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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김준권 판화展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1. 22.

원동석 / 전환기의 이정표를 세운 김준권희 판화 - 법고창신(法古創新)한 장인의 길 中
         최근에 그는 미발표작 ‘산에서’라는 제목의 수묵판화를 보아달라고 전송하여 왔다. 열어보니 사진은 사람 키를 넘는 3폭의 산수 부분도가 찍혀있고 이를 하나로 연이어 완성한 사진도 있다. 한 폭마다 100호씩 합치면 300호가 되는 수묵목판화인데 지금껏 나는 그 같은 크기의 판화를 본적이 없었다. 어떤 그림의 크기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수묵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판그림 자체도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걸작이다. 근경산의 적묵색을 출발로 연이어 산너머 산들이 파도치듯 너울대며 희미한 담묵으로 사라질 때까지 뻗어 있다.
            구도는 근경의 양옆이 치솟아 U자형인데 골자기에서 내다보는 시선같기도 하며 두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자세같기도 하다. 마치 그것은 신화적으로 인간의 어미인 산의 자궁에서 태어나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무한에의 동경을 담고 있다.
          
        
           그리움 / 2006 /  60x40 Cm
            노자가 말한, ‘골짜기 신은 죽지 아니한다. 암컷의 자궁 문은 도의 뿌리이다. 만물은 그 뿌리에서 태어나고 다시 돌아간다’ 를 음미하게 한다함은 나의 지나친 해석인가? 물론 작가가 노자의 책을 읽고서 그같은 시도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감성을 가지고 자연에 접근하고 그렇게 산과 물을 반복하여 그리다가 보면 어느덧 감성의 의미, 사상을 체득한다.
            이 판그림은 나무도 풀도 바위도 없는, 군더더기를 모두 떨어낸 추상적인 관념의 산이며 오직 먹물의 농담이 산을따라 빚어내는 해조미, 조용히 숨쉬는 듯한 산의 정태적인 모습을 통하여 명상으로 잠기게 하는 것이다.
           
          산에서...0703 / 2007 / 240x140 Cm     초기의 김준권 판화는 인간 삶의 주제로한 민중판화의 전형이다가 다색판의 실경산수로 들어서면서 점경으로서 농가, 논밭의 들판, 앞뒤 동산의 솔밭 등 인간형태가 가라진 자취만 남기며 자연이 내뿜는 빛깔 표현에 심취한다. 호수의 물빛, 강의 물안개, 아지랑이, 노을빛, 밤하늘 등 변하기 쉬운 빛깔의 표현까지 끌어들이며 일반 산수화와 다름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판화의 채색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담묵이든 적묵산수이든 수묵산수의 기법이나 크기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채색의 자연은 생기발랄한 자연의 약동과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면 수묵의 자연은 침잠하는 내면적 명상으로 이끌어 들인다. 과거의 문인화가들이 수묵법을 즐기고.....
        
            --- 중략 ---
         
           아무튼 김준권은 북종과 남종의 경계를 오고 가고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수인-수묵판화까지 개발하고 통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권 판화세계에 대한 가치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그가 우리 전통판화에 부실하였던 다색판화를 소생시키었고 나아가 우리에게 부재하였던 수묵판화를 부상시킨 장인적 노력에 대하여, 우리 판화사의 전환기를 만든, 그 이정표를 세운 공로에 대하여 편견없는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오래 망설이며 그에게 답하지 못한 짐을 나는 벗는 것 같다.
      김진하 / ‘힘찬 호흡, 고요한 마음의 通說的 記號’ 中
     
            오름0420 / 2004 / 182x92
          과거 실체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던 실경에서 일종의 관념, 혹은 내면적인 풍경화로 옮겨오는 과정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김준권의 목판화에서는 이런 큰 진폭의 형식적 변화가 진행되었다. 화면에서 여타의 소재와 색채가 즐어들며 담담, 간결, 절제, 엄격, 정적(靜寂)이 그 자리에 들어앉았다. 외곽선으로 묘사된 집, 논밭, 길, 가로수들이 자리하던 시골풍경이 빈 공간, 넓은 수묵의 단색 면,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산 경사면의 대담한 구획으로 대치된 것이다. 나무판면의 물성이 그대로 배어나오고, 발색은 아스라하게 한지로 스며든다. 나무판의 돋은 결 사이 그 미세한 골에서 번지는 듯이 하롱거리는 색은 韓紙라야 발색이 가능한 그런 맛이다. 과거 조각도에 의한 날카로은 에지(Edge)부분의 강렬한 칼 맛은 이제 고전적인 어법이 된 듯하다. 또는 단순하게 색 면이 겹쳐지던 다색목판화의 맛도 과거의 것이 되었다. 나무판면, 칼, 안료, 프린팅 모두에서 섬세한 감성에 의한 기술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게 과연 목판화일까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거와는 철저하게 다르다. 목판화의 현대성 혹은 시각적 동시대성이 이제 형식의 혁신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오름0406 / 2004 / 30x40 Cm
            칼의 사용횟수도 줄어들었다. 대신에 나무의 결로 어떤 느낌을 포착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판면에 대한 직관적 선택이 두드러진다. 형상성과 내러티브가 현저하게 약화된 자리, 거기에 일종의 심적 추상에 이르는 나뭇결의 패인 골에서 찍혀 나오는 담묵(淡墨)과 돋을 면의 농묵(濃墨)의 자연스러운 합치가 감성의 기호(記號)로 위치한다. 단색조의 변주, 면의 텍스쳐, 최소한의 이미지 등으로... 산도 물론 거기에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형태로 필요한 자리를 지킬 뿐 산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곡선, 그다지 소재로서의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그러니까 소재나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 내면적 정서(情緖), 혹은 서정성(抒情性)의 최소한 기표로 조형적인 산이 등장하는 것이다.

            <花雨 / 2006 /  90x60 Cm
사실 김준권의 이 근작들은 과거의 작품들과의 연계선상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보인다. 그의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적 맥락의 바탕인 서정성이란 공통분모는 여전하다. 그런데 조형방식이나 소통방식에 있어서는 변화가 크다. 많은 소재들의 생략도 그러하거니와 철저하게 색, 면, 그것도 나뭇결의 텍스쳐와 숨결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나오는 넓고도 광대한 단색조 면 사이에서 변주하는 墨-모노톤의 디테일은 감칠맛이 나면서도 웅대하고 시원하며 과거의 작품들에서는 볼 수가 없던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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