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모집:
진보무대는 연극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있는 단원을 모집합니다. 극단의 문예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과감히 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진보무대는 창단작품으로
정치연극 <누가 민중을 말하는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단원자격:
(1) 연기와 춤(무용), 그리고 노래에 소질이 있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2) 노동문예, 진보문예활동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 접수방법:
(1) 진보무대 홈피에 회원 등록하여 의사표시를 하면 관리자가 연락합니다.
(2) 단원이 되고자 하는 분들은 연락처를 반드시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3) 진보무대의 회원이나 단원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연락처와 신상에 관한
기록은 관리자에게만 공개될 뿐, 타인에게는 절대로 공개되지 않습니다.
# 모집분야:
(1) 연기부
(2) 연출부
(3) 작가부
# 사무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 76-1번지 (지하1층 5호)
# 전화: (02) 332-5875, FAX: (02) 332-7196, HP: 0117893536
# 홈피주소: http://www.jinbomude.com 입니다.
# 배우와 스탭 섭외 그리고 기획, 극장대관
(1) 소극장: 아주 작은 극장은 곤란할 것 같다.
(2) 배우: 성대모사가 가능한 배우, 1인 다역을 소화해내야 한다.
(3) 스탭: 연출, 음악, 미술(무대장치 포함), 안무, 의상(소품, 분장)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제작, 기획: 진보무대
연출 :
작 : 전인산
음악(노래): 모든 노래의 담당 및 배경음악까지를 총괄하는 사람
안무(군무, 독무): 전문춤패와 민족극 배우로 구성(5~7명)
미술(무대): 무대셋트, 한반도기. 민중들 그림
의상(소품, 분장): 각 장면에 맞는 의상과 소품을 총괄하는 사람
사진, 비디오: 전승희
홈피제작: 김용범
# 작품소개: 남한의 근현대사를 연극 한 편에 담았습니다.
# 극단 <진보무대> 창단작 <누가 민중을 말하는가>
[장면1] : 일제시대 항일투쟁가들의 삶과 죽음 (독백):
연극을 여는 장면으로 조선의 항일, 독립운동에는 좌나 우가 따로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며, 또한 당시 남과 북의 최고책임자들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정적들을 제거하는 등, 그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그리고자 하였다.
[장면2] : 이승만대통령 집무실 (우남과 만송의 대화):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단독으로 제헌국회 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의원들의 투표에 의해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는 미국과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국제정세에도 밝은 편이었으나 남한에서 정치적 기반은 취약했다. 그래서그런지 정권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는 그의 정치철학, 인사관리,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을 담고자 하였다.
[장면3] : 한국전쟁의 상황묘사 (미,소,중,일의 가면극):
북한은 남한에게 미제국주의를,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남한은 북한에게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는 빨갱이 집단이라고 공격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극과 극이 충돌할 뿐, 그 문제를 풀려고 하지를 않는다. 아니 풀려고 노력을 했던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 암살당했다. 그래서 남과 북의 전쟁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유유자적 즐기고 있는 주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한민족은 어찌 처신해야 하는가.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장면4] : 전쟁중 임시수도 부산 (대통령 집무실):
남북이 전쟁중임에도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생각만 있을 뿐, 국민들의 고달픈 삶를 돌보기는 커녕 권력자의 등에 바짝 기대어 아부를 떠는 사람들이 치안을 맡고 있었다. 대통령 자신 또한 정권연장에 대한 생각이 주요 관심사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을 했었던 모양이다. 북한이 미국을 넘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2007년 오늘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장면5] : 국민당의 기자회견장 (자유당의 반민주행위):
6.25 전쟁중에 발생한 경찰과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마땅히 물러나야 했다. 그것이 그때의 민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죄가 없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고, 간첩으로 둔갑을 시켰다. 국회도 강제로 무력화시켰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정권을 연장시켰다. 역사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장면6] : 조봉암의 독백 (자유당 정권의 몰락예고):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은 58년 제 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조작한 음모였다. 동시에 평화통일론에 대한 탄압이었다. 1959년 7월 31일 죽산은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뒤로 하고 쓸쓸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역사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장면7] : 이기붕과 사람들 (댄스홀의 풍경):
1960년 4,19는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 선거에서 출발했다. 자유당은 3,15 선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선거에 교사들과 공무원을 동원했으며, 또한 정치깡패 조직인 반공청년단을 급조하여 정치테러를 자행했으며,또한 투표함까지도 바꿔치기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은 자유당과 이승만 정권의 하야를 외치며 경무대로 향했다. 4,19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의거이며 혁명이었다.
[장면8] : 박정희 소장과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 (상황극):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소장으로 군사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중장으로 승진한다. 7개월 후에 대장으로 승진한다. 그는 스스로 혁명공약으로 약속했던 민정이양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자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윤보선 후보를 15만 6천 28표의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윤보선 후보측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을 하였지만 이미 쿠테타 세력이 모든 관리를 해 온 선거인터라 굴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뽑았으며, 최소한의 형식은 갖추어 대한민국의 5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63년 12월 17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무려 16년간 절대권력자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국민들 위에 군림하였다.
