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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한겨레, 우리 만화 한 세기, 미술관에 다 모였네!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1.

우리 만화 한 세기, 미술관에 다 모였네!
‘한국만화 100년’ 전


» 우리 만화 한 세기, 미술관에 다 모였네!

만화만큼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문화 콘텐츠도 드물 듯하다. 누구는 어릴 적 추억에, 누구는 동시대와의 교감에, 누구는 짜릿한 쾌감에, 누구는 예술적 감흥에 젖어들 것이다. 만화는 평등하게 열려 있는 ‘서민’의 문화예술이라 할 만하다.
한국 만화가 생겨난 지 100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를 완전히 벗어나 ‘작품’ 대접을 받게 됐다. 3일~8월23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만화-한국만화 100년 전’을 통해서다.

한국만화 100주년 위원회(공동위원장 박재동·김동화·이동수·이홍우)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화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1969년 개관 이래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첫 만화 전시
‘1909년 시사만화→웹툰’까지
현대미술 작가들 작품도 선봬


전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가장 큰 무게를 둔 곳은 한국 만화 흐름을 살펴보는 ‘한국만화 100년의 역사 전’. 한국 최초의 만화로는 1909년 6월2일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의 시사 만화를 꼽는다. 만화의 시원을 18~19세기 김홍도·신윤복 화백의 풍속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이도영의 만화를 기점으로 잡는 데 이견이 없는 건, 이때부터 만화가 민중 의식을 대변하는 매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평가에서다. 일제 강점기 신문 만화는 일제에 대한 풍자와 민족의 저항 정신을 오롯이 담아냈다.


» 한국 만화의 효시가 된 이도영의 시사 만화(왼쪽).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현대미술 작품인 김석의 ‘론리 나이트’(오른쪽).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등장한 장르 만화는 고달픈 현실에 지친 서민들에게 소박한 꿈과 웃음을 선사했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도입된 사전 검열제로 암흑기가 왔지만, 만화는 물밑에서 서민들과의 끈을 이어나갔다.

1980년대 이후 <보물섬> 등 만화 잡지의 출현과 함께 중흥기가 찾아왔다.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등 인기작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만화를 ‘불량식품’쯤으로 보는 시선도 여전했다. ‘만화방’이라 불린 만화 대본소는 청소년들이 가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장소로 여겨지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만화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단계 진화했다. ‘웹툰’이라 불리는 인터넷 디지털 만화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됐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큰 어려움 없이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웹툰의 대표 작가로 떠오른 강풀의 <순정만화> <아파트> 등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만화가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른 문화 장르의 원작이 되는 위치에까지 오른 것이다.


» 백종기의 ‘4명의 라이파이’

두 번째 갈래인 ‘장르 만화 전’에서는 각 장르 속으로 파고든다. 같은 장르라고 보기엔 너무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순정 만화, 캐릭터를 중시하는 특성을 지닌 어린이 만화, 한 칸 공간으로부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카툰, 작가주의 만화의 산실인 독립 만화,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은 웹툰 등을 살핀다.

마지막 갈래인 ‘크로스오버 전’에서는 만화와 미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시도들을 소개한다. 만화 안에서 자라온 현대미술 작가 18명이 만화적 상상력과 표현 방식,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단편 만화를 구체관절인형으로 재구성한 작품과 인기 만화 캐릭터를 피겨 인형으로 만든 입체 캔버스 ‘툰토이’도 전시된다. (02)2188-6072.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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