의 현실에 참여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들은 식민지 잔재와 서구의 모더니즘을 극복하고, 현실에 맞는 전통을 선택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우리 전통 안에 있는 현실주의 정신과 조형적 표현을 심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서는 리얼리즘과 민중미술의 관계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이 이 둘 사이의 연결점을 너무나 당연시 또는 두 개념을 동일시하고 지나갔다.

 

민중미술과 리얼리즘의 모호함 아쉬워

1990년대 이후의 민중미술을 보는데도, 리얼리즘 미술과 민중미술의 차이를 분명히 정의하지 않아서 이와 비슷한 혼란이 야기된다. 1990년 이후 한국 사회는 커다란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를 맞이하게 됨에 따라, 민중미술 작가들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주제, 조형형식 및 다양한 미디어의 실험을 함으로써 민중미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렇지만 이 전시에 있는 몇몇의 1990년대 이후 미술작품들은 왜 그 작품이 민중미술로 불려져야 하는지 의문이 일게 했다.

예를 들어, 전시된 작품 중 1987년 6.10 민중항쟁의 불을 당긴 이한열 열사의 사진과 걸개그림을 패러디한 조습의 사진 "습이를 살려내라" (2002) 는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온 나라를 뒤 흔들었던 일명 '붉은 악마'의 응원을 상기시키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이한열 열사와 같은 포즈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전두환 군부정권의 포악성과 야만성을 드러내고 1987년 민주항쟁의 촉발의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1987년 당시 민주항쟁이 일어났던 시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구호를 외치던 20만이 넘는 응원 인파로 흘러 넘쳤다. 동일한 장소에서 사람들은 1987년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2002년에는 한국 축구의 응원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가 되지만, 붉은 악마가 죽어가는 이한열 열사를 흉내 내는 데서 오는 시각적, 심정적 괴리감은 15년 동안 얼마나 한국사회가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재치 넘치는 작가의 시도가 어느 정도 한국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이것을 민중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간다. 더 나아가 과연 2000년대에 민중미술은 미술작가에게, 관객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구체적으로 이 시대의 민중미술은 어떠한 내용과 주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형상화 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 민중미술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논의 필요

덧붙여 후에 국내외에서 민중미술 연구의 소중한 자료집이 될 카탈로그에 부정확한   정보가 기재된 것이 눈에 거슬렸다. 예를 들면, 현실과 발언의 창립연도 및 창립회원의 오기 등 유사한 실수가 카탈로그에서 몇몇 발견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일반 관객에게는 전시와 카탈로그를 통해 민중미술이 소개된다는 점에서 객관적 정보의 정확한 전달은 기본이다 .

이번 순회 전을 통해 많은 일본의 관객들에게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인 리얼리즘과 민중미술의 치열한 현실 참여 미학이 알려져 기쁘기 그지 없다. 아울러 이 순회전이 단순한 볼거리의 전시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이 시점에서, 1970년대 이후 미술과 정치와의 관계가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한 이곳 일본에서, 리얼리즘 또는 민중미술의 전시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물어 볼 필요가 있다. 반다이지 현미술관에서 전시된 《민중의 고동》전에 3000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했다는 사실은 민중미술 전시에 대한 홍보부족이던, 정치경향의 미술에 대한 일본 관객의 부정적 생각 때문이든 이 전시 전반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민중의 고동》전은 니가타현립 반다이지마 미술관 (2007.10.6~2007.11.25),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2007.12.2~2008.1.22), 미야코노죠 시립미술관 (2008.2.1~2008.3.16), 니쉬노미야시의 오오타니 기념미술관 (2008.5.24~2008.6.29), 및 후츄시미술관 (2008.7.5~2008.8.24)에 순회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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