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시 명 : <제주 4․3 60주년 기념 4․3미술제 아카이브전 - 평화․동행>
○ 기 간 : 2008. 6. 20 ~ 2008. 7. 15(26일)
○ 전시개막 : 2008. 6. 20(금) 오후 6시
○ 장 소 : 평화공간 space*peace
○ 전시부문 : 전시포스터, 아트포스터, 10주년 자료집, 영상자료, 사진자료 등
○ 공동기획 : 평화공간space*peace, 탐라미술인협회
○ 주 최 : 탐라미술인협회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이사장 이해동)가 운영하는 평화공간space*peace에서 제주 4․3 60주년을 기념하는 아카이브 전시 <제주 4․3 60주년 기념 4․3미술제 아카이브전 - 평화․동행>을 개최한다. 1994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제주 4․3을 주제화한 탐라미술인협회(탐미협)의 4․3미술제는 올해로 15년을 맞이했다. 이들의 활동은 세계 미술사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예술가들의 창의적 아트워크(artworks)라 할 수 있어 주목된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의 활동자료들인 전시포스터와 아트포스터를 비롯해 10주년 자료집, 사진 및 영상다큐자료, 영상작품 등 60여점이 선보인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탐미협의 4․3미술 활동이 ‘밖-육지’에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화공간space*peace와 탐미협은 미술의 언어로 기록된 <4․3미술제>의 자료공유를 통해 영구평화를 향한 희망의 연대를 제시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하였다.
․ 왜 창의적 아트워크 인가?
탐미협 회원들은 작품제작을 위해 매 년 4․3워크숍과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담론의 주제를 돌출하고, 그 주제와 상관하는 현장을 찾아 작품구상을 구체화했다. ‘4․3’의 거대담론 안에서 미시적 주제로 접근하는 노력을 통해 보다 현장감있는(reality)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4․3 이후 세대로서 후체험의 경험은 직접적이며 직설적인 토로의 방식을 뛰어넘는 ‘승화’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미술사적으로도 이러한 경우는 많지 않다. 멕시코의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리베라, 오로츠코, 시케이로스와 피카소, 고야, 루쉰, 케테콜비츠 등의 예술가들이 있지만 집단적 활동은 아니었다.
․ 노암촘스키의 관심!
탐미협 회원인 고길천은 4․3미술제 10주년 자료집을 노암촘스키에게 보낸 바 있다. 촘스키는 이 책을 받은 후 이메일을 통해 제주 방문을 희망했으며, 기회가 되면 꼭 오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촘스키는 자신의 저서에서 1940년대 후반 한국에서 발생한 미군정의 만행을 밝히 바 있다.
“미군이 2차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 한국에 상륙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지방 정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항일운동이 있었고, 그들은 북한과 남한 전역에 지방정부, 인민위원회 등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남한에 진주하자, 그 모든 것을 해체하고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미국은 친일파 한국인을 행정 요원으로 이용했고, 사실 일본 경찰 제도를 그대로 복구하여 이미 있던 민간 제도들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그것은 남한에게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심한 충돌이 4~5년 동안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 노암 촘스키,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시대의 창, 2005), 99쪽.
․ 60여점의 자료들!
전시포스터와 아트포스터 30여점, 전시도록 20여점, 사진 및 영상자료, 영상작품 10여점 등이 출품되지만,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자료들이 전시된다. <4․3미술제> 15년 전시포스터는 그 자체로 그간의 활동을 집약해서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아트포스터는 올해 전시인 <개토開土>전에 출품된 작품을 석판화형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전시도록은 <4․3미술제>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정기적으로 활동해 온 탐미협 활동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자료에서도 4․3을 주제화한 작품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사진 및 영상자료는 현장답사와 워크숍 기록자료이며, 영상작품은 오석훈 작가가 제작한 것으로 4․3 희생자 명단을 스크롤 형식으로 끝없이 올라가도록 한 작품이다.
․ 4 ․ 3미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올해로 제주 4․3 60주년임에도 우린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뿐만 아니라 그 실체의 흔적들이, 그 아픔의 삶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아직 그들이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호흡할 수 있었기에 ‘4․3미술’은 가능했는지 모른다. 2007년, 역사는 다시 어둡고 음습한 곳에 버려진 주검을 발굴했다. 제주 정뜨르 공항의 개토(開土. 발굴)는 4․3을 살림의 역사로 쓰게 하는 전환의 방향타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4․3미술제 15주년을 맞아 예술가들이 찾아야 할 예술언어도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세대는 새로운 세대로 흘러야 하고, 그 기억은 새로운 언어로 쓰는 투쟁이 될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가 4․3에서 얻는 깨달음은 슬픔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 내 딛는 진보여야 한다. 4․3미술은 우리 민족이 겪는 ‘기억투쟁’의 한 사례라 할 것이다.
