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미술생태계 2.0을 위하여
2009..11.28 발제자: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 소장 )
1, 미술생태계 2.0 의 등장
우리는 늘 변화를 꿈꾸어 왔다. 크게는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모순들을 돌파하기 위해 고민해왔고, 작게는 문화예술계, 더욱 좁히자면 미술계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고쳐보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 크고 작은 노력들이 분명한 지속성을 지닌 미래의 대안적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의문부호가 남는다. 하지만 문화예술계가 변한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술계에서도 변화는 분명히 일어났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 2009년 현재의 시점에서 되짚어 보면 더욱 뚜렷하게 가늠할 만하다. 그 변화하는 시기엔 미술생태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알리는 동시다발적인 활동들이 전개되었다. 나는 이 시점을 1990년대 중후반으로 보며 미술생태계1.0과 2,0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생태계2.0의 기반은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공고히 지속되던 수직적 구조의 미술계가 점차 수평성과 다원성을 띠게되면서 생겨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던 미술계의 답답한 수직적 구조를 반영하는 표현들은 주로 다음과 같았다. - 획일적인 입시제도를 통과하여 미술학원강사 되기, 권위적인 교수 밑에서 따가리하며 줄서기, 협소한 등단루트인 공모전을 통해 수상경력 쌓기, 돈모아 맨땅에 헤딩하는 대관 개인전 하기, 아는 선배들 따라 미술단체 회원되기 등-.
이렇게 초라하게 여겨질만큼 단조로왔던 미술계 구조 속에서도 젊은 예술인들은 변화를 꿈꾸었다. 마침내 1997년 외환위기(IMF)를 통해 한국사회의 허술한 구조들이 여기저기서 허물어지자 90년대 후반부터 미술계에서도 변화의 단초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젊은 예술인들은 지금의 프린지페스티벌을 탄생하게 만든 독립예술제를 추진했고, 대관화랑에 염증을 느낀 예술인들이 ‘사루비아’를 필두로 서울과 경기도 등 여러 곳에 대안공간과 폐교를 개조한 창작촌, 그리고 창작스튜디오를 통한 레지던스프로그램까지 시도하게 되었다. 더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소수의 미술인들이 간헐적으로 추진했던 저예산 공공미술프로젝트들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경기문화재단, 그리고 여러 지자체 등의 제도적 지원을 받아 전국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갔으며 프로젝트의 성격도 이젠 상당히 다양화, 다원화, 다문화, 다국적 네트워킹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몇몇 미술잡지와 비평가의 권위에 의존하던 시절은 가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인터넷 매체가 소통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친 MB정권으로 바뀐 지금에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화, 발전되었다. 오죽하면 새로운 공공미술법을 계속 반대해 온 한국미협이 전국의 공공미술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진행되어 온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 될 수 있다.
첫째, 해방 이후부터 권위적인 기득권을 중심으로 수직적인 구조 속에서 움직이던 미술인들의 활동과 성장루트가 수평적으로 해체되면서 상당히 다변화, 다원화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고전적인 매체와 쟝르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적 개념을 끊임없이 혁신하고 다차원적인 네트워킹을 통한 유목적 협업에 익숙한 프로젝트형 예술인들이 이미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점이 바로 미술생태계 2.0의 기본적인 토대라고 할 만하다.
2, 태그클라우드(tag cloud)로 본 미술생태계2.0의 주요 풍경들
현재 미술생태계에 서식하고 있는 인간유형들을 떠오르는대로 열거해보자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인턴, 프로젝트기획자, 코디네이터, 활동가, 미술전문기자, 미술관련기관 행정가, 교수, 교사, 강사, 학생, 에듀케이터, 도슨트, 학예사, 미술사가, 미학자, 연구원, 화상, 경매사, 수집가, 미술단체실무자, 잡지발행인, 작품전문사진가, 웹광고인, 아마츄어 동호인, 미술재료판매상, 작품운송업자, 광고기획출판업자, 무대미술피디, 미술장식품제작자, 브로커, 미술전문서적판매업자, 미술관 테크니컬 코디, 디자인-만화에니메이션-일러스트 업계 종사자, 기타 각종 미술관련사업자와 단기 알바 등등
물론 더욱 자세히 열거하자면 상당히 많은 직업명이 나오겠지만 분명한 것은 1990년대말 이후 현재까지 점점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났고 여러 예술 쟝르의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직업들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이번에는 위와 같은 미술관련 종사자들이 어떤 시스템 속에서 활동하는지 관찰해보자.
