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한국 미술 전망'
글쓴이: kkarak 조회수 : 808.02.12 08:25 http://cafe.daum.net/busanartmin/Tb3/2005 * 월간 <디자인 정글> 2008년 신년호에 쓴 '2008 한국 미술 전망'이다. 아니 그게 청탁 주제였다. 내가 따로 제목을 달아 보내진 않았다. 신년호에 어울리는 주제이지만 매해 변화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은 미술계를 달리 전망한다는 과제부터가 내게 무리였기에 지난 해말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한국현대미술 2007 - 현황과 전망'(엮인글)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2007년을 정리하는 선에서 원고를 정리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2008 한국 미술판의 향배를 전망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보니 알것도 모를 것도 같다. 때마침 지난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주최로 열린 ‘2007 한국현대미술계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 토론회에 비평 부문으로 참석한 터라 분야별 전문가들의 견해를 경청할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패널 전부가 연말 결산하듯 정리된 2007년 이슈에 관해서는 요약과 논평을 내놓았지만, 1년 앞을 내다보는 데에는 주저하고 마다했다. 혜안이 결여 되어서일까? 그럴지도 모르나 미술계 생리란 것이 정치 사회의 대 지각 변동이 전제되지 않는 한, 매해 고만고만한 편차만이 관측되는 편이라 ‘예측’이나 ‘전망’이니 하는 표현과 등가의 논평을 내놓기가 영 어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2007년 주요 이슈의 검토는 곧 올해의 방향성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다는 논리가 될 게다.
2007년 한국 미술계를 요약한 양대 주요어는 시장과 사건이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미술계 인사가 연루된 비예술적 사건들이 최소 세 번 이상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불명예스럽게도 이 모두 미학의 아닌 윤리학의 영역에서 성토된 사건이다. 대중 인지도가 높은 미술인 한젬마 씨는 그녀의 대표 저술 4권 모두에 대필 의혹을 받았고, 대필 작가들의 증언과 출판 관계자의 시인이 잇따르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의혹이 아닌 사실이란 점에 중론이 모아졌다. 대필 사건은 2006년 12월 터졌지만, 2007년 초까지 문화예술계와 출판계의 도덕 지수에 흠집을 냈다. 더욱이 이미 바닥이 나버린 자정 및 검증 능력의 참혹한 실태를 보여준 점에서, 미술 출판과 대중 예술인의 허상이 파헤쳐진 재앙이었다. 그해 7월 청와대 참모까지 연루된 신정아씨 학위 조작 사건은 10년 이상 전문가 행세하며 광주비엔날레 예술 감독에 임명되는 등 객관적 자질 검증보다 주먹구구식 인맥정치가 판을 치는 예술계의 검증시스템의 허상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그리고 결국 연말 삼성 비자금 사건의 한 부분으로 다시금 미술계 인사가 언가의 주목을 받았다. 12월말 검찰 발표에 따르면 불법 비자금 가운데 1천억원 이상이 미술품 구매에 사용되었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한 미술잡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인 삼성미술관 홍라희 관장은 3년 연속 ‘한국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인사’ 1위에 선정되었다. 그렇다면 3-4개의 불명예스런 사건들로 토막이 난 지난해 미술계의 주요 현안은 무엇이었을까? 앞의 이슈들이 사건이었다면 또 다른 이슈는 시장이다. 업계에서는 동시대 한국 미술의 주도권이 더는 불세출의 작가나, 천재적 비평가 및 기획자가 아닌, 미술 시장의 손에 쥐어있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미술 애호는 곧 미술품 투자와 동의어처럼 간주되었다. 명화 감상에 치중한 말랑말랑한 교양서보다 작품 구매와 투자의 노하우를 일러주는 미술대중서가 서점가에 쏟아져 나온 때도 2005-07년에 집중되었다. 시장의 활성화는 마치 미술계 전체의 분홍빛 소식 같은 환청 효과를 가져왔지만, 내막은 달랐다. 최소한 비평가의 처지에서 볼 때 폐단이 적지 않았다. 시장이 선호하는 팬시상품 같이 예쁘고 아이디어가 참신한 그림이 화단에서 환영을 받았고, 비주류 실험의 무대를 자임했던 대안공간은 주류 미술계로 진출하는 등용문 역할로 변질된 지 꽤 됐다.
