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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오마이뉴스, 예술이 없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야!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1.

예술이 없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야!
[서평] 이유리, 임승수의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강지이)


▲ 책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앤디 워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대중을 위한 예술과 예술을 지향하는 대중이 존재할 수 있을까?

김홍도의 풍속화가 없었다면 조선시대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느끼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예술은 이처럼 시대를 바꾸기도 하고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면서 이 사회 속에 살아 숨 쉰다. 책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은 음악과 그림, 영화와 사진을 사랑하는 두 젊은이가 쓴 예술 작품 이야기다.

다양한 형태로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단순한 작품 소개에 머무르지 않아 색다르다. 저자들은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관통하며 흐르는 특별한 정신이나 한 작가의 작품 속에 내재된 변혁의 의지 등을 고루고루 다루어 준다. 예술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작품과 시대는 연결되어 있다는 '반영론'의 입장을 취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단편적인 작가와 작품 소개에 그치는 다른 예술 서적보다 훨씬 더 커다란 틀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하다. 흔하고 유명한 작품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덜 유명하지만 시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가들도 다루어 준다.

책의 맨 첫 장을 여는 글은 이유리씨의 페미니즘적 시각이 돋보이는 글이다. 여성 화가가 무시되었던 시기, 화가로서의 자신을 부각시키며 남성의 권위주의에 대항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설명과 함께 나열되어 있다.

첫 글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작가는 르느와르, 드가와 같은 유명 남성 작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된 쉬잔 발라동이다. 르느와르의 그림에서는 풍만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여성으로 묘사되었건만, 정작 자신의 그림에서는 실제 자신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쉬잔 발라동은 누드모델에서 전업 작가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녀와 남성작가들의 큰 차이점이라면 여성의 육체적 미에만 주목했던 남성들과는 다르게 출산한 자신의 모습, 억세게 사는 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등을 그렸다는 것이다. '에로틱한 제재'로서의 여성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몸 그 자체에 주목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작품은 가치가 있다.

소수의 입장에서 강자에게 저항하는 게 무척 힘겨운 싸움이라면, 대중의 인기를 힘입어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은 비교적 나아 보인다. 임승수씨가 소개하는 존 레논은 대중성을 지니면서 사회주의, 평화주의를 적극적으로 펼쳐 보인 음악가다.

'존 레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달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만 기억한다. 하나 덧붙여서 오노 요코와의 독특한 결혼 생활을 떠올리는 정도다. 사실 그가 작곡하고 부른 'Imagine'은 국경과 종교도 없고 싸움도 없으며 탐욕과 궁핍도 존재하지 않는 지상 낙원을 노래한다.  마르크스보다 더 급진적인 목소리를 담아 모든 것이 평등하며 내 것 네 것이 없는 이상적 세계를 노래했다고 할까.

존 레논 부부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침대 시위를 펼친 것도 유명하다. 이들의 대중적 이미지는 반전 운동, 인권 운동, 정치 운동 등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펼쳐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대중성을 이용하여 소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에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존 레논이 유명세를 타고 자신의 신념을 전파시켰다면, 베토벤은 좀 불운한 음악가다. 어릴 때부터 온갖 고생을 겪으며 세상과 타협할 줄 몰랐던 베토벤은 다른 작곡가들이 궁정이나 교회의 후원으로 화려한 생활을 누리며 음악을 만든 것과 달리, 오로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출판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생활했다.

그의 치열함과 투쟁 의지, 삶에 대한 고민 등은 음악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베토벤 이후의 많은 작곡가들은 그를 뛰어넘기 위해 괴로워한다고 한다. 그만큼 천재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처절함이 없었다면 그만한 음악이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세계의 어떤 곳에서는 달콤한 초콜릿이 한 끼 식사보다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데, 아프리카 농장에서는 초콜릿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이들이 하루 18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하며 코코아를 생산한다.

1986년 브라질의 세라 파라다 금광을 찍으며 자본주의의 비열함을 고발한 세바스티앙 살가도라는 작가의 사진들 또한 충격적인 모습을 전한다. 생존을 위해 금광에서 천 한 조각만 두르고 치열하게 일하는 15000명의 사람들. 마치 고대 노예의 모습 같지만 겨우 20년 전 브라질의 한 마을 장면이다.

원래 살가도는 경제학자였다. 그는 경제 전문가로 세계은행을 위한 아프리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커피 재배 농장을 방문하게 된다. 재미있게도 사진가로서의 출발은 부인의 카메라를 빌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알리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다.

"만일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고 단순히 측은한 감정만을 느낀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 속의 사람들은 비참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타인들이 아니라 지구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살가도의 이러한 말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예술가들도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예술은 그저 '보기 좋고 아름다운' 향유의 대상이 아니다. 예술은 세상을 고발하고 사람들에게 긍정적 감흥을 일으킬 때에 더 높은 가치를 얻는다.

베토벤의 음악 속에 담긴 급진성과 세상을 향한 외침, 여성 화가들의 작품에 내재된 남녀평등의 의지, 디에고 리베라와 신학철의 벽화들에서 보이는 미화되지 않은 현재의 삶.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 사회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큰 힘이다. 이 힘이 존재하는 한, 예술은 우리 속에서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끊임없이 대중을 감동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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