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몸의 학교 공동교장 알바로 레스뜨레뽀, 마리 프랑스 드리유방 - ③
▲ 예술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들꽃학교 워크숍 장면.
한국에도 공교육이 획일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공교육제도의 문제로 인해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등장하고 있다.
알바로
기존 학교의 실패로 인해 그런 학교들이 생기게 된다.
아직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체로 중산층 가정 자녀들이 다닌다.
알바로
‘들꽃 피는 학교’ 아이들도 중산층인가?
대체로 그럴 것이다.
드리유방
나는 사립학교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학교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교육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글이 있는가?
알바로
몇몇 기명칼럼에 교육에 대한 견해를 밝히긴 했다. 세계은행에 제출한 교육모델에는 교육철학의 일부가 담겨 있다. 교육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술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드리유방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바로
예술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야 없지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예술을 통해서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이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예술은 그 문제들에 대해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드리유방
예술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회 문제를 대응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알바로
예술은 비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예술 교육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힘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 감수성이 타인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감동시키면서 사람들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든다. 예술은 사람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기계 속에 인간의 삶이 갇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드리유방
기계는 인간을 가둔다.
알바로
예술은 갇힌 것을 열어 젖힌다.
몸의 학교 모델을 콜롬비아 전역에 혹은 다른 대륙에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는가?
알바로
베네수엘라 오케스트라 양성제도(el Sistema Nacional de Orquestra)의 업적은 내게 훌륭한 참고사항이다. 구스따보 두다멜 등등의 사례를 생각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이 국가제도는 베네수엘라 사회 안팎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경험이 우리의 꿈에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다. ‘몸의 학교’는 고유한 교육철학과 방법론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 노력이 콜롬비아와 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춤은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힘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춤은 인간의 몸에 대한 것이므로 단순히 예술장르가 아니다. 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곧 인간의 몸, 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몸은 감각의 원천이자 우리의 기원이다. 몸은 우리 자신이다. 몸은 거대한 변화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우리 몸은 하나의 악기이다. 춤이란 악기와 악기주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춤이란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나는 ‘몸의 학교’가 하나의 학교에서 하나의 교육제도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예술가든 예술가가 아니든 모두가 누리는 제도가 되기를 바란다.
드리유방
춤이 음악과 같은 잠재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의 예술적 수준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거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음악은 좀 더 대중적인 장르이다. 레파토리도 다양하다. 춤은 그렇지 못하다. 음악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드리유방은 춤을 얘기할 때 주로 현대무용을 염두해 두고 자신의 견해를 진술하고 있다. 반면 알바로는 춤 내부의 다양한 하위 장르를 두루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알바로
춤은 콜롬비아 민중에게 가장 뿌리 깊은 문화 전통이다. 이 나라 백성들은 춤추기를 매우 좋아한다. 모든 곳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춤이 더욱 번창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무용에만 한정한다면 좀 더 다양한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일반적으로 춤에 대해 말한다
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로 성공을 거두었다. 춤이 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춤이 클래식음악에 비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잘 접근할 수 있는 장르이다.
드리유방
국가 제도로서 ‘몸의 학교’라...... .으음, 나는 ‘몸의 학교’의 비전에 한정해서 말하고 싶다. ‘몸의 학교’가 새 학교 건물을 짓는 이 시점에서 ‘몸의 학교’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물론 나는 ‘몸의 학교’ 모델을 다른 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의 학교’는 무엇보다도 예술적 탐구센터, 교육과 예술에 대해 성찰하는 전위적인 요람이기를 바란다.
늘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을 흡수하고 우리의 방법론을 더욱 발전시켜 늘 전위적인 활동을 벌이기를 바란다. 우리의 프로젝트, 우리의 예술교육방법론 등 모든 영역에서 전위적인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과거의 경험이다. 멋진 과거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에도 여전히 쓸모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몸의 학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10년 경험으로 우리의 철학과 방법론을 정립했다 할 수는 없다. 세계은행에 제출한 몸의 학교 교육 모델은 과거의 우리 역사이다. 그것은 고정불변의 원칙이 아니다.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할 주제는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대상에 접근할 것이냐이다. 누군가 말했다. 무용이냐 현대무용이냐는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라고 했다. 별이냐 달이냐 바로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몸의 학교는 정식으로 인가를 받았는가?