4․3의 빛은 반세기 가까이 군부독재 아래서 환하게 타오르지 못한 채 어둠에 갇혀 있었다. 오히려 살아남은 자들조차 연좌제에 걸려 독배를 마셔야 했다. 4․3을 기억하고,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운동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탐미협의 15년 활동은 그래서 ‘산 역사의 생명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제주라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를 회복시키고자 한 일련의 움직임을 뜻한다. 탐미협의 4․3미술은 4․3항쟁을 통해 그들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고 또한 그들 자신이 그들 스스로를 해방하는 진정한 자기회복, 창조적 주체회복운동이다. 4․3미술은 누구보다 먼저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기해방, 자기회복운동인 셈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맥점이라 할 수 있다. 4․3은 그동안 죽은 역사의 죽임운동이었다.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의 언어이자 상처였다. 현기영이 북촌리 학살사건을 소재로 쓴 「순이삼촌」을 통해 4․3을 알렸지만, 그 후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던 것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는 「순이삼촌」에서 “그 죄악은 30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 되어본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 김종길, 「제주 4․3, ‘기억투쟁’의 미술은 살아있다!」, 『아트인컬쳐』2008년 5월호, 161쪽.
※ 연락처
주진우 평화공간space*peace 기획실장 : 02-735-5811. 011-9490-4769
오석훈 탐미협 회장 : 016-690-3369
박경훈 탐미협 운영위원 : 011-698-1516
김종길 미술평론가. 평화공간space*peace운영위원 : 010-9865-1255
● 첨부 1 - <4․3 미술제> 연혁
제1회 4․3 미술제(1994) : <닫힌 가슴을 열며>
제2회 4․3 미술제(1995) : <넋이여 오라>
제3회 4․3 미술제(1996) : <4․3 그 되살림과 깨어남의 아름다움>
제4회 4․3 미술제(1997) : <자연․사람․역사>
제5회 4․3 미술제(1998) : <상극의 빗장을 열고 상생의 아름다움으로>
제6회 4․3 미술제(1999) : <보이지 않는 손, 보는 눈 - 4․3과 미국>
- 4․3 50주년 기념 4․3미술 작품집 『역사에 던진 아픔의 꽃묶음』발간
제7회 4․3 미술제(2000) : <역사가 서린 땅>
제8회 4․3 미술제(2001) : 제주 광주 미술 교류전 <한라와 무등-역사의 맥>
제9회 4․3 미술제(2002) :
제10회 4․3 미술제(2003) : <4․3미술 10년의 역사, 진실의 횃불 밝혀 평화의 바다로>
- 4․3미술제 10주년 4․3미술 전작도록 『4․3미술 10년의 역사, 진실의 횃불 밝혀 평화의 바다로』발간
제11회 4․3 미술제(2004) : <4·3이 나에게 무엇인가>
제12회 4․3 미술제(2005) : <동행>
제13회 4․3 미술제(2006) : <4․3의 혼을 지피다>
제14회 4․3 미술제(2007) : <다시 그 곳에 서서>
제15회 4․3 미술제(2008) : <개토開土>
탐미협 창립취지문
01. 우리는 왜 탐라미술인협의회를 창립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의 수평단면도는 진보의 시대인가? 야만의 시대인가? 이 시대 진보가 갖는 시대정신은? 우리 들 자본주의의 남한사회의 개인의 삶, 사회적 삶, 역사적 삶,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확장 가능한 삶의 모습들은 올바른 모 습인가? 예술가, 미술가, 작가라고 표현되어지는 우리들 각자의 예술의 유의미 또한 어떠한가? 그것은 진보를 향해 여려 있고 그러므로 그만큼 치열한 자기의식의 책임감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밤을 세워 고뇌하는 작가의 창작 내적, 외적문제 는 그리고 대중과 만나지는 유통관계의 문제 등등 중층적인 고민의 실타래가 결국 한두 명의 개인적 문제의식을 넘어서 그 동안 지역 내에서 고립적이든 조직적이든 이런 고민들은 약간의 편차를 가지면서도 문제의식의 공통적인 공감대가 젊 고 의욕 있는 작가들에게 보편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탐라미술인협의회(이하 탐미협)의 창립은 이러한 공감대와 공동체적 연대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02. 미술의 진정성 회복
미술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 또는 그 가치가 영혼을 지닌 개별 작가들의 창작활동의 모든 의미를 대치하는 전지전능 무소불위한 가치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상 예술에 대한 인간의 찬사는 단순한 육체노동이나 속된 물질적 욕망, 수준을 뛰어 넘는 고도의 인간 정신영역의 노동이라는 그리고 그것이 갖는 심오하며 지지한 태도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인간존재에 대한 노력이라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수많은 예술창작 특히 창작물 자체가 물질가치로 전화되는 인간존재에 대한 노력이라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수많은 예술창작 특히 창작물 자체가 물질가치로 전 화되는 장르라 할 수 있는 미술은 더욱이 이런 원래적 존경의 의미보다 자본의 시대 그 경박하고 음모 적인 돈의 논리, 출세의 놀리, 문화산업화의 논리에 의해 퇴색된 정도를 넘어서서 구제불가능의 지경에 있는 듯 하다. 일견 이제는 미술가 들이 그것에 대한 응전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우리들 자신이 그러한 일련의 징후 때문에 예 술의 본래적 의미를 회복하는 은전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위주의, 개인주의, 소영웅주의, 스타주의, 허위의식 등등의 나열 가능한 모든 마법 적인 유혹으로부터 진지한 예술의 역할과 미술의 기능 등에 대해 그 진정성을 회복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03. 삶과 (올바른 인간 삶) 밀착된 당대의 리얼리즘 미술