[장면9] :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 (노래와 안무극):
박정희 대통령은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조국근대화 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했으며, 경제인들과 함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여 전국을 1일 생활권 시대로 바꾸어 놓았다. 고속도로의 건설은 한국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던 해 연간 수출액이 5천만 달러를 넘었고, 64년에는 1억 달러를 달성했고, 1970년에 10억 달러, 1977년에는 1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했다. 1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가 되는데 서독은 11년, 일본은 16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7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 경제성장의 속도가 얼마나 빨랐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인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또한 새마을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은 우리 역사는 기록을 할 것이다. 그러나,...
[장면10] : 인권유린과 노동자의 희생 (노래와 안무극):
우리가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할때 그의 정치적 행보를 짚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정권에 반대했던 사람은 하나같이 잔인하게 다루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없었으며, 잘잘못을 떠나 복종만을 강요하는 절대 독재자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경제발전이라는 열매 뒤에 열악한 근무조건과 힘겹게 싸우며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 하고 고생을 했던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있었다. 이것 또한 역사는 잊지 않을 것이다. 1970년 11월 13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장면11] : 유신독재와 그 자신의 죽음 (상황극):
연극속에서 김재규 중정부장이 하는 독백을 그대로 싣는다. 김재규 중정부장: (박 대통령을 겨누고 있던 권총을 내리며) 각하. 각하라고 부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오일육 이후 각하가 대통령이 되기 전, 피는 그리 많이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63년 대통령이 되신 다음부터 입니다. 67년 까지 1번 하고, 71년 까지 2번만 했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 헌법이 그랬습니다. 1971년 12월, 각하는 선거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선 개헌을 통해 임기를 75년 까지 연장을 했습니다. 국민들이 그냥 있을리 만무했으며, 재야인사들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각하께서는 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강압적으로 헌정을 중단시켰습니다. 그 후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 12월 27일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또 다시 권좌에 올랐습니다. 각하가 총재로 있던 공화당까지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차지철이와 같은 모리배들에게 둘러쌓여 옳은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각하를 모시면서 참 많은 것을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 전체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이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하. 유신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오직 각하 한 분만을 위한 체제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더 이상의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각하와 이별을 하고자 합니다. 각하와 제가 오늘 이렇게 이별을 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발전해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권총을 다시 박 대통령에게 겨누며) 각하. 이제 그만 가셔야 될 시간입니다. 각하도 많이 힘이 들어 보이십니다. 이제는 편히 쉬십시요. 다음 생애에서도 제가 각하를 모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각하. 먼저 가 계십시요. 머지않아 저도 곧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각하와 저에 관한 모든 것은 훗날 역사가 평가를 할 것입니다. (박 대통령에게 목례를 한 뒤 권총을 왼손으로 장전을 한다) .암전. 암전된 상태에서 탕탕탕! 권총소리만 관객들의 귓가에 울려퍼진다.
[장면12] : 전두환 소장과 전두환 대통령의 등장 (상황극):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서거하자, 전두환은 치밀하게 쿠테타를 준비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는 1980년 5월 17일에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와 함께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의한 국회해산, 국가보위부의 설립을 건의하고 최규하 대통령을 압박한다. 12.12사태로 쿠테타에 성공하여 1980년 5.17 계엄확대를 통해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1980년 8월 1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보궐선거를 통하여 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총과 무력으로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면13] : 광주민중항쟁의 상황 (군무와 독무):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는데도 민주화는 진척되지 않고, 또다른 쿠테타 세력인 전두환이 실권을 잡자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1980년 5월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다. 그러나 사회 혼란을 빌미로 정권을 장악하려는 전두환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시민과 학생들을 탄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신군부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해 시위를 자제하는 성숙함을 보인다. 이에 난처해진 신군부는 호남을 의도적으로 자극하여 김대중을 체포하고, 과잉진압으로 무장폭력을 유도하고 광주에 군대를 파견한다. 광주에 대한 군인들의 투입은 광주민중항쟁을 불러왔고, 그 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야 비로서 전두환은 대한민국의 통치자가 되었던 것이다.
[장면14] :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노래와 안무극):
전두환 정권이 끝나갈 무렵인 1987년 1월 14일 경찰의 고문에 의해 죽은 박종철 사건은 정치권의 직선제 개헌과 맞물림이면서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노동자와 학생들의 참여를 넘어 전체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 올랐고, 급기야 전두환 정권은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사법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얼마 후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는 6,29 선언을 통하여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다른 민주화 조치도 취하게 된다. 6,29 선언이 발표되자 그동안 억눌려왔던 민중들의 민주화 요구는 더욱 커졌으며, 노동자들은 인간선언을 하고 어용노조를 밀어내어 민주노조를 탄생시킨다. 그것이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인 것이다.
