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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2001년~2009년 전시

한층 밝아진 '강요배의 제주'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9. 29.

한층 밝아진 '강요배의 제주' 

 

 

제주의 바람과 땅과 하늘이 그림이 됐다. 마음 닿는 대로  고향 제주를 가슴속에 담아 숙성시켜 쏟아내는 강요배(54)의 그림은 잘 익은 김치 맛이다. 오랜 시간 제주 풍광을 잘 발효시켜 낸 맛이라 할까. 귀향 전 경기 고양 덕은리 작업실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 맛을 예상했으리라 믿는다. 꺼부정한 체구에 사람 좋은 이의 손맛을 그는 가지고 있다. 인근에서 작업했던 후배 작가들은 어느 해인가 미술상 상금을 소쿠리에 넣어 작업실 마루에 내놓았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가난한 작가들의 사정을 알기에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도록 배려한 것이다

 

2000년에 자리를 튼 제주 한림 귀덕의 작업실 주변은 온통 꽃과 과일나무로 가득하다. 수생식물이 가득한 연못도 한켠에 가꿨다. 자연을 불러들여 친구를 삼기 위해서다. 새들도 날아와 그림의 모델이 돼 주기도 한다. 온갖 생명들이 전업작가의 게으름을 경계라도 하듯 손봐 달라고 서로 아우성이다. 작은 소일거리로 삼으니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다.

 

그런 순화의 시간들 탓일까. 그림이 예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지고 밝아졌다. 민중미술로 출발한 그에게 예전보다 제주 역사의 칼바람이 한결 누그러진 것일까. ‘가슴 아픈 역사의 무게가 생생한 고향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일 게다. 작가 본인도 “강한 명암 대비나 필세의 강도를 줄였다”고 말한다

 

소담스럽게 핀 하얀 산작약이나 제주 화실 근처의 수선화 밭, 달 아래 억새꽃 등 옛 화조도 같은 구도와 소재들은 작가 자신의 속마음과 느낌을 충실히 전해주고 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대지의 모습이나 산굼부리, 제주 바다의 장엄한 모습, 제주고원에서 바라본 달밤 등 대자연의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대작들도 눈길을 끈다. 암갈색이나 회색조에서 벗어나 밝은 노란색이나 연분홍으로 색깔 변화를 시도한 것이 두드러진다. 강요배의 핑크빛 시대를 예고한다. 제주 땅에 스민 시간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그는 체득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수선화 밭(2005년·캔버스에 아크릴

 

제주말로 분화구를 뜻하는 ‘굼부리’를 산 정상에서 굽어본 것을 그린 그림에선 암갈색 땅구덩이가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자연의 속살이다. 구덩이 밑으로 빨려들 것 같은 기세에서 여전히 그의 기개가 건재함을 느낄수 있다.

 

명지대 이태호 교수는 “격정적이거나 고요하게, 불규칙적이거나 고른 리듬을 탄 붓질을 통해 강요배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대중에게 편히 전달하기 때문에 강요배의 그림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다”고 평했다. 22일∼4월4일 학고재 개인전 (02)739-4937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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