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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2001년~2009년 전시

박경훈 순회-서울전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9. 30.



박경훈순회개인전 ‘10년간’(서울전)
2005년 8월 3일(수)~8월 9일(화)
세종문화회관 별관1, 2실

전시를 준비하며

한 작가에게 있어 10여 년의 시간, 그것도 인생의 중반기인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어간은 삶의 와중에서 반성과 모색의 한 시기로 방점을 찍어도 좋을 시기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동네에서는 나를 그림쟁이로 대우하기보다는 민예총정책담당자 쯤으로만  봐 줄 지경으로 나의 게으름은 끝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책임감의 발로이거나 그 동안의 게으름에 대한 반성과 또 다른 모색을 위한 중간검토랄 수 있겠다.

이 전시에 걸리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지난 10년간 각종 전시에 출품했던 작업 중 CG합성을 통한 Digital Print 작업물들이다. 원래 매체를 가리지 않는 내가 만지는 다양한 작업들 중에서 가장 비물성적인 것으로 직접적인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작업물들이다.
물성과 비물성 사이, 거기에는 또 다른 괴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손맛, 즉 촉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만으로 얘기를 한다는 것에서 오는 감각의 부분적 상실감이다. 그것은 아날로그적 감성 속에서 성장한 작가가 디지털작업을 하면서 상당히 견디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만드는 이나 보는 이나 서정적이어서 편하거나 감성적으로 말을 거는 전략보다는 주제에 대한 거리두기의 불편함을 먼저 던져주는 작업들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은 무엇이었을까? 이미지전쟁시대에 이미지를 교란,  조작, 재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이렇게 모아 놓고 보면 그게 확연하지 싶은 기대감이 이번 전시에 대해 거는 내 나름의 셈법일지도 모른다.
  
10년간의 작업들을 모아 놓고 보니 몇 작품을 빼고는 대부분 아메리카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제주4·3을 중심으로 한 작업들이었다.
아메리카를 주제로 한 작업들은 주로 부시의 이미지 비틀기를 통해 󰡐제국 아메리카󰡑에 대해 사유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의 작업들이 주종이며, 제주4·3을 주제로 한 작업들은 그 동안 4·3의 중심논의에서 빗겨난 의미들을 탐구하는 작업들이다.
아메리카와 4·3은 제주의 역사에서 보면 분단이 만들어 놓은 쌍생아이다. 그러므로 아메리카의 문제는 제주4·3의 문제이기도 하며, 분단상황의 문제는 곧 아메리카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작업의 결과들이 성공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보는 이들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번에 발표하는 작업들은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단체전 등의 기회 때마다 제작했던 것들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 볼 만큼 해 봤다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만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항상 불충분한 시간 때문에 발표하고도 뭔가 허전하고 갈증나는 느낌들을 동시에 갖게 했던 작업의 산물이다. 허나 10년이 경과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작가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의문이다. 즉, 충분한 시간적 여유는 훌륭한 작업의 전제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어쩌면 이 작업들은 상황에 걸맞는 속도가 가미된 인식의 산물일 수 있다는 생각이고, 그런 여유란 사치일 수도 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군에 갔을 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에서 끄적이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후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해 가끔씩 그 때 그 때 내키는 대로 몇 자 적어둔 글들을 이미지와 연관시켜 도움이 되겠다 싶어 사족으로 넣어 본다.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걸어 놓고 보면 또 다른 길이 생길 것이라는 어쩌면 막연한 미신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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