[장면15] : 노태우,김종필,김영삼의 3당합당 (정치적 계산):
1990년 1월 22일 대구, 경북의 노태우 민정당 총재, 충청도의 김종필 공화당 총재, 부산, 경남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3당 합당을 통해 전라도의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를 고립시켜 정권을 획득했다. 지금까지도 3당 합당을 두고 구국의 결단이니, 야합이니 말이 많다.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해서 정권을 획득했던 것이다. 문민정부가 끝나고 탄생한 국민의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DJP연합, 다시말해 충청도와 전라도 연합을 통해서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면16] : 3김시대의 시작과 끝 (과거와 현재와 미래):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을 한 자리에 등장시켜 그들의 정치역정을 살펴보고, 또한 세 사람이 남한의 현대사에 끼쳤던 공적과 허물을 밝히고자 한다.
[장면17] : 참여정부의 노선과 보수정당들의 실체 (가면극):
왜곡되어 있는 정치구조를 낱낱이 파헤쳐 관객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자 한다. 참여정부와 한나라당, 국민중심당, 중도통합민주당, 열린우리당,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준)의 보수본색을 정확히 드러낼 것이다. 또한 보수정치의 다양한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이다.
[장면18] : 누가 민중들의 삶과 희망을 말하는가:
연극의 마지막 장면으로 2007년 현재 힘들게, 그러나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근로대중)들의 육성을 통해 우리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한미FTA 문제, 부동산 문제, 공교육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출연: 성대모사가 가능한 배우. 1인 다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민족극 배우)
# 장면별 등장인물 #
[장면 1]: 김원봉, 김구, 이승만, 김일성, 여운형 (총 5명)
[장면 2]: 이승만, 이기붕 (총 2명)
[장면 3]: 남의 군인 2, 북의 군인 2, 미군, 소련군, 중공군, 일본인 각 1명 (총 8명)
[장면 4]: 이승만, 이기붕, 김창룡, 원용덕 (총 4명)
[장면 5]: 여 대변인 1, 당직자 2, 정치깡패 3, 김창룡, 경찰 2 (총 9명)
[장면 6]: 조봉암 (1명)
[장면 7]: 이기붕, 최인규, 임화수, 댄서 남 2, 여 2, 아나운서 1, 여기자 1 (총 9명)
[장면 8]: 박정희, 차지철, 군인 2, 윤보선, 장면 (총 6명)
[장면 9]: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가수 1, 무용수 5 (총 10명)
[장면 10]: 중정요인 3, 피억압자 1, 무용수 5, 전태일, 가수 2 ( 총 11명)
[장면 11]: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 여배우 1, 여가수 1 (총 5명)
[장면 12]: 최규하, 전두환,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총 5명)
[장면 13]: 군인 5~7명, 민중 5~7, 무용수 1 (총 11~15명)
[장면 14]: 가수 1, 무용수 5, 전두환, 노태우 (총 8명)
[장면 15]: 노태우, 비서실장, 김종필, 김영삼 (총 4명)
[장면 16]: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 (총 3명)
[장면 17]: 노무현 대통령(현직), 수구보수 1, 중도보수 1, 합리적 보수 1, 진보 1 (총 5명)
[장면 18]: 장면 1에서 ~ 장면 17에 나오는 모든 배우와 스탭, 가수 1명,
# 작품소개-누가 민중을 말하는가
(1) 일제로부터 조국의 해방과 남과 북, 그리고 좌와 우의 갈등과 대립
-약산 김원봉의 독백
-백범 김구의 독백
-우남 이승만의 독백
-성주 김일성의 독백
-몽양 여운형의 독백
(2)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교훈에 관한 언급
(3) 이승만 정권의 흥망: 죽산 조봉암의 독백
(4) 박정희 정권의 명암: 경제개발과 독재, 그리고 인권의 문제
(5)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폭압과 정경유착
(6) 노태우-운정(김종필)-거산(김영삼): 3당합당의 실체-문민정부 탄생
(7) 후광(김대중)-운정(김종필): DJP연합의 실체-국민의 정부 탄생
(8) 참여정부의 탄생과 현재까지를 정치적 관점에서 민주주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민중(노동자, 농민, 도시서민)의 삶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9) 너무나 긴 시간을 한편의 연극 속에 담아야함으로 시간의 압축, 사건의 축약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10) 연극은 대사와 춤(무용),음악으로 구성을 해야 한편의 연극으로 만들어질 것 같다.
(11) 자세한 내용은 작업실의 대본란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12) 노동문예, 진보문예활동가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연합공연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감히 품어봅니다. 선배님, 후배님들과 상의해보아야겠다.
'민미협 아카이빙 > 2000년~2009년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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