a, 정책, 지원, 연구 / 정책, 지원, 연구기관들의 역할은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보았다. 이 범주의 활동들도 점점 세분화 되어가면서도 네트워킹이 중시되며 이제 민간단체들이 보다 창의적인
사업들을 주도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 문진금지원, 정책수립 ( 문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 지자체, 기업의 지원 ( 경기문화재단, 인천문화재단, 메세나 등 )
* 연구, 컨설팅(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관광정책연구원, 예술경영지원센터)
* 공공미술프로젝트 지원 (서울도시갤러리프로젝트,공공미술추진위원회,마을미술프로젝트추진위원회)
> 지자체와 주민들의 과욕으로 인해 관공미술로 왜곡될 가능성이 농후함
* 민간기구 ( 공공 프로젝트를 연구, 추진하는 희망제작소 - 간판디자인연구소 )
* 사회적 기업 (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노리단, 오가니제이션 요리 등 )
b, 교육 / 미술생태계 1.0의 한계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미술대학과 입시미술학원
들이다. 영상과 만화에니메이션, 큐레이터학과 등이 생겨났지만 우리사회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는 곳이
대학과 입시학원이라고 본다. 이에 비해 대안학교의 역할을 하는 공간들이 나름의 독특하고 의미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 전국의 미술대학, 입시미술학원, 대학 평생교육원, 백화점, 미술관 문화센터 등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기관 ( 아르코 예술인력개발원 )
* 대안학교 (스톤앤워터 교육예술센터, 광주 북구 문화의 집, 하자센터, 인디고 등),
그외 창문아트센터, 밀머리미술학교, 대안공간 소나무, 리트머스 등과 같은
예술공간들이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
c, 창작 / 정책1990년대 후반과 현재의 작가들을 위한 창작여건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겨우 작은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어 하며 개인전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야
했던 청년작가들은 이제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국내외 레지던스프로그램과 창작스튜디오들은 젊은 작가들을 체계적으로 성장시키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과 교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더구나 여러 쟝르의 예술가들이 모인
창작촌들도 생겨나고 있으며 인문학 등 학제간 연구와의 접목도 시도되고 있다. 또한 작가들 뿐만 아니라
기획자나 비평가 그리고 관련 분야 연구자들 까지도 레지던스프로그램으로 융합해 나가고 있다.
* 국내외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프로그램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교류 프로그램,
창동-고양스튜디오, 쌈지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문래예술공장과 금천예술공장 등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 사업,
하이브, 대인예술시장, 석수시장 등 )
*창작촌 ( 안성문화마을, 왕곡천예술인마을, 구산오픈스튜디오, 하제마을, 문래동, 월선리 등
각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예술인들의 집단 거주지화 )
d, 유통 / 여전히 인사동과 같이 대관화랑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도 전시회가 많이 열리고 수십개에 달하는
여러가지 공모전이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제 고전적 의미의 공모전은
아마츄어작가들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린지 오래되었다. 즉 보다 전문적인 활동을 하는 작가들은
외면하는 것이 바로 고전적인 공모전제도이며 이제 공모전의 수상경력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대신 아트페어와 옥션과 같은 곳에 진출하여 잘나가는 작가들의 작품이 잡지와 방송매체를
도배하고 있다. 이젠 미술시장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미술시장은 작가들의 작품을 유통기한이 있는 상품처럼 취급한다.
