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특집>한국의 5대강을 가다 - 북한강
댐에 막혀 ‘흐름’ 잃고 준설로 ‘모래’까지 잃으면
2008-12-23 오후 12:47:14 게재
청평에서 홍천강 더하고 두물머리에서 남한강을 만나다
남한강이나 북한강 취재는 낙동강이나 섬진강 등 다른 강에 비해 한결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취재 종착점이 제가 사는 양수리(두물머리)거든요.
북한강 취재 마지막날 이 화백을 모시고 저희 집으로 갔습니다. 구들방에 장작불 피워 뜨뜻하게 덥혀 드렸죠.
다음날 아침 일찍 수종사에서 두물머리의 아침을 보고 서종면 서후리로 가서 민정기 화백을 만났습니다. 2006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한 민 화백은 ‘우리 시대의 참다운 그림선비’라는 평을 듣는 서양화가입니다.
여전히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민 화백은 허름한 창고같은 작업실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작업실 한쪽 벽난로에는 조그만 나무토막 몇개가 연기를 피우고 있고 천장에 걸린 형광등 불빛은 어두침침했습니다.
그때 그는 -지금의 양수리 화실로 옮기기 전- 혜화동 화실에서 암담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즈음 ‘현실과 발언’과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상황의 급변 … 더욱이 갑작스런 오 윤의 죽음은 그의 작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개인적 삶의 문제를 근본 적으로 뒤흔들어 버린다.
- 민정기,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의 긴장관계. 김진송
1972년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민 화백은 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습니다.
△198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파리) △1988년 ‘민중미술’전(Artists Space, 뉴욕) △1994년 민중미술 15년 평가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5년 광주비엔날레 ‘광주 5월 정신전’(광주시립미술관, 광주)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 이곳 북한강 옆 서후리로 작업실과 집을 옮긴 후 민 화백은 주로 자연과 풍경을 그립니다. ‘벽계구곡도’ ‘팔봉산’ ‘인왕산’ 등 민 화백의 풍경화는 분명 서양화인데 보면 볼수록 동양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는 한국화가 유양옥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우리의 자연을 서양식 화법이 아닌 우리식으로 다시 보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화폭에 담아내는 새로운 ‘진경산수적’ 접근방법 때문이 아닐까요?
팔봉산 칼날능선에 올라 홍천강을 보면
춘천에서 양평까지 북한강은 낭만적인 드라이브코스지만 사실 제대로 된 강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이쪽 북한강 수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대형댐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춘천 의암호에서 가평읍까지 그나마 자연하천의 모습을 일부 보여주다가 가평 남이섬부터는 다시 청평호반입니다. 청평댐을 지나면 대성리 직전까지 아주 잠깐 강물의 흐름이 보여주지만 대성리부터는 다시 팔당호 담수구간입니다.
이 일대 북한강 수계에서 자연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강은 홍천강입니다. 홍천군 서면 팔봉산(302m)은 등산로는 험하지만 칼날능선 양쪽으로 홍천강이 180° 돌아가는 장관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입니다.
팔봉산 하류 1km 지점 산 아래에는 예전에 강이 흘렀던 흔적으로 보이는 ‘우각호’(쇠뿔 모양 호수)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반곡리나 모곡리 일대 홍천강은 깨끗한 물에 풍성한 모래밭이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제격입니다. 남이섬에서 75번 국도를 타고 청평 쪽으로 내려오다 고성현 고개에서 보면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자연하천의 특징은 상류와 중류, 하류에 걸쳐 암석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설명하면 상류엔 큰 바위들이 있고, 중류에는 큰 자갈과 작은 자갈이 바닥에 깔립니다. 하류의 특징은 풍성한 모래밭이죠.
왜 그럴까요?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하나는 하류로 갈수록 암석이 잘게 쪼개지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입자가 가늘수록 물과 함께 멀리 떠내려가기 때문입니다. 모래보다 더 가는 점토 성분은 바다까지 내려가 ‘개펄’이 됩니다.
이처럼 강에는 강물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과 함께 자갈과 모래도 끊임없이 하류로 흘러갑니다. 홍수 때는 큰 바위를 옮길 정도로 강물의 힘이 세지기도 하죠.
강에 깃들어 사는 많은 생명체들, 인간의 문명은 이런 강물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수천년 동안 서로 진화하고 적응하며 살아왔습니다.
현대문명은 이런 공생관계를 무시합니다. 강물은 ‘용수’(用水)로 계산되고 강 자갈과 모래는 ‘골재’로 취급당합니다.
4대강을 준설해서 맑은 물을 되찾겠다는 발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바닥을 준설해야 물이 맑아진다는 단순논리로는 절대로 강을 살릴 수 없습니다.
수십년 동안 강바닥을 준설하는 방식으로 골재(모래)를 채취해 온 낙동강은 자연상태였을 때와 비교해 평균 9m까지 강바닥이 낮아졌지만 수질은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강 하류엔 섬진강이나 홍천강처럼 풍성한 ‘모래밭’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강물도 살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들도 살 수 있습니다.
하상정비(준설)로 강 하류의 물깊이가 1.5m 이상이 되면 모래바닥에 햇빛이 도달하지 못해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댐과 보로 가로막혀 ‘소리’(흐름)를 잃은 강, 준설과 골재채취로 ‘모래’를 잃어버린 강은 ‘살아 있는 강’이 아닙니다. 4대강 정비사업이 이런 죽은 강을 만드는 사업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눈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잠실 하류에 유역인구의 81%가 거주
멀리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두물머리)에서 금강산 만폭동에서 발원한 북한강을 만나 비로소 ‘한강’이란 이름을 얻습니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 나루엔 커다란 느티나무 당목과 제단이 남아 있어 시민들에게 좋은 쉼터를 제공합니다. 이곳 두물머리 일대는 한강을 경계로 양평군과 광주시, 하남시, 남양주시 등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예전에 뱃길이 주요 교통로였던 시절에는 강 양편이 하나의 고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와 산소가 있고 강 건너 광주시 퇴촌면에는 정약용 정약전 형제들이 천주학을 공부했던 ‘천진암’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마현과 천진암은 모두 같은 광주(廣州) 땅이었습니다.
요즘은 강 양쪽으로 도로가 다 나서 보기 힘들어졌지만 한겨울이면 지게에 긴 대나무를 옆으로 끼우고 얼어붙은 팔당호를 건너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얼음판 위에 눈이라도 내린 날엔 멀리서도 까만 발자국이 이어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팔당호는 수도권 2000만 주민들의 상수원이기도 합니다. 한강 전체의 유역인구는 2488만명이지만 잠실수중보 하류에 인구의 81%인 2015만명이 거주합니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26개 시·군에 공급되는 생명수인 팔당호 수질은 그러나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북한강보다 유입량이 많은 남한강의 수질이 상대적으로 나쁘기 때문입니다.
2007년 연평균 수질로 보면 전체 유입량의 43.4%를 차지하는 북한강의 수질은 최하류 ‘삼봉리’(남양주시 조안면) 지점에서 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 0.8ppm으로 1급수 수질을 유지했습니다. 삼봉리 지점의 수질은 올해 10월까지 평균 1.2ppm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입량의 55%를 차지하는 남한강은 ‘강상’(양평교) 지점에서 2007년 연평균 BOD 1.7ppm을 기록했고 올해 10월까지 평균 수질도 1.9ppm으로 북한강에 비해 나쁜 상황입니다.
춘천 가평 홍천 양평 = 그림 이호신 화백
글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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