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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10년~2019년대 자료

부산민미협 정기기획전 11월26일 대안공간 반디에서 합니다.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4.

부산민족미술인협회 정기 기획전
Post-war : 총력 체제와 일상

                                                큐레이터 김만석

* 기획의도

전후는 역사적으로 2차 대전 종결 이후 냉전체제를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는 개념이거나 전쟁이 끝난 직후를 지시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전후’를 냉전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체제로 바라보거나 전쟁이 끝난 뒤로 의미화하거나, 전쟁의 상태가 종결되었다는 관점에 서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즉, 이는 전쟁이 특정한 상태, 즉 ‘적대적 국가와 무기를 교환하여 이루어지는 살육’만을 뜻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전쟁과 전후를 뚜렷한 단절로 사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후’는 전쟁이 종료되고 한 사회가 안정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는 관점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의 상태를 ‘혼란/혼돈’으로 간주하고 전후를 ‘안정/일상’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인 인식론이 ‘전후’라는 개념에는 암암리에 가로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인 도식에 근거해서 전쟁과 전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후’가 안정/평화를 구가하고 있다는 근거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한데, 가령, 전쟁의 상태가 아니라고 간주되는 ‘지금, 여기’의 삶이 실제로는 다양한 ‘국지전’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저 묵묵히 견디고 있는 일상에서도 숱한 전쟁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전후’가 ‘전시’, ‘전장’과 다를 바 없으며 삶의 모든 가치를 특정한 목적 아래 환수하여 이 가치를 위배하는 순간 생존조차 위기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전후 혹은 일상이라는 이 전장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며 특정한 개별적 존재들을 불구적으로 구성하여 이러한 체제에 포함시키면서도 배제하는 전략들이 수행되고 있는 것을 보라.

원래 근대 이전의 ‘전쟁’은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과 ‘삶의 장소’는 서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근대 이후에는 ‘전장’과 ‘삶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총력전으로 전쟁이 수행된다. 예컨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을 경험한 1939년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 전쟁이 벌어졌던 장소는 실제로 중국 일대와 남방 지역 등이었지만, 조선에서도 전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축되고 있었으며 조선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 자체가 전쟁이라는 카타스트로프로 빨려 들어갈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형국이었다. 이른 바 ‘후방’이 전장의 연장으로서 ‘총후’로 지칭되었고 밥그릇과 같은 ‘물자’에서부터 ‘몸’, ‘정서’, ‘정서’ 등등을 모두 전쟁이라는 목적으로 휘몰아가면서, 전쟁과 무관하다고 보이는 것을 모두 전쟁으로 끌어 들였다는 것이다.

한편, ‘총력전’이 수행된 이후에 실질적으로 삶이 전쟁과 연동되어갔고 그러한 에너지로 구축되어 있었다면, 전쟁의 종료가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에너지가 완전히 불식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마치, 팔을 절단 당한 환자가 자신의 팔이 여전히 있다고 믿는 환상통의 경우에서처럼, 전쟁의 종결(사지 절단)이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전쟁을 수행(환상통)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실제로 해방되고 난 다음 1948년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 2년 뒤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전면전을 경험한다는 역사적 과정(비록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필연적 인과성으로 논의하는 것이 문제적이기도 하고 한국전쟁을 단순화해서 이해하는 것이긴 하지만)은 전쟁이 끝난 뒤를 안정/평화로 이해하는 것은 적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달리 말해, 한국전쟁이 종결되고 난 뒤 1953년부터 한국 사회 전체를 사로잡은 ‘이데올로기’ 문제는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개별적 존재들의 구체적인 삶과 의식을 통어하고 장악했으며 냉전이라는 전쟁 체제의 영향력 아래에서 삶을 저당 잡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낱낱의 행위와 실천이 전쟁으로 소급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한 군부 세력들이 한국 전쟁 이후 연이은 체제 장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경제만이 ‘정의’의 영역으로 간주했고 이를 위배하는 문제제기와 비판을 ‘적대적’인 것으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전후’가 안정과 평화의 시기로만 의미화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총력전”이나 “비상시국”과 같은 표현이 법적 선언문에 등장하면서 전쟁이 ‘예외상태’가 아니라 ‘일상적인 과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범박하게 말해, 경제적 성장을 최종 심급으로 하는 논리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다양한 가치를 보존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방식은 마련될 수 없고 오직 ‘생존’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삼는 부박한 삶만이 가능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문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특히 지역에서 문화․예술은, 지역이 지속적인 수탈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 가치를 승인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주의할 것은 문화․예술의 이러한 처지가 그것의 존재방식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즉, 지역이라는 전장에서 문화․예술이 실질적인 푸대접을 받을 수 있으며 한편으로 사회 체제를 유지, 보수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때 생존을 보장받게 된다. 이는, 지역에서 문화․예술은 프로파간다화의 위험에 빈번히 노출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에 거주하는 개별적 존재들의 존재론적인 문제 역시 매우 민감하게 성찰해야 하는 문제이다. 특히 ‘몸’은 일종의 전쟁터가 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규율화의 원리가 침입하는 통로이면서 규율화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몸’을 사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개별적 신체들은 사회적 신체와 동시적으로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도시/국가가 전쟁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도시/국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또 도시/국가가 어떤 공간인지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또 전자 네트워킹이 구축된 사회에서 미디어가 차지하는 일종의 무기로서 역할 역시 성찰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여기에 개입하는 조형언어가 어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

