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골목, 분리되지 않는 삶의 양면
부산의 삶과 정경을 주제로 한 《도시와 골목》전(11.27-12.3, 부산 장 갤러리)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부산이란 공간에서 벌어지는 도시문화의 격차를 골목을 중심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전시는 도시의 역사, 골목의 변모, 사람, 생명력, 커뮤니케이션 등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획돼있다. 작가들은 한정된 공간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터에 대한 인식과 또는 이웃으로의 확장 그리고 소통으로서의 표현을 당사자의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는 전 지구적인 세계화, 개방과 교류에 의한 무한경쟁과 그 속에서 자기 삶터에 대한 급격한 변모와 인식의 전환을 요구받거나 또는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강물같이 흐르는 우리 인생의 기억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들이 효율성만이 강조된 근대화의 산물이겠지만, 특히 항구도시로서 부산은 급격하게 기억의 공간을 무너뜨리며 성장했다는 생각이다. 기억의 공간들이 여지없이 파괴됨으로써 부산이 추상적인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는 기왕의 지적들은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어김없이 확인되었다. 기억할 공간이 없다면 지나간 시간도 무화된다. 우리 인간이 기억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면 공간과 같이 시간이 사라지는 모습은 안타까움 이상의 마음을 갖게 한다. 물론 『뉴욕의 역사』를 쓴 프랑수아 베유의 말처럼 대도시의 역사는 썼다 지우고 지금 현재에도 다시 써넣는 양피지 같은 역사일 수밖에 없겠지만 시간을 간직한 공간이나 건축물까지 헐면서 역사가 부재하는 도시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갑상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사진작품을 출품한 소설가 조갑상은 도시의 변모를 파괴라고 일축하고 있다. 공간의 변모에 의해 기억의 시간이 무화될 것이라는 역사성에 대한 경고와 우려를 보여준다. 공적이고 역사적인 도심건물의 변모에 비한다면, 골목의 변모는 사적인 특색이 비교적 강하며 주거를 중심으로 일터와 쉼터로서 반복하는 일상사를 담고 있다. 또한 더운물 속, 몇 마리의 미꾸라지가 차가운 두부 속을 내둘러 다닌 흔적처럼 골목길은 삶을 향한 영유와 기능성의 미로를 꾸밈없이 복잡하고 어지럽게 보여 주고 있는 솔직하기 싫은 솔직함이 배여 있는 곳이다. 두부 속의 미꾸라지는 결국 누군가의 계획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 계획자는 특별한 즐거움을 맛보겠지만, 남루하기 그지없는 골목에서의 삶은 일상사의 지루한 대항과 좌절과 설득과 언젠가 차원을 달리하여 드러날 현실을 꿈꾸며 살고 있는 것이다.
도규남의 사진은 그 지루한 반복의 생명성을 어느 봄날에 터져 나오는 나무의 새순과 꽃송이로 보여주고 있다. 밑둥 없이 처리한 골목 속 화단에 자리한 생명의 이미지는 뒤편의 조잡한 녹슨 못 자국에 의하여 상호 간의 불안한 떨림을 잔잔히 전해준다. 그에 비하면 생식의 본능적인 장면을 담은 박재열의 작업은 관람자들에게 우물에 빠진 돼지처럼 놀람과 웃음으로 자신을 반추하게 한다. 도대체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는 무슨 말 못한 사연들이 만들어지는 걸까? 박재열은 이 은밀함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이 걷음은 그가 바라보는 당당한 희망이다. 마음을 조이면서 바라본 그의 창문 앞에서 확실히 들통이 난 장면인 것이다. 골목의 좁은 공간에서 비롯된 원하지 않는 소통이 대부분이지만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소극적인 담벼락의 소통에 주목하거나, 골목에 사는 사람들에게 작은 소통을 시도해보고 있다. 어찌 됐든 골목에서의 소통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불량주택 때문에 피치 못하게 생긴 업보지만 다른 측면으론 인간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갖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말 골목은 우리가 지켜나갈 문화요 문화재가 아닐는지 골목이 당당해져야 도시가 살아날 것 같은 느낌은 그저 스치는 나만의 상념인가?
서현숙은 담벼락에 그려진 낙서를 재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담벼락을 이용한 낙서를 소통으로 보고 검열 없는 작품들의 흔적을 익살과 정겨움을 더하여 음미하며 과거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 영상 <2006 추억의 골목길을 거닐다>에 등장하는 소통은 직접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면서 《도시와 골목》전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다. 광고지를 담벼락이나 전봇대 또는 가게의 유리창에 붙이기도 하고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무던한 대상에 대한 소극적인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와 골목》전을 보며 일체와 주체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주제가 광범위하기도 하고 대상이 대립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도시와 골목은 분리되지 않는 동전의 양면으로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체란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규정이다. 누구든 자기규정에 충실하고자 외부와 대립하거나 협조한다. 현재 항구도시 부산 속 골목은 주체성을, 새로운 주체성을, 확장된 주체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변화하는 주체성에 대한 문제이며 또한 주체성의 담지자인 나에 대한 확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발 딛고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포함한 모든 영역이 나로서 또는 주체의 담지자로서 확대하여 나간다면, 공동체로서의 일체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를 종으로 획으로 사방에 팔방으로 더욱 확대하면 나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지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좀 관념적이긴 하지만 나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지경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또는 도시 속 한 부분인 골목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아일체를 꿈꾸며 주체를 다시금 상정하긴 어려운 것일까? 부산의 골목을 구석구석 좀 더 쏘다니며 곰곰이 생각해 봄직하다. - 배인석(화가/민미협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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