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전우회 사과하세욧!"
[기자의 눈]폭력과 예술의 관계 보여준 작은 퍼포먼스
2008-06-27 오후 4:54:36 [ 안태호 기자]
▲ 참전용사는 통곡하는데, 민주주의도 예술도 죽었다.
6월 27일 오후 후암동 고엽제전우회 사무실 앞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채 10명이 안되는 작가들이 사무실 앞에 몰려와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고엽제전우회가 어떤 단체인가. 툭하면 LPG가스통을 들고 시위에 나서 뭇 시민들을 공포와 황망함에 떨게만든 단체 아니었던가. 작가들은 고엽제전우회 사무실 맞은편 담벼락에 ‘비폭력’이라는 문구를 새겨넣고 파손된 작품을 내걸었다. 작가들의 손과 손에는 ‘고엽제전우회 작품파손 사과하세욧’이라는 문구가 나누어 들렸다. ‘사과하세욧’이라는 일견 장난스러우면서도 강경한 어휘는 비폭력의 의지를 구체화하는 상징처럼 보였다.
“비폭력, 비폭력” 요즘 연일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외침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집회현장에서는 폭력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수십만의 인파에 지레 겁을 먹은 탓일까. 공권력의 폭력은 살수차로 시민들을 밀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경이 여학생의 머리를 축구공 차듯 하는 만행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쇠고기 고시를 강행한 정부에 대한 분노에서 촉발되어 시민들의 시위가 과격해지는 모양을 띠고 있다.
왠지 방어적 폭력, 이란 말이 떠오른다. 80년대에는 흔하게 쓰였을 이 말이 지금 쓰이는게 무척 낯설지만, ‘당정청’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고시강행이라는 국가적 폭력을 휘두르는데 대한 최소한의 방어기제가 시민들 사이에서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폭력' 문구가 파손된 작품들과 나란이 걸렸다.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방어적 폭력이었을까. 6월 13일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여학생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보수단체 회원 500여명이 난입해 관련 집기를 모두 부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함께 전시되어 있던 미술 작품들도 파손당하는 화를 입었다. 23일에는 KBS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던 여성이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보수단체 폭력행사의 가장 앞줄에는 고엽제전우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 단체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불미스런 일에 연루된 과거가 있다. 가슴아픈 일이다. 이분들은 냉전시대의 아픔을 당신들의 몸에 체현하신 분들이다. 폭력의 연쇄가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그 존재만으로 강력하게 증명하고 계신 분들이 오히려 폭력행사에 앞장선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분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추악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으로 인한 전쟁의 희생자이므로 반미집회의 선봉에 서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국의 굴절되고 왜곡된 근현대사는 이분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공격이 곧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말았다.
작가들이 보행신호가 들어와 있는 동안 진행하는 '횡단보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야만으로 퇴행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예술이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스러 해야 하는 걸까. 예술은 자신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예술은 기억을 통해 상처를 영원한 것으로 만든다. 인간의 이성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해 드러난 사회적 치부를, 그 현장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으로 예술의 복수는 이뤄진다.
27일 고엽제전우회 사무실을 방문한 작가들은 작품파손의 피해 당사자들인 그림공장과 민족미술인협회 작가들이었다. 이들의 작은 퍼포먼스는 예술의 복수를 구현하는 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야만의 현장과 예술의 복수를 기억할 것이다. "고엽제전우회, 작품파손 사과하세욧!"
편집 : [안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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