어느 정도 잘 팔리는 시기가 지나면 어느새 그 작가와 작품은 그렇고 그런 댄스그룹의 옛노래처럼
희미하게 잊혀져간다. 만약 미술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상업화랑의 비즈니스 전략에 충실한 수공업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장의 시스템을 피해가는 방법은 대안공간과 프로젝트를 통한 창의적인 활동이다.
대안공간들은 대관화랑과 달리 젊은 작가들을 각 공간의 정체성에 따라 발굴, 지원하고 또 다른 활동의
매개역할을 해준다. 물론 여기에서 미술시장으로 진입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안공간 출신 작가들의
장점은 쉽사리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 탐구를 계속해 가는 면이 돋보인다. 실제로 향후
한국현대 미술사를 정리한다면 대안공간의 의미는 정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을 받는 대안공간들도 운영자금란에 항상 허덕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이 끈질긴 대안공간들은 미술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외에도
미술생태계2.0의 가장 중요한 기반 중 하나인 온라인매체를 통한 이미지와 담론의 유통은 한국사회의
정보화 발달에 발맞춰 더욱 가속화, 보편화 될 전망이므로 여기에서는 특별한 논의를 하지 않겠다.
* 실물유통- 상업화랑, 아트페어, 경매, 미술은행, 공-사립미술관의 작품구입,
* 이미지 유통- 언론, 잡지, 광고기획사, 출판사 > 온라인-홈피, 블로그, 웹진 발달
* 활동정보 유통- 대안공간 루프, 아트스페이스 휴, 스페이스 빔, 오픈스페이스 배, 미나리,
인사미술공간, 대안공간 풀, 복합문화체험장 하이브 등
* 축제나 프로젝트를 통한 대중과 예술인들의 교감-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와우북페스티벌, 공공미술 프로젝트, 벼룩시장 등
* 기업형, 금융형 유통 - 아트펀드, 아트마케팅
* 기존의 대관화랑, 공모전
e, 복지/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에게 ‘복지’란 말은 아직 너무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단어이며 복지의 개념
조차도 무엇인지 가늠할 길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일반 비정규직 노동자 취급도 못받는 것이
우리 예술인들의 현실이다. 우선 예술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인 척도로 받아들이고 최소한
4대보험과 최저임금제 보장, 작업실과 같은 주거에 대한 복지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필자가
독일의 ‘예술가 사회보험’을 소개한 2003년 이후 2009년 현재까지도 예술인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설령 정부 산하 연구원에서 독일, 프랑스와
같은 복지모델들을 연구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또 다시 유야무야 되거나 정치권의
상황에 따라 추진방안은 빛도 보지 못하고 항상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다. 현재 문광부에서 연구, 추진
중인 ‘예술인 공제회’ 등도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비숫한 복지정책들을 올해 원점에서 재논의하기
시작했으므로 그 실행여부는 미지수일 수 밖에 없다.
* 예술인 복지사업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방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사업 추진 예정 )
* 예술인 복지법안 ( 국회 상정, 계류 중 )
3, 견고한 조직체의 종언과 느슨하고 열린 관계망의 시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10여년간 미술생태계에서 일어난 변화의 폭은 너무나 역동적이고 흥미롭다. 그러나 이런 역동적인 변화에 비해 오히려 침체되고 쇠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이미 1980년대에 정치, 사회적 표현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이른바 ‘진보적인 예술단체’들이었다. 1980년대엔 진보적 미술단체와 보수적 미술단체 간의 활동은 매우 다른 성격을 띠었는데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1945년후의 해방공간에서 미술계가 좌익과 우익 그룹으로 분열되어 극단적인 유사정치단체의 활동을 벌이던 때와 흡사했다.