서구모더니즘미술 더 나아가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미술까지 그것이 지니는 인류 삶에 대한 책임 없음의 가치 평가는 차지하고라도 그들(서구)의 역사성 속에서 그 고민의 진지함과 인식의 표현적 실천을 수행한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조선조 말 풍속화 이후 단절과 질곡의 역사를 걸어온 이 땅의 미술, 더 가까이는 80년 5월 광주라는 역사의 구비와 70년대 이후 기형적 군부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진 모든 사람과 그 역사적 삶을 같이 한 민중미술운동 이후에도 그 기득권 적인 위세를 떨치고 있는 대량의 모더니즘미술의 주류는 이 땅의 역사와 평범한 삶을 사는 다수의 사람들에겐 여전히 막은 귀이고 바람벽이다. 남의 옷을 입고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그 대책 없는 서구추종주의 사이비 현대 (진정한 의미의 현대란 당대가 아닌가? 그런 대도 서구=현대라는 허위의식은 우리미술의 역사에서 그러한 비극의 재생산을 가능케 했고 그 철학 없음은 진보적 의지박약의 반증에 다름 아니라고 할 것이다.) 미술은 최근에는 다 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 예술과 인간사이의 진지한 고민 없는 유행에 사로잡혀 그것을 국산브랜드화 하는데 열을 올리 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자연을 위해 있는 것도 문화자본의 논리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닌 선대와 후대 사이를, 유한한 시 기의 당대를 사는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형상언어로 구현된, 그러므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대중적이며 그러한 대중들의 올바른 삶에 같이 하는 것 그것이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상식적인 사실이 재삼 강조되는 것은 무한한 예술창조의 원천이란 우리들 삶의 아수라장인 당대 민중들의 삶 속에서 얻어지는 것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답적인 향토주의나 독백자로서의 추상미술, 고가의 상품실험인 모더니즘, 그의 당대적 변종인 포스트모드니즘의 미술이 아니라 생생한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로 획일화되거나 정형화되지 않은 생생한 우리시대의 리얼리티를 그려내는 미술창작만이 인간에, 세계에 감동을 줄 것이며 또한 닫힌 화면과 닫힌 미술과 인간과의 소통에 책임을 질 것이며 문화산업 시장구주 내에서 고가의 상품 또는 일상에 불요한 자족적 상품으로서의 예술이 아닌 세계의 진보적 발전에 기여하는 영향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04. 민주적 화단 분위기 창출과 비평적 미술풍토의 확립
제주지역의 미술계의 문제점을 거칠게 지적해 본다면 그 문화 지형적 여건에서 기인하는바 지역의 협소함 과 그에 따른 화단규모의 소규모성과 단일 학부 출신의 인자 보급경로의 특수성 등으로 공개적이고 공공연한 미술계 내 부의 비판적 풍토의 여건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전업화가보다 주로 겸업 작가가 다수라는 점(현재까지는) 등에서 기인하는 작가의 창작에 대한 책임의식의 결여는 심지어 미술창작활동을 여가적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자기창작에 대해 목숨을 거는 장인(작가)정신, 미술의 공적역할(사회적 영향력) 등은 그 의미와 가치가 개인주의적 성향에 의해 심히 축소되어지며 진정한 작가의 부재는 진정한 예술의 부재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 도한 협소한 화단 규모와 길지 않은 미술계의 역사 즉 아직도 지역 화단 형성의 1등 공신들이 지연 학연에 의한 파워 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역시 지역 미술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기한 여러 요인들은 몇몇 소그룹 활동이나 단체의 경우도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특성의 경향성에 의해서 만나지기 보다는 창작물의 내용과 작가의 예술에 대한 인식차이를 논외로 한(설령 그러한 부분을 고민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크게 개별 그룹이나 단체를 차별화 시 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또한 미술계 내부의 발전적 분화의 수준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집단화가 이루어지고 이며 그러므로 그러한 소그룹활동 역시도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실천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러기에 그룹 내의 만남 의 중심 역시 지속적인 창작의 고민을 중심으로 만나진다기 보다는 전시를 위한 일회적 만남 또는 또래 집단적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진취적이고 성실한 미술의 발전은 욕심 할 수 없는 것이다. 