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의 자식, 땅을 그리다
이종구 ‘국토-세가지 풍경’전
임종업 기자
» 이종구 ‘국토-세가지 풍경’전
작가 이종구씨의 ‘국토-세가지 풍경’전에 걸린 작품 중 두 그림은 포개져 보인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2009)와 <검은 대지-무자년 여름>(2008). 앞은 미군 치누크 헬기의 굉음 아래 주름진 노파의 초상이고, 뒤는 콘티넨털 화물기의 굉음 아래 울부짖는 암소의 초상이다. 노파나 암소나 땅에서 쫓겨난 농투성이인 점에서 똑같다. 전자는 미군 기지가 옮겨오면서 대대손손 농사짓던 고향에서 추방된 경기도 평택 대추리의 농민이고, 후자는 광우병 쇠고기가 대형 화물기로 날아오면서 생명을 위협받는 우리나라 사람을 상징한다.
무척 하릴없어 보이지만 다른 작품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작가가 이번에 내건 작품은 우리 땅에서 마주친 세 가지 풍경을 담은 <검은 대지>, <살림>, <만월> 시리즈다. <검은 대지>는 도시화·세계화로 생산성을 잃은 우리 땅과 역시 일감을 잃고 땅에서 유리된 소를 대비한 것이고, <살림>은 농투성이의 살림살이로 들여다본 농촌 현실을, <만월>은 백두대간을 두 차례 종주하며 읽어낸 우리의 잃어버린 전설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고향인 충남 서산 오지리 마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대로 농사꾼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꼴 베고 소를 뜯게 했던 경험이 있다. 1980~90년대 농민 화가로 발돋움한 이씨는 90년대 이후 관심사를 국토로 넓혔다. 이라크 전쟁 발발 석 달 뒤에는 전장을 방문해 전쟁으로 희생된 풀뿌리들의 자취를 살펴 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언뜻 노령화·무력화한 농촌처럼 하릴없어 보인다. 하지만 둥그런 소등 너머 보름달이 떠오르는 모습이나 어미와 송아지 함께 있는 평화로운 모습에서 현재의 농촌이 비정상적이라는 것과 회복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머리에 상처 나고 뿔에 피 묻은 싸움소의 눈망울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농촌 실상이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이 대부분인 점도 이번 전시의 특색이다. 대추리 농투성이가 소로 바뀐 것이나 살림살이 일부를 그린 것이 그렇다. 이젠 현장에서 그릴 것이 없을 만큼 피폐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대신 생산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넉넉한 만월이 산하를 비추고, 음양을 상징하는 물 가득한 양동이가 들판 위에 떠 있는 이미지들이 그것이다.
풀뿌리에 대한 그의 애정은 한때 극사실 초상화로 나타났는데, 그 인연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02-720-1524~6) 신관에서 4월26일까지. 구관에서는 프랑스 추상화가 베르나르 프리츠의 개인전이 열린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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