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예술 화두는 '사회적 쓸모있음'입니다”
제주학 관련서적 100여권 낸 주인공 박경훈 도서출판‘각’ 대표
화가로 시작해 출판사 사장까지, 타고 난‘문화운동가의 삶’
2009년 03월 30일 (월) 08:56:26 김봉현 기자 mallju30@naver.com
▲ 박경훈 도서출판 '각' 대표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그의 고집은 고래심줄이다. 그 질기디 질긴 근성과 배짱, 타고난 예술가로서 안목과 기질로 척박한 지역 문화예술 판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예술 한답시고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가적 삶을 살지 않았다. 그가 살아온 모습도 그가 지향하는 삶도 여전히 ‘예술의 사회적 쓸모 있음’에 있다. 화가이자 문화운동가 박경훈(48. 도서출판 ‘각’ 대표) 씨를 두고 하는 소리다.
화가 박경훈씨를 만났다. 그가 운영중인 출판사 ‘각’은 문을 연 후 올해까지 10년 동안 제주의 역사.전통.문화 등 소위 ‘제주학’과 관련된 서적을 100여권 출산(?)해왔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그리고 출판으론 먹고살기 힘든 제주 땅에서 ‘문화의 꽃’이라는 출판 작업을 10년간 오롯이 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먹고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출판은 문화운동의 연장선이었기에 가능했을는지 모른다.
‘먹고 살만 하냐?’는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제주관련 서적으론 먹고살지 못한다. 먹고사는 것은 그 외 외주 출판물들로 해결해왔다. 10년 동안 모았으면 꽤 됐을 텐데… 벌면 제주서적과 술값에 처박다 보니까 지금도 사무실은 남의 집 살이다. 그래도 아직 망하진 않았으니까. 하하”
▲ 박경훈 씨는 화가이자 문화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그의 이름 석 자 뒤에는 항상 여러 개의 꼬리표가 붙는다. 화가인 그는 30대 초반 미술교사로 교단에 서기도 했고, 현재 맡고 있는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전에는 탐라미술인협회 회장도 지냈다. 제주4.3평화공원 사료관을 태동시키는 과정서 전시기획팀장이라는 산파 역할을 맡기도 했다. 공통분모는 문화운동가다.
그는 “나의 진짜 모습은 화가다. 명함에는 아직도 화가라고 새겨져 있다. 정체성은 화가이고 사회적 역할만 그때그때 바뀐다. 혹자는 박경훈을 두고 ‘게으른 예술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여전히 화가로서 살고 있고 내년에 일곱 번째 개인전도 준비하고 있다. 198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동안 여섯 번의 개인전을 했으면 그리 게으른 화가는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그가 제주 동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것이 1985년이다. 이른바 ‘박경훈 작품전’이었다. 군입대 전날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떼어놓고 아침에 군대 간다고 했더니 집에서 어머니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천성이 예술가다.
“작가라면 작품을 팔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난 그런 면에서 작가라기 보단 문화운동가에 가깝다. 화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문화운동을 하는 셈이다”
그는 1980년대 대학시절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현기영 선생의 ‘순이 삼촌’을 읽고 예술은 현실이어야 한다는 소위 ‘리얼리즘’을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4.3을 알게 됐고 지역문화를 화두로 삼게 됐다. 당시 민중미술운동을 함께 했던 ‘보롬코지’ 회원들을 중심으로 제주문화운동연합을 꾸렸고 그것이 훗날 제문협과 함께 제주민예총을 창립하게 된 원천이었다.
4.3평화공원 사료관이 문을 열기까지 전시기획팀장을 지낸 그다. 아쉬운 게 많단다. 아직도 걸리지 못한 두 점의 작품, 삐걱거린 재단설립 과정,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수구 우익세력들의 4.3왜곡 흐름, 지금쯤 4.3의 중심에 서있어야 할 평화공원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함 등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토로했다. 그래도 희망은 놓지 않았다.
“아무리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해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릴 수 없다. 4.3 평화공원 조성과정에서 열심히 했다. 건방지다고 혹 누군가 욕할지 모르지만 미술가로서 전시기획을 맡아 조형적 조언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역할은 이 정도 까지다. 4.3평화공원은 반드시 평화의 성지가 될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한마디 덧붙였다. “난 사실 학자나 연구자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지만 소장인 난 학사이고 스텝들은 박사들이다. 이처럼 나의 역할은 진짜 일꾼들이 일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는 공공미술의 영역을 넓혀가는 일을 해보고 싶다. 젊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예술의 사회화, 사회의 예술화’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나의 임무이기도 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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