1990년대 들어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정치적, 사회적 변화 앞에서 한국의 소위
’진보적 예술단체’들은 새로운 비젼을 찾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참신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채 지금까지 그저 관성과 타성 그리고 인맥의 한계 안에서 맴돌며 단체의 명맥만 겨우 유지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적’이라고 했던 단체들이 이젠 ‘진부한’ 모임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특히 최근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보수단체 작가들의 그림들과 그다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유사하기도 하다. 이런 사태는 한마디로 미학적 나침반의 상실이라 할 만하다.
현재 미술계에서 정치적, 사회적 발언을 복합적인 매체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들은 민예총이나 민미협의 민족, 민중미술을 표방하는 작가들이 아니라 대안공간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펼치며 서로에게 촉매 역할을 하는 무소속의 젊은 작가, 활동가, 기획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쟁점에 따라 느슨하게 연대하고 협업하며 다시 각자 다른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흩어진다. 또한 이들은 관심사와 사안의 경중에 따라 특정한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국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세미나, 퍼포먼스,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출몰하며 인터넷 상의 소통과 여론화에도 발빠른 능숙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열린 네트워킹에 강하고 행동반경이 넓은 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미술계가 진보나 보수로 나누어질 만큼 정치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단순하지도 않은 이러한 시대에,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으로 내려가는 하향식 정당조직처럼 형성된 과거형의 견고한 예술가 조직, 단체, 협회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한 점은 견고하고 안정된 조직을 지향할수록 그 역동성은 쉽게 쇠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견고한 조직이란 태생적으로 배제의 논리를 깔고 있으므로 유동적인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폭넓은 관계망을 형성하는 데 인색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새로운 정보가 넘쳐나고 문화예술적 환경이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견고한 예술조직이란 도그마(dogma)라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에 불과하다. 단언하건대 닫힌 조직의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하기 마련이다. 가장 최근의 과학적 논의인 복잡계(Complexity system) 이론에서도 ‘창조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생긴다’라고 말한다. 이는 단지 자연과학의 논리에서만 증명되는 이론이 아니라 문화예술생태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문화예술생태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이들은 중심이 없이 느슨하고 열린 관계망을 형성하며,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질서를 형성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즉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예술인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학적인 지향점도 불분명해지고 정치적 운영능력도 떨어지는 유효기간이 지난 구시대적 미술단체들이 그나마 회원들의 권익보호나 활동지원과 같은 실용적인 역할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아무런 쓸모없는 폐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구성원들 스스로 과감히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4, 지역이 아닌 수평적 네트워크의 매개점으로 진화하기
전국 여기저기에 대안공간이나 레지던스프로그램이 가능한 창작스튜디오들이 생겨나면서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 지역의 젊은 작가들은 공모전이 아닌 대안공간이나 창작스튜디오를 보다 의미있는 등단루트나 활동의 거점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안공간들은 포트폴리오와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작가들을 선발하기 때문에 실력있고 잠재력이 있는 작가들을 많이 배출해 왔고 각 지역에서 흥미로운 주제로 담론을 형성하고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경우엔 국내외의 다양한 작가들이 일정기간 동안 머무르며 교류하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욕구를 자극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서울과 지역’ 혹은 ‘중앙화단과 지방화단’과 같이 단순히 장소에 따라 미술계를 구별짓는 캐캐묵은 중세적 단어들이 점차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나아가 유럽과 아시아의 작가들이 국내의 레지던스프로그램에 들어오고 공공프로젝트에도 함께 참여하면서 ‘국내화단’이나 ‘해외미술’과 같은 단어들도 이젠 진부하게 들릴 만큼 미술생태계의 상황이 중층적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이는 단지 미술생태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사회는 다양한 외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고 그들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다문화사회로 변해 가고 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과 다문화 프로그램을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고 공동체의 주요의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안산의 ‘커뮤니티스페이스 리트머스 (Litmus)’는 다양한 민족과 국적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만날 수 있는 열린 공동체의 장을 만들기 위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또한 부산에서 운영되고 있는 ‘인디고 서원’의 예도 눈여겨 볼 만하다.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라고 하지만 이미 인문학을 넘어 예술과 생태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청소년들의 공부와 토론 수준은 그야말로 국내외 석학들이 대면해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리트머스와 인디고 같은 대안문화공간들의 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우리가 직면한 공동체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해법에 대한 시야가 상당히 넓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있지만 지역적인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지도 않으며 의미있는 문화예술 담론을 생산해내고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한 매개점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을 보면서 단일한 미학적 강령 하에 국적, 민족, 지역 등으로 미술을 분별하거나 행정구역에 따라 XX지부, XX지역협회 같은 것을 조직하고 그것에 갇혀서 예술적 상상력을 소진하는 일은 지극히 비젼이 없는 짓이라고 확신한다.
