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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아카이빙/2000년~2009년대 자료

한겨레, 한국은 ‘예쁜’ 미술에서 독립하라

by (사)한국민족미술인협회 2020. 12. 3.

서경식 교수 세 번째 미술에세이
추해도 현실 직시한 화가들 통해
삶과 유리된 한국미술 문제 제기


한승동 기자


» 〈고뇌의 원근법〉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 지음·박소현 옮김/돌베개·1만6000원

그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그야말로 전혀 개념이 다른 미술 에세이집으로 미술과 미의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뒤흔들며 1990년대 초 베스트셀러가 됐던 재일동포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 그 10여년 뒤 <청춘의 사신>이 번역·출간됐고, 이번에 그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집 <고뇌의 원근법>이 나왔다.

앞의 두 권은 일본에서 출판되고 나중에 한국어로 출간됐으나, <고뇌의 원근법>은 역시 일본의 여러 매체에 먼저 실리긴 했지만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건 한국 쪽이 먼저다. 차이는 그것만이 아니다. 더 두텁게 쌓인 연륜이 더 날카롭게 벼린 최근작일 뿐만 아니라, 2006년 4월부터 2년간 서울에 머문 그의 난생 첫 장기 한국 체험이 새롭게 부가한 문제의식을 짙게 반영한 편집이라는 점에서도 분명 다르다.

바로 그 한국 체험을 토대로 그가 던진 화두는 이것이다. “왜 내가 본 모든 한국 근대미술 작품은 그렇게도 예쁘게 마감되어 있는 것일까?” 실은 이 도발적인 의문이 오토 딕스 등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을 주로 다룬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다.


» 〈댄서 아니타 베르버의 초상〉. 1991년 슈투트가르트와 베를린에서 열린 ‘오토 딕스 탄생 100돌 기념 회고전’의 포스터가 된 그림. “이 잔혹하기까지 한 강렬함!”이라고 서 교수는 평했다. 돌베개 제공

서교수에게 ‘미의식’이란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라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따라서 무언가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느꼈을 때는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지 되물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미의식은 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도 인간의 일인 이상 그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돼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그런데 “지나치게 예쁘기만 한” 한국 근대미술은 ‘지루하다’고 그는 얘기한다.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위대한 화가들로 그가 꼽는 사람들, 곧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그리고 이번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에밀 놀데,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프랜시스 베이컨, 빈센트 반 고흐 등은 결코 그들 작품이 예뻐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이 거장들은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그 현실을 직시해서 그리려 했고”, 그게 바로 감동의 원천이며,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는 게 서 교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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