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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마지막 벽화를 그리며, 송경동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9.

마지막 벽화를 그리며

- 3류 화가 배인석을 위한 詩


송경동




그러니 이런 것이었다

비정규직 철폐 전국순회미술전을 마치고

한미FTA저지,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예술포스터전을 마치고

나는 그에게 이번엔 대추리로 가자 했다




그는 황새울 벌판에서

붓 대신 각목을 들고 게기다

바보같이 연행되었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그게 미안해 나 역시 한번은 목이 졸려 실려가고

한번은 대가리가 터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우리 모두가 쫓겨 나와야 했을 때

그가 대추리의 기억을 남기자 했다

나는 사실 귀찮기도 했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수백 편의 벽화를 옮길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기찻길 옆 공부방 아이들이 그린 벽화만이라도 남기자고

나는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래 그러자. 할께. 너를 위해서 하마.”




기찻길 옆 공부방 아이들의 벽화를

기계톱으로 통째로 잘라 옮긴

대추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그가 처음으로 울었다




바보 같은 새끼!

울기는 왜 울어!

또 가야 할 제국의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털려야 할 자본의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울지도 못하는 나는

그날 새벽, 캠프 험프리 철조망을 넘어 가겠다는 그를

그때 그냥 놔두었어야 했다




행님, 나 인석이요

행님, 나 인석이요

한잔 하는데 형 생각이 나서 전화했수

이 7류 시인아

새벽, 횡설수설할 때마다




그 새벽, 그 날

화폭을 넘어 미 제국의 철조망을 넘다

총 맞아 죽었다는 화가가

이 한반도에도 한 명 있었다는 이야기를

역사 속에 새기고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




삶이 누군가의 시가 되지 못하고

삶이 누군가의 노래가 되지 못하고

삶이 누군가의 벽화가 되지 못하는

우리들의 서글픈 시대를 위하여

더 더 여윈 갈대가 되어

무엇도 남기지 않은 텅텅 빈 속으로

더 더 울어라, 인석아.

더 더 춤춰라, 인석아.



[출처] 3류 화가 배인석을 위한 詩 |작성자 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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