때문에 창작 집단의 성향은 획일화되었고, 이러한 작품의 천편일률성과 시장가치를 우선하는 화단의 한목소리 앞에서 비평은 다른 길로 새는 이야기꺼리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삼성 비자금 파문 폭로된 지난 11월부터 시장이 위축되었다지만 08년에도 창작과 비평의 운신 폭은 시장 선호도에 좌우될 공산이 여전히 크다. 그러면 무엇이 시장 선호도를 결정했을까? 미술 시장의 경합에서 살아남는 성공 요인은 5가지로 압축된다. 극사실주의 회화, 특이한 재료와 아이디어로 승부를 건 작품, 수공적 노동집약성이 돋보이는 경우, 초대형 포맷의 사진, 마지막으로 K-POP이라 불리는 팝아트의 선전이다. 지난해 한화 7억7,000만원에 낙찰돼 홍콩 크리스티 경매사상 한국작품 최고가를 경신한 홍경택의 <연필Ⅰ>은 화면 위로 총천연색의 연필들이 기하학적이고 촘촘히 들어차 초현실주의 스타일을 구사하지만 흔히 팝아트로 분류된다. 홍경택 이전 크리스트 한국 최고가를 기록한 김동유 역시 마릴린 먼로, 마오 주석, 박정희 전 대통령, 김일성 주석 등 대중 스타를 화면 위로 불러들인 팝아트다. 2007년은 아시아 미술시장은 팝아트의 몫이었다. 팝아트 자체를 대표해 온 앤디 워홀 사후 20주기를 맞아 ‘추모를 표방 한’ 앤디 워홀 회고전의 연쇄 개최가 국내 화랑가를 휩쓸었고, 그 정점은 리움의 <앤디 워홀 팩토리전>으로 평일 1천 이상, 휴일에도 3천 관객이 다녀갈 정도로 한국인의 팝아트 선호 현상을 입장객의 산술적 수익률로 검증시켰다.
팝아트의 선전은 이미 2000년 초부터 화단에서 예견되어왔는데, 이미 블루칩 작가로 현재 미술시장을 선점한 한국 작가들의 대부분이 팝아트로 분류되는 만큼 올해 역시 이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제2의 예술의 전당’ 격으로 인식될 만큼 ‘블록버스터 전용관’의 입지를 다진 서울시립미술관은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을 시작으로, <빛의 화가 모네>전,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을 올 3월까지 이어가고 있다. 명실상부 ‘거장의 전당’으로 군림한 예술의 전당 역시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전을 시작으로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등 인지도가 높은 명작 서너 점을 얼굴 마담 격으로 내세워 유럽 예술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한국 관객들의 값비싼 기대감과 값싼 교양을 맞교환 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2008년 한 해 미술계의 한축을 이룰 것인데, 이는 비단 ‘장사 잘 되는 기획전’이라는 일차적 의미를 너머, 입장료 1만원 내외의 검증된 사후 거장의 전시를 미술전람회로 인식하는 일반 대중과 동시대 진행도에 관심을 두는 전문가 집단 사이의 양극화된 인식차를 보여주기에 시사점이 있다.
끝으로 2008 미술계의 쟁점은 문화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과도하게 올인하는 격년제 미술행사 비엔날레의 개최다(주요 비엔날레가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3개가 넘게 개최된다). 신정아씨 사건으로 이미 절반의 실패가 되어버린 제7회 광주비엔날레는 ‘특정한 주제적 틀 없이 진행’ 된단다. 2008년 예측 불가한 또 다른 관전거리는 이명박 정부하의 보수주의 문화예술들이 주도할 미술판의 우향우다. 10년만의 대반격이니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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