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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10년~2019년대 자료

새로운 진보예술인 조직의 방향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3.

새로운 진보예술인 조직의 방향
                            
                                             장현정 (사회학 강사, 호밀밭 출판사 대표)

1. 개요

- 개인의 힘이 ‘체력’에서 나오듯, 사회(집단)의 힘은 ‘맷집’에서 나온다. 개인의 건강이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유전자나 세균 등에 얼마나 잘 견디는가와 연결되듯, 사회의 맷집은 곧, 다양성, 긴장감, 다른 의견 등을 얼마나 조직 내부에서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결국,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아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나아가야만 건강한 조직이 될 것.

- 본질을 이야기하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그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각론, 방법론, 전략 역시 매우 중요하다. 본질만을 강조하거나, 본질을 놓친 채 각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마치 가장 작가주의적 고민을 하는 예술가가 가장 산업적 고민을 하는 것처럼.

- 핵심은 유연성이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그것을 경직되고 폐쇄적 방법으로 추구하느냐 시대 및 주변상황의 변화와 가치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추구하느냐는 매우 다른 결과를 낳을 것.

- 한 세대의 발전 동력은 다음 세대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역사의 변증법을 떠올려본다. 근면, 성실, 금욕이란 가치가 지난 시대 우리사회의 발전과 풍요를 견인한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에 대한 필요보다 창의력과 지식, 정보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는 오늘날, 이전의 가치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꾸역꾸역 24시간을 쪼개 근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색과 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색, 낭비, 사치, 여유, 비효율성, 비합리성, 의미 없음 등의 개념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오늘날 더 나은 삶을 위해 ‘예술’ 의 가치가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담론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진보의 방법론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 우리사회의 엄혹한 현실을 살펴볼 때, 선배들이 추구했던 hard 한 방법론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2010년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적용될 수는 없을 것. 보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이 오히려 더 급진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시대상황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 제도, 법률 등 사회의 하드웨어에 대한 견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되 분위기, 문화, 정서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소프트웨어에 더욱 신경 써야 할 것. 이는 예술 본연의 가치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시대적 요구이기도 함. 다시 말해, 위로부터 지원,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보다 지역사회, 일상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아래를 향한 배려, 애정, 서비스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
- 조직 스스로 엘리트, 지식인, 설득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지역사회 및 한국사회 전체 구성원을 위해 희생, 봉사, 서비스, 배려, 더 밑으로 임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할 시기.

2. 무엇이 필요한가.

- 조직의 구성은 운영위원회와 집행부, 연구부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 운영위원회는 회장을 중심으로 10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구성되고, 이들의 역할은 1년 내지 장기적인 조직의 방향을 큰 틀에서 결정하는 것. 소수 정예의 의사결정기구로서 조직의 모든 활동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한을 가짐.

- 집행부는 1~3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기준으로 팀 단위로 구성. 운영위원회에 건의하거나 필요에 따라 운영위원회로부터 결정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기 위한 단위로 각 프로젝트별 팀 단위로 다시 분화됨. 즉 집행부 내에 5~10개의 프로젝트별 팀이 가동되는 형태. 팀장은 일종의 프로그래머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해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재정, 인사 등 권한을 가짐과 동시에 의무를 갖는다. 팀장의 판단 아래 외부 인사와 외부 팀과의 연계도 가능하며 나아가 가급적 더 많은 외부 인사 및 팀과 네트워크를 추구할 것.

- 각 팀이 집행부 내에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할 것. 집행부 내부의 팀 단위의 네트워크는 물론, 각 팀을 중심으로 외부와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에도 관심 기울여야하며 향후 전체 조직이 지역사회와 조직 내부의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이 지점에서 결정될 것이라 생각됨.

- 연구부는 강단학자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예술가로서 현재 예술의 사회적 가치 및 변화하는 예술개념의 재정립 등 현안에 대해 연구하고 세미나, 스터디 등을 통해 논리를 개발하고 홍보하는 역할.

- 집행부와 기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참여 속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결과 분석도 진행할 수 있을 것.

3. 요약

- 사회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형식민주주의, OECD 가입 등 정치,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MB가 당선되고 여전히 7,80년대의 수구적 가치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직선’ 의 미학이 주류를 이루고 정리, 정돈이라는 합리성의 강박이 유효하게 먹히는 건 왜일까.

- 그것은 다소나마 발전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 즉, 기술이나 제도는 발전하는 데 그에 걸 맞는 문화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른바 ‘문화지체’ 현상이 주 원인일 것.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산업, 노동, 정치, 경제 등의 거대담론의 영역보다 문화, 예술, 이야기 등의 소소하고 일상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 현상을 이해가능하게 됨. 결국 아래로부터 준비되거나 지지받지 못하는 하드웨어가 의도와 달리 한계를 드러내듯, 아래(조직과 무관한 사람들 포함)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조직도 사회적 가치에 이바지할 수 없을 것.

-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는 많은 논의들이 존재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상과 동떨어진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근대적 개념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화, IT, 테크놀로지, 다중의 출현 등 변하는 사회현실과 구조를 폭넓게 수렴할 수 있어야 할 것.

- 때문에 소수의 최종의사결정기구로서 운영위원회를 제외한 하위 단위(연구부, 집행부)는 일상적으로 조직 외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스스로 조직의 구성원인가 아닌가란 소속감으로부터 자유롭도록 유도할 것.

- 조직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정재계 및 언론, 학계 등 유관기관 및 개인들에 대한 풀 pool을 형성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조직이 중심이 되어 pool 의 협조 및 지원을 끌어낼 수 있도록 네트워크의 틀을 잡아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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