최근 한국사회에서 ‘생존’이 절체절명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은 일상이 평온한 것으로 판단되기보다 전쟁터가 되고 있으며 삶의 모든 문제의식이 ‘경제’의 영역으로 몰입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이 ‘디자인’으로 영토화되면서 프로파간다의 언어로 환수되기도 하는 등 조형언어가 자신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우 열심히 작업을 했음에도 그 노력과 분투가 지배질서의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버릴 위험이 조형언어의 자리에 서성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익과 취향으로 취급되지 못/않는 조형언어들이 지배적 조형언어에 수행하는 전쟁에서 자주 패퇴하여 목소리가 결절되고 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혹은 자신의 급진적(radical) 언어를 상실하고 현실에 순치되어 궁극적으로 현실을 평화와 안전으로 구성하는 데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일상을 평화와 안전으로 구성하는 조형언어는 자신의 급진적 목소리를 상실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상을 평화와 안전으로 의미화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제 목소리를 상실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려는 태도가 녹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자신의 목소리와 뿌리(radical)를 간직한 조형언어는 전쟁으로 내모는 지배적 원리와 전쟁을 불사하는 언어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아니, 조형언어는 근원적(radical)으로 전쟁언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포스트-워’ 시대에서의 조형언어는 지배적 전쟁과 벌이는 예술적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


* 기대효과

무엇보다, 미술사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역사적 전위’(historical Avant-grade)와 그것을 수행했던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기왕의 예술적 실천들에 대한 일종의 전쟁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판단할 때, 삶의 전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전쟁’은 불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의 혹은 여러 방식의 전쟁이 여전히 수행중이라는 것을 주목하게 만든다. 조형언어 내부의 다양한 갈등적 역학들을 통해서 전쟁에 응답하는 차이들을 주목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조형언어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진전하는지를 살피고 조형언어가 개입하는 현실적 문맥들을 소통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시의 전체 구성은 전장의 형태로 만들 필요가 있지만,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이를 구성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신 각각의 작업을 유기적인 형태로 조성하되 입체와 평면 작업이 갖는 특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을 고려한다. 물론, 이러한 개별적 조형언어에 대한 존중은 다른 작업과의 관계 아래에 있을 때에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평면과 입체를 결합하는 방식을 고려할 것이다. 가령, 김수은의 설치와 박자현, 심점환의 작업을 하나의 묶음으로 둘 수 있으며 김경화, 이인미, 변대용의 작업을 동시적인 작업의 형태로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전시 구성을 통해 제도적으로 절단된 조형언어(설치와 평면) 사이에 관객들이 위치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각각의 작업이 특정한 의미체계로만 환원되는 것을 피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현실을 관계의 산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전시방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관객들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원리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몸,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가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 곧 전쟁이 ‘생태’가 되었음을 환기할 수 있을 터이다.


참여 작가(가나다순)

강태훈 김경화 김성연 김성철 김수은 박자현 변대용 변진수 서평주 심점환 이인미 정도윤 정만영


전시서문

김준기(미술비평), 김대성(문학비평), 김수현(영화비평), 신양희(미술비평)


도록제작

비온후(≪B-art≫의 형태로 제젝)


전시장소와 일시 : 대안공간 반디11월 26일∼12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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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과 더불어 참여작가들과 부산민미협회원들의 토론회가 있습니다.

꼭 참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일정 관계 상 이 전시를 시작으로 총회 일정을 잡을까 하오니

오픈식에 꼭 참석해 주시고 사정상 못 오시는 분들은 주변 분들께 위임을 해 주셔야

논의가 원활히 될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부산민미협회원 여러분! 역으로 봄볕에 기지개를 펴듯 그간의 회포를 풀어 봅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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