덧붙여 지역 미술계의 비평적 풍토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거간의 지역내 미술계에서 미술비평이란 존재했는가? 라고 반문할 때 이 용어 자체가 상당히 생경한 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것은 제주지역미술 더 나아가 한국미술의 단층 그 역사적 연륜과도 관계되는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비평이란 게 원론적으로 개인적 창작물 또는 다른 경우의 창작물 을 그 작품의 역사적 의의 내용과 형식의 창조적 가치들을 대중과의 상호연관 속에서 객관적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평 가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데 그간 지역내 미술비평의 역사는 제대로운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보한 다기 보다는 일간 지 문화면의 소식기사 차원의 저널적 단평과 주례비평 또는 인상비평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역 내 전문교육기관인 대학의 경우도 변변한 전문과정 하나가 부재한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더욱 수준 있는 비평적 풍토의 창출을 더디게 만들고 있으며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론적 태도 역시 학부시절의 수준에서 크게 진일보하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논리적이며 공개적인 그러므로 민주주의적인 화단 풍토의 확립을 저해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역미술과 관련된 그 모든 올바른 문제제기와 반론도 인신공격 적으로 행해지는 경험을 지니게 된 바 없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탐미협의 건설은 특히 이러한 비민주적 비이성적 분위기를 쇄신하고 민주주의적 비평풍토를 확립하는 것 또한 자신의 과제로 하고 있다.
05. 자기정체성(Identity)을 갖는 제주지역미술의 위상과 역할의 창출- 미술창작활동의 새로운 실천을 위한 모색
현 시기 남한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적 중심은 센타의 기형적 비대화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서울중심주의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으로 이루어진 모든 가치체계를 극단으로 이분화 시키고 있다. 특히 미술의 경우 이러한 상황은 더욱 중증 적인데 즉, 서울=선진, 지역=후진, 서울=중앙, 지역=주변 등 이러한 느낌과 진단은 우리들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그렇다고 여기가 중앙이라고 모가지만 세우자는 논리는 아닙니다. 어느 국가 어느 사회든 중앙문화의 논리는 존재 하는 것이고 기실 그 나라의 한 시대를 기록케 하는 역사적인 일들은 모든 정보와 활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수도권에 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획일적 중앙/주변 의 논리는 오랜 군사문화적 전통과 특히 물마루 아래의 섬이라는 지정학적 전통에서 오는 제주지역 전래의 사고 틀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니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중앙의 모방과 중앙의 논리를 지역에 관철하는 것이 지역문화의 발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보편적인 시대정신은 같을 수 있지만 이의 실현이 그에 대한 답 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적인 미술 역시도 제주도라는 자생적 토대에 기인하는 진보적인 것일 때 곧 세계적인 것이라 는 명제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 해서 제주지역의 미술실천은 가장 독특한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중앙에 대해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에 대해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인가의 만나지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서 조화로운 창작실천을 이루 어 낼 수 있을 것이며 자본주의 고급상품 생산자나 자본주의 사회구주 내에서 익명의 등외 자로서의 미술가가 아닌 개인 과 개인 사회의 상호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연관을 지을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존재의의를 발견해 낼 수 있을 것 이다. 이러한 경우 자본주의 일반적 경향인 인간의 소외 더 나아가 예술과 인간의 소외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거머쥐는 중층적인 예술실천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탐라미술인협의회는 향후 위의 창립취지에 정리된 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성실히 활동할 것이며 또한 전문미술인 대중조직으로서 창작과 관련된 회원의 복지에도 조직적으로 모색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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