알바로
몸의 학교는 비영리민간재단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 교육청이 대안교육기관으로 인가했다. 이 지위로 우리 학교는 다양한 대학과 협정을 맺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력은 혁신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교육부와 문화부에서도 다양한 구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몸의 학교’의 성공적인 경험을 반영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콜롬비아에는 ‘몸의 학교’와 같은 다른 기관이 있는가?
알바로
없다. 같은 분야에서 우리와 같은 철학을 갖고 있는 교육 기관은 없다. 고전무용, 음악 등 다른 분야에서 이런 시도는 있었다. 예술교육과 전통교육의 ‘결혼’을 주선한 경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예술교육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공연장면.(사진 서울세계무용축제)
이번 한국 방문 경험은 어떠했는가?
알바로
당신의 작업이 흥미롭다. 아주 먼 나라지만 일본 정부는 세계은행을 통해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 수 천 년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동양이 우리 제안을 이해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한국은 아직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 트라우마는 한국이 주변의 강대국들이 아닌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보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이 해외에서 활발하게 문화교류를 펼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알바로
콜롬비아와 한국의 문화 교류에 깊은 관심이 있다. 나는 이곳에 와서 한국의 전통, 음악, 춤에 대해 크게 감명 받았다. 한국은 놀라운 나라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연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일요일 공연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시인 황지우 씨를 만났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한국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기술도 수단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우리가 왜 춤을 추고 있는지 기억하게 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양국간의 교류가 놀라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이번 공연에서 이미 문화교류가 시작되었다. 서울 공연의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에는 7명, 안산 공연의 [또 다른 사도]에는 4명의 한국인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 모두 훌륭한 기량을 갖고 있고 작업도 아주 흥미로웠다.
드리유방
아무 보상도 없이 그 예술가들은 우리 작품에 참여했다. 멋진 경험이었다.
알바로
[몸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 대한 인상을 내가 묻고 싶다.
드리유방
나라마다 관객마다 모두 반응이 다르다.
[몸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 등장하는 상징들은 서양적인 것들이다. 그로 인해 한국 관객들이 이해하는 데 일정한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작품에 끝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이름도 정체성도 없는 포로들이 온기를 가진 살을 드러낼 때였다.
드리유방
당신이 말한 것이 바로 우리 작품의 주제였다. 비인간화에서 벗어난 작품의 끝에서야 드디어 마음껏 숨 쉴 수 있게 된다. 얼굴도 없이, 스타킹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50분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유쾌한 일도 아니다.
내 동료 가운데 한 사회학자는 사람을 쌓는 장면을 학살에 대한 묘사로 여겼다. 한국의 80년 학살을 떠올렸을 것이다. 80년대의 폭력 시위는 학살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었다.
알바로
우리 작품에 대한 당신 논평도 흥미롭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드리유방
우리 작품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르완다, 콜롬비아,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대한 것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콤파스가 총으로 변하기도 하고 결국 시계로 변하고.
알바로
새의 날개가 되기도 하고, 곤충이 되기도 하고.
에필로그
(인터뷰 말미에 몸의 학교 신축 교사를 설계한 콜롬비아 건축가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알바로 선생은 그 분을 ‘우리의 모험에 참가한 동료’라고 소개했다.)
드리유방
‘몸의 학교’는 일종의 ‘모험’이다.
알바로
그렇다. 우리는 그 모험의 길에 나선 사람들이다.
한국에 ‘몸의 학교’의 자매학교가 생겼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모험에 참여할 국제적인 동지들이 생기길 바란다.
'민미협 아카이빙 > 2000년~2009년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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