세계는 끝없이 출렁이며 공진화하는 관계의 그물망이다.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다. 예술적 상상력도 그러하다. 중앙도 없고 지역도 없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우리가 가는 예술의 길도 한 가지 길이 아니며 끝없이 갈라지고 서로 만나면서 미지의 고개를 넘고 또 넘어간다. 우주라는 거대한 그물망을 구성하는 수 많은 그물코들 중의 한 지점에 우리는 잠시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그 한 지점이 활발한 문화의 발화점이자 촉매점으로서 빛나길 기대한다.
5, 지역 미술생태계 2.0을 위한 실용적인 제안
대부분의 인적, 물적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이나 수도권도 아니고 광역시와 같은 대도시도 아닌 목포와 같은 지방 소도시의 문화예술생태계의 개변을 위해 실제로 해나갈 만한 일들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으로 실행가능한 것 두 가지만 제안해 보겠다.
*대안공간의 활성화:
문화적 변화와 자극이 별로 없는 현단계 목포지역의 싱황에서 대안공간의 역할과 활동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청년예술인들은 대부분 목포를 등지고 수도권으로 옮겨가거나 외국유학을 가버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청년예술인들은 자신들이 자란 지역이 문화적 변방이라는 소외감에서 탈출하고
싶고 활동의 기회가 많은 곳을 찾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목포의
문화예술생태계는 별다른 희망이 없다. 청년예술인들이 다른 곳에서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목포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거나 최소한 왕래하며 활동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지점’이라는 인식이 심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소통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대안공간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청년작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양한 강사들을 초빙하여 예술과 인문학
등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워크샵, 세미나, 아카데미를 진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한 대안공간은
자발적인 소모임 활동이나 의미있는 공공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작가들이 만나는 공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 다른 지역의 대안공간들과 교류하면서 여러 지역의 예술인들을 초청하여 전시회와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대안공간의 활동들은 결과적으로 미래의 지역활동가와 기획자들을 자연스럽게
키워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예술인 생활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은 다른 영역에서 이미 운영되는 제도이지만 미술영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단어이다.
예술인 생활협동조합은 궁극적으로 예술인 조합원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보다는 생산자 협동조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실제로 조합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미술인들로 이루어진 조합을 생각해보면
오프라인에 조합 사무실이자 매장 역할을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매장은 조합원 작가들의 개인작품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예술상품들이 판매되는 아트샵 개념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여기서 ‘공동개발 예술상품’이란 특히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흔히 지역의 일반적인 생산자 협동조합에서도
지역 특산물 같은 것들을 제품화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적어도 예술인 생활협동조합이라면 조합원들이 최소한 일정한 노동시간을 규칙적으로 투자하여
공동연구를 통해 독특한 예술상품을 개발, 생산, 판매하는 것을 추진해 볼 만하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예술인 생활협동조합의 예술상품들을 홍보하면서 동시에 조합원들 각자의 작품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메타블로그(metablog)’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메타블로그는 전국의 기획자,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경매 관계자들에겐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가 되리라고 본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예술인 생활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비젼이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 받을 수도 있으며 나아가 외부의
지원이 없이도 일정한 독립적 자본을 갖춘 지속가능한 생산공동체로 자리잡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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