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뉴스가 뽑은 2008년 10대 뉴스]②장관 유인촌과 ‘좌파적출’
<안태호기자>
▲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올해 각종 논란에 시달렸다. 12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를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유인촌 장관.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올해의 문화계 인물을 꼽으라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꼽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장관이라는 자리가 워낙에 사회적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정부대변인을 겸했던 그의 직위와 연기자로서 가졌던 명성이 겹쳐 그는 올 한해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자전거만 타도 여론이 찬반논란을 벌일 만큼 유감없이 스타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감내했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장관직에 취임하자마자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와 장단을 맞췄다. 이어 며칠 뒤에는 아예 코드인사로 지목한 기관장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끝까지 자리에 연연해 한다면 재임 기간 어떤 문제를 야기시켰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결국, ‘좌파코드인사’의 대표격인 KBS 정연주 사장이 검찰고발을 당하며 사장직에서 쫓겨났고, 한국관광공사 오지철 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정순균 사장, 예술의 전당 신현택 사장, 한국언론재단 박래부 이사장 등 문화부 산하 기관장들은 사퇴압박에 시달리다 자리를 물러났다. 기관장이 사퇴를 거부한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보수정권의 등장과 함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수사는 ‘좌파정권 10년’이라는 조어와 대위법을 이루며 ‘과거청산의 ‘지침’으로 활용됐다. 사실, 좌파와 우파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오해를 무릅쓰고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현실사회의 구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좌파적 지향에 가깝고 현실을 유지하려는 것은 우파적 지향에 가깝다. 이는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지향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의사결정 구조를 최적화하려면 두 경향의 합리적 경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 자체가 우편향을 겪고 있으므로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좌파’라는 용어는 심각한 왜곡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좌파인사 적출’은 연말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몰아내면서 절정에 달했다. 김윤수 관장은 11월 7일, 김정헌 위원장은 12월 5일에 각각 해임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두 건 모두 해임사유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크게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관장의 해임 사유로는 한참 모자란 이유들이 거론된데다 이미 감사원 등에서 지적했던 사항에 중복징계를 내리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윤수 관장의 경우 마르셀 뒤샹의 작품구입 과정이 문제가 됐고, 김정헌 위원장의 경우 문예진흥기금 투자 대상 기관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김윤수 관장과 김정헌 위원장의 반박을 보면 문화부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렸다는 의혹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화부는 이에 대해 별도의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문화부는 이 두 사람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해임한다고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 이들을 억지사유를 만들어 해임하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기가 출범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2기 예술위 위원들 상당수가 이명박 후보 지지를 주도한 예술계 인사거나 뉴라이트 계열에서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위원이 되자마자 1기 예술위를 성토하며 위원장을 공격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예술위 노동조합에서 발간한 소식지에는 예술위 위원 전체회의 시 위원장을 제외한 다른 위원들이 별도로 모여 회합을 갖고 회의에 들어가는 것을 보기가 불편하다는 내용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더군다나 문화부는 예술위가 문예진흥기금 운용에 직접 관여할 수 없도록 정책을 변경해 예술위 전환의 의의를 바닥부터 무너뜨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술위는 예술인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예술지원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부의 지시를 받아 단순기금집행기관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유인촌 장관은 문화부 장관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대변인으로서 국정철학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올해 쇠고기 수입문제, 대운하, 언론장악 논란, 경제위기 등 정부의 리더십이나 위기대처 능력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유인촌 장관 역시 ‘신념’을 굽히지 않는 발언과 행보로 각종 구설에 시달려야 했다. 앞서 이야기한 ‘좌파적출론’은 물론이고,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7월에는 “6월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해보다 0.45% 줄은 것은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촛불 집회 때문”이라는 발언을 해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북경올림픽 연예인응원단은 국고낭비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10월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는 기자들을 향해 "사진 찍지 마 XX, 성질이 뻗쳐서 XX, 찍지 마"라며 욕설을 퍼부어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이런 실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유인촌 장관의 문화부가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비전은커녕 문화부 스스로 매주 마다 주요 정책들을 발표하겠다고 공표했지만 흐지부지되거나 이전에 입안됐던 정책들을 재탕 삼탕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정책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채 엉뚱한 논란에만 한 해를 소비한 형국이다.
문화부는 문화, 관광, 체육, 종교, 언론 등을 모두 포괄하는 대형부처다. 문화부의 위상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황으로만 따지자면 유인촌 장관은 자신이 가진 지명도와 정부 내 입지로 인해 소신껏 정책을 펼치기에 유리한 위치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장관이 혁신적인 정책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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