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사람들] 신화미술관 여는 김봉준 화백
시골서 흙 만지며 눈 떠…다양한 상징 150점 전시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진밭마을에 신화미술관을 여는 민중미술가 김봉준 화백.
민중미술가 김봉준(55) 화백이 신화미술관을 엽니다. 김 화백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붓을 가열하게 휘둘렀고, 시위 현장이나 행사 때 내걸리는 엄청난 크기의 걸개그림을 처음으로 그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중미술가입니다.
25일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2리 진밭마을에 문을 여는 신화미술관은 165㎡(30평)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신화를 주제로 만들어진 첫 미술관입니다. 민중미술가와 신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습니다. 그는 “신성한 힘을 잃어버린 물질 만능의 시대에 신화를 통해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여신신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질 숭배 현대사회의 정신적 뿌리는 남신문명”
“물질숭배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 사회의 정신적 뿌리는 남신문명입니다. 국가주의, 영웅신화, 봉건적 가부장제 등은 위계질서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전쟁은 불가피하게 되지요.”
신화미술관에는 단군신화는 물론 한국 여신신화, 어머니대지 신화, 도깨비신화, 저승길 신화, 지신밟기신화 등 다양한 신화 상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50점 대부분이 그의 작품입니다.
그가 표현한 신화의 주인공들은 위협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습니다. 대지신은 시골 마을의 옆집 할머니를 닮았고, 토테미즘의 상징인 개, 고양이, 염소 등은 다가가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감이 있습니다.
김 화백은 신화미술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영혼이 맑은 청소년들의 열린 가슴이 신화에 깃든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리학교, 청소년 평화학교 등 4곳의 청소년 교육기관과 단체에서 신화를 배우고 체험하겠다고 신청을 했습니다. 문의 전화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가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쯤 활동 무대인 부천을 떠나 진밭마을로 내려오면서였습니다. “출세간의 미련을 버리고 예인의 길을 가고 싶어서” 찾은 시골 마을에서 그는 서낭당을 만났고 신화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볼 수 없고 “숲에서만 보이는, 잊힌” 신
그는 신화를 공부하면서 민주화운동 안에서도 폭력적 남근주의가 적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전에 민주화 운동을 할 때부터 독재 권력의 폭력성 못지않게 운동가들의 행동 또한 권력지향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그였습니다. 김 화백은 그런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몸이 먼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암에 걸린 것입니다.
“99년 임파선암 3기로 진단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했어요. 그때 그렇게 흙을 만지고 싶더라고요. 진밭마을에서 원 없이 흙을 만지며 지냈어요. 흙의 기운이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화를 공부하면서 흙은 대지이자 어머니신이며 생명과 살림의 신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숲에서만 보이는 잊힌” 신이었습니다. 그는 대지신 같은 여성신에서 생명과 평화라는 새 시대의 가치를 봤습니다. 이제 폭력과 파괴로 얼룩진 남신문명 대신 여신문명이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그가 신화미술관을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뜻을 세우자 문화관광부와 원주시, ㈔오랜미래문화연구회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했습니다.
김 화백은 신화미술관 개관 행사의 주제를 여신으로 정했습니다. 25일부터 11월22일까지 열리는 ‘여신신화축전 2008’은 어머니대지신화춤, 강의, 노래 등 여신 관련 문화행사와 여신신화와 관련한 강좌, 여신상징만들기 체험 등으로 꾸며집니다.
“올해 주제는 내 안에서 신성한 힘 찾기입니다. 신성한 힘은 여성성을 말합니다. 남성성이 파괴한 세상을 구원하는 힘, 하지만 여성은 물론 남성 안에도 내재한 힘이지요. 그 힘이 평화와 생명의 세상을 열 겁니다.”
(033)746-526.
원주/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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