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개무시' 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기고] <용산 재개발의 아침>
기사입력 2009-03-02 오전 7:37:53
지난 1월 20일 6명의 희생자를 낳은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40여 일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그때 그대로다.
검찰은 부실하고 편파적인 수사라는 따가운 비판 속에서 경찰에 면죄부를 주고 농성을 벌인 철거민만 기소했다. 5명의 철거민 희생자 유족들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가운데, '불법 집회'를 벌인 혐의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및 추모 집회에 참가한 시민이 계속 연행되고 있다.
참사 현장 역시 변한 것이 없는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재개발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철거를 시도하는 용역업체와 이를 저지하는 철거민들의 싸움도 진행 중이다. 경찰은 철거가 이뤄지고 주변 교통에 방해되지 않는 지역 내에서의 추모·규탄집회조차 '불허'하고 있다.
현장에는 처음보다는 적지만 꾸준한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참사 이후 철거민들과 연대 활동을 지속했던 문화예술인들의 작품도 현장 주변에 설치돼 있다. 그간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확장 이전 반대, 티베트 독립 운동 등에 관한 활동을 벌여온 판화가 이윤엽 작가가 용산 참사를 담아낸 작품을 글과 함께 보내왔다. <편집자>
▲ <용산 재개발의 아침> (목판화·크기 : 99*165센티미터). ⓒ이윤엽
참사가 난 지 한 달 조금 지났다.
민미협 선배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을 찾고 있다.
무슨 작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다.
아픔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서로의 아픔 말이다.
그림쟁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림이나 그리는 것.
근처의 나뒹구는 합판 쪼가리나 침대 매트리스나 천을 주워다
이런저런 그림들을 그렸는데 하나같이 볼품은 없었다.
많은 작가가 참여한 대형 걸개그림을 없는 돈에 부른 사다리차로
어렵게 설치했지만 단 하루 만에 철거를 당했고 없는 돈에
재료를 사고 뺑이치고 진행한 또 다른 걸개그림도 하루 만에 뜯겨져 버렸다.
지들 맘이다.
별일 없으면 냅두고 웃대가리에서 연락 오면 뜯어버리고 그러는 것 같다.
그저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그려놓는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개무시 당하고 있다는 느낌.
현장은 조용하다.
유족 한 분당 한 대꼴로 전경차가 도로가에 주욱 늘어서 있고
밤 추위에 땔 장작을 어느 남자 분이 패는 것과 점심과 저녁을 먹을 그릇과 물을 옮겨 나르고 댓개의 향이 늘 타들어가고만 있을 뿐.
없어진 파란 망루 안에서 타 돌아가신 분들의 그날 울부짖음은
용산거리 후미진 골목 어디를 헤매시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벌써 잊고 있는 건가.
그들은 그렇게 단정을 해버리고 편리하게 개무시로 대응하고 있는 건가.
억울하잖은가.
참사가 난 바로 그날 아침처럼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는데
돌아가신 다섯 분은 어쩌란 말인가
평생 그날을 잊을 수 없는 아내와 아버지를 빼다박은 자식들은 어쩌란 말인가
기억해야 한다.
살기 위해 싸운 다섯 분의 철거민과 살아야 하는 유족 분들을 또다시 죽이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개무시 당하지 않고 살기 위하여 말이다.
/이윤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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