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하지만, 말을 바로 하기란 어렵다. 왜일까? 비뚤어진 사정은 개인적이지만, 그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은 사회적이거나 공적인 소통에 대한 책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전시의 제목이 발칙하면서도, 가소롭고, 한심하면서도, 궁금하다. 가수 연영석의 노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뭐 이런 식은 아닐 것이지만, 내가 알기엔 이는 그보다 격렬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법 하다?!. 잠시 이들에게 휴식이 필요했으리라. 아니면 우연한 사고라도 좋다. 물론 합의된 표현은 아니지만, 여하튼 이 전시의 개막일인 8월 1일은 대한민국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는 휴가 시즌의 시작 인 것은 분명하다. 현 정권에 불만인 그대들 잠시 휴식을 취하라!
난 이 전시 글을 통해 뭔가를 설득하고, 또는 뭔가를 정의 내리려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모든 글이 그러하듯 이 글을 읽는다면, 조금이나마 내 생각에 대한 공감에 근접하게 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것은 뭐고 하니? 특정한 사람이 연상되는, 어느 여인이 시킨 전이란 제목보다는 “파견 미술”에 대한 논의와 생각을 이 전시를 통해 상호 관심을 촉발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미완성의 글 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너무 짧다. “파견 미술”이란 용어는 이 전시의 출품자 중, 어느 한 사람의 표현이다. 자신의 작업실을 떠나서 매번 사건 사고가 있는 곳에 매달려 작업을 하니, 이건 우리가 비정규직과 같이 파견 근무를 하는 미술가이고, 이는 파견 미술이 아닐까 란? 용어 발상의 표현이라 본다. 그런데 우리는 곧잘 이런 미술을 현장 미술이니, 좀 더 시간이 흘러 바깥 미술이니 뭐 이런 식의 표현으로 애써 정의 하려고 한 적이 있질 않은가? 그럼 지금 또 말하는 낯선 파견 미술은 무엇인가? 나도 뭔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용어와 목적과, 방식과, 구성원과, 조직과, 의결의 차별을 갖자는 것은 아닐는지? 여하튼 이는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으니, 잠정 가칭으로 하여도 좋으리라. 문제는 상호 논의의 촉발이다.
내가 보는 파견 미술은 사건, 사고만을 다루는 정치적인 천박한 주제주의 미술을 표방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그 이면에는 이 주제를 소화하는 미술 본연의 위대한 예술성의 성취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또한, 기존 사회 체계에 대항하는 구 조직적인 방식이상의 현실적인 대안을 염두에 두고 싶다. 이것은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을까? 특히 60년 정도의 나이를 가진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독립국가에서? 그것은 다시금 우리가 이 전시까지 오게 된 짧은 과거를 함축하여 사고하고, 되새겨 이야기해 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여기에 모여 있는가? 그 내면의 자발적인 시킴의 의미를 끄집어내어 엮고 싶을 따름이다. 이건 당장 해야 할 고민은 아니더라도 모두 공히 생각해야 할 고민이었으면 한다. 아니면 또 다른 의견이라도 충분히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 배인석
'전시안내 > 2001년~2009년 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의도 퍼포먼스 민심전 (0) | 2020.09.27 |
---|---|
그림책 화가, 촛불을 들다展_2009.7.24-8.20 용산레아 (0) | 2020.09.27 |
2009 포토코리아 "슈팅이미지" 코엑스 전시 (0) | 2020.09.26 |
2009 높빛평화예술제 함께 해주세요 (0) | 2020.09.26 |
2009 '조국의 산하전 참가제안서 (0) | 2020.09.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