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유홍준과 유인촌
<동아일보> 2008.02.18.
300만 부가 팔린 유홍준 씨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본격 문화재 대중서 1호다. 이후 나온 또 다른 책으로 오주석 씨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잘 살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유 씨는 서울대 미학과, 오 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 선후배 사이다. 둘 다 미술사학자로서 걷는 길은 비슷했지만 스타일은 달랐다. 유 씨는 대중성이, 오 씨는 전문성이 강했다.
선후배 관계가 엄한 좁은 미술사학계에서 두 사람이 부딪친 ‘사건’이 있었다. 2003년 3월 유 씨가 새 국립박물관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평소 수줍어하는 성품의 오 씨가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오 씨는 유 씨에 대해 “세간의 유명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분이 아니다. 전서와 예서(한자의 글씨체)도 구별하지 못한다. 유 씨의 책 ‘화인열전’과 ‘완당평전’ 서평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틀린 곳이 너무 많아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씨 같은 정치적인 사람이 박물관 행정을 맡으면 행정이 ‘정치’가 된다”고 경고했다. 결국 새 박물관장에는 이건무 박물관학예연구실장이 승진 발령됐다.
유 씨는 1년 6개월 뒤 문화재청장으로 재기했다. 오 씨는 백혈병으로 유 청장 취임 5개월 뒤 49세로 요절한다. 유 씨는 문화재청장이 된 뒤 끊임없는 정치적 행보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오 씨의 ‘정치적인 사람’에 대한 예견이 맞았다고 해야 할까.
자기 책에 왜곡과 표절이 많다고 후배에게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유 씨는 국민 세금인 예산에서 돈을 받고 자기 책을 파는 대담함도 보였다. 숭례문이 타들어 가던 시각 외유를 즐기고 있었던 그는 항공료 부담을 항공사에 지운 데 대해 ‘국고 절약’이라는 해괴한 변명을 했다. 정말 국고 절약을 생각했다면 출장경비 1600만 원을 국민 혈세에서 타내 ‘휴가성 출장’을 갈 일이 아니었다.
책, 영화, 노래, 미술작품 등으로 유명해진 사람들 중에는 그 지명도를 발판삼아 권력과 정치에 기웃대는 ‘문화 정치꾼’들이 있다. 이런 문화 정치꾼들이 위험한 것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행정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노출’의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옳고 그른 것보다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을까’를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체질을 갖고 권력에 편입되다 보니 ‘구설수라도 좋다. 대중이여, 나를 잊지만 말아다오’ 하는 식의 언동을 서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영화감독이 문화관광부 첫 장관이 되더니 이명박 정부에서는 유명 탤런트 출신인 유인촌 씨가 문화부 첫 수장이 될 모양이다. 문화부 장관은 정부의 ‘얼굴마담’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 전문적인 지식으로 문화 행정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전문가여야 한다. 겉은 화려하지만 일은 엉망인 ‘화려한 아마추어’들에게 국민은 지쳤다. 새 정부의 문화부 장관만은 노 정부의 첫 문화부 장관이나 마지막 문화재청장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화는 국민정신의 총합이다. 문화행정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이다. 새 문화부 장관이 이 부분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허문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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