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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소수자의 인권, 상품과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농업과 문화예술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1.

<함께가는 예술인 >겨울호

소수자의 인권, 상품과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농업과 문화예술

                                     배 인석((사)민족미술인협회 사무처장)

                                             kkarak-2000@hanmail.net

1.

아시안 게임이 한창인 요즘에, 난 T.V를 별로보지 않을뿐더러 더구나 아시안게임 자체에도  별 관심이 없다. 월드컵이다 뭐다 하면서 요즘 너무 세계적으로 푹 빠져 놀았는지? 한 대륙에서 벌어지는 아시안게임이 꼭 예전의 전국체전을 보는 것도 같고 금메달 하면서 어쩌다 들리는 아나운서의 격양된 목소리는 왠지 억지 선동을 당하는 듯 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우연히 T.V를 보는 사람들 옆에 있는 컴퓨터를 쓰는 바람에 검색을 대신하여 알게 된 도하와 카타르는 잠시 나에게 딴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이란 큰놈과 작은놈의 행복 치에 대한 막연한 비교요 전체와 개별에 대해 스쳐가는 단상이었다. 요의 유발은 카타르가 아라비아반도에서도 너무 작은 면적의 국가이고, 또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강원도만한 면적에 62만 인구의 아주 작은 나라지만 GDP 174억 달러에 1인당 GDP가 2만 8천 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전체는 작지만 개별의 비교적 많은 분배량은 도시국가나 초미니 공화국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긍정적으로 달리하게 된 것이다. 단지 큰놈들이 건드리지만 않는다면야, 바로 소수자의 인권과 작은 나라의 주권에 대한 문제에 다다른 것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지배와 규칙을 따라야 온전히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양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고대 그리스는 그 전성기에도 거대한 이집트제국에 비하면 오히려 그들은 변방의 보잘 것 없는 국가와 문화권에 지나지 않았었다. 당시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인 플라톤만 하더라도 이집트제국의 문화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리스인들의 행동을 맹렬히 비난하며 그리스인의 독자적인 문자를 거부하고 선진국인 이집트의 문자와 문화를 계속 쓰고 받아드리기를 역설했을 정도이다. 또한,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18세기 말까지 지구상의 독립국이란 겨우 22개 정도 밖에 존재하지 않았을 정도로 나머지는 제국에 속한 주변국이나 법과 제도, 주권이 바르게 성립되지 않은 올바른 나라 이전의 모습으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인류의 개별적인 공동체는 20세기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제국 령으로 강제로 합병되고 분화된 결과 현재는 220여 개 가량의 독립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분리된 21세기의 첫 독립국인 동티모르를 보더라도 앞으로 독립국은 계속 늘어날 처지에 있으며 그 규모 또한 작은 나라를 취하게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독립하며 자주권을 모색하고 있는 추세인 오늘날, 한 나라 안에서 다른 인종과 성, 언어, 연령, 이주자, 종교, 계급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 인권을 보장하는 운동은 아마 자연스러운 인류사의 흐름이며, 부당한 강대국에 대항하는 국지적인 연대운동일 것이다. 바야흐로 인류는 새로운 삶의 모색과 더불어 그에 따른 소수자의 독립과 개별적 독자성을 획득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부산 민미협의 주최로 개최된《일상의 억압과 소수자의 인권展》은 오늘날 역사성의 의미가 다분히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전시는 그간의 부산 민미협의 전시과정으로 보더라도 남다른 면의 시도와 노력을 하면서 추진되었던 것 같다. 이는 공동 전시추진위원의 운영과 워크숍의 도입, 관련인권 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시각 물을 수용하였으며, 젊은 세대들을 위한 참여의 자리를 터놓았을 뿐 더러 과거에 진행되었거나 현재에 진행형인 반 인권적인 사례의 작품을 꺼내어 공유의 장으로 전시장이 활용된 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작고 적은 개별적인 발언들이 인권이란 범주로 묶이는 다양한 백화점식 전시였던 것이다. 지난 9월에 개최된 터이라 전시를 소개하는 것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일상의 억압과 소수자의 인권展》은 그 기획과 성과에 힘입어 올 12월 같은 제목으로 경기문화재단과 경기 민예총의 후원과 주최로(12/23-12/28 경기도 문화의 전당)  기존 부산전의 기획을 수용하고, 참여 작품 20여 점을 포함하여 수원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추가하여 새롭게 개최될 예정에 있으니 앞으로 인권 전에 대한 시각예술의 다양한 지역별 발언들을 관심 있게 바라봄 직하다.


2

2006년은 크고 작은 사회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그만큼 예술가들의 활동들도 바쁜 한 해였다. 공교롭게도 이런 문제 야기의 뒤편에는 미국이 매번 개입되어 있으니 과연 우연한 결과인지 당연한 드러남인지 우리는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인 것 같다. 전략적 유연성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 내 평택 미군기지의 이전과 확장, 우리 정부 스스로 갑자기 끄집어내어 급속하게 추진하는 한. 미 자유무역협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중 경제적인 분야인 자유 무역협정은 체감 온도로 보나 그 규모나 분야로 보나, 느끼는 살벌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나라의 온 민중이 협상의 제고를 위해 길거리로 나서고, 머나먼 미국원정 시위 길을 마다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한 나라의 기초적인 생존과 창조의 중요 단위인 농업과 문화예술은 그 존폐의 갈림길에 같이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세계 154개국이 회원으로 있는 유네스코의 회원국 중 단, 2나라(미국, 이스라엘)가 반대하고 152개국이 찬성하여 통과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은 문화는 교역이 아닌 교류의 대상이라는 함축된 말로 잘 표현되고 있다. 이완 다르지만 더불어 한 나라의 농업은 그 나라의 기초 생존을 좌우지하는 분야임으로 예로부터 식량의 생산과 확보가 국력과 태평성대의 기본 초석임은 다시 확인하지 않더라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의 농업종사 인구는 현재 350만 정도로 몰라보게 줄어들었으며, 고향을 등진 농촌의 인력은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빈민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는 반복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언제쯤 우리는 농어촌의 들녘과 어장으로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발길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일까? 육체를 유지하는 기초양식인 농사짓는 일과 정신을 유지하는 문화예술 활동이 쌍방 간 고통의 지경에 놓였으니 농민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민란을 꿈꾸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싶다. 민란에 치안의 법과 공공의 안녕이란 식상한 대응의 구실이 타당이나 하겠는가?

지난 11월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로비에서 열린 《2006 농민사랑 문화예술展》의 한, 미 FTA 반대 예술 포스터 전(展)은 농민과 미술가들의 일치된 발언을 잘 보여준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는 <농어업회생을 위한 국회의원연구모임>과 <전국농민회총연맹><민족미술인협회>등이 주최한 작품전으로 20여 명의 미술가들로 이루어진 20점의 인쇄된 포스터로 구성되어졌다. 다량으로 인쇄된 작품들은 다시 전국의 농, 어촌의 100곳에 배포되어 각자의 실정에 맞게 동시 전시되거나, 다양하게 선전물이나 이미지 물에 응용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용도에 한하여 저작권의 침해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새 해에는 사람과 밥과 예술의 천하대본이 바